▲영화 <행복한 라짜로>(2018)
(주)슈아픽처스
성인이 출현했지만 거의 달라진 것이 없는 사람들. 눈 밝은 라짜로 덕분에 그동안 몰라서 방치해 두다시피했던 식용 식물들을 발견했고, 라짜로의 선한 얼굴을 이용해 지나가는 시민을 상대로 사기에 성공하는 쾌거도 거두고 그들의 전 재산인 트럭이 고장 나고 성당에서도 쫓겨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거리에서 찬송가를 들을 수 있는 기적을 맛보기도 했지만, 그것들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라짜로가 성인이 되어 돌아왔음을 간파하고 그에게 예우를 다하고자 하는 안토니아(알바 로르와처 분) 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녀 또한 라짜로의 순박함을 이용해 당장의 허기를 채우는 데 급급해 보인다.
하긴 지금 당장 굶어 죽을 지경인데 예수가 재림 한들 뭔가 달라질 수 있을까. 성인이 되어서 돌아온 라짜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성인의 모습과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 일단 라짜로 스스로가 자신을 성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라짜로는 모든 것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판단이나 재단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의 남다른 순박함과 선한 언행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 아닌 타고난 성품 그 자체다. 그렇기에 성인이 되기 전이나, 된 후나 라짜로는 변함없이 라짜로이다.
선의를 악의로
문제는 라짜로의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마을 주민들을 소작농처럼 부리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 후작 부인은 자신이 마을 농부들을 부려먹는 것처럼, 그들 또한 라짜로를 이용하고 괴롭힌다면서 자신의 착취를 정당화시킨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마을 주민들은 선의와는 거리가 멀다. 뼈가 부서질 정도로 죽어라 일만 해도 빚만 늘어나는 상황에서 자신보다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기도 하지만, 그들보다 약자의 위치에 놓인 라짜로를 무시하고 착취하려 드는 마을 주민들의 태도는 마냥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극 중 담배의 여왕 루나 후작 부인은 마을 주민들을 소작농처럼 착취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후작 부인을 노동법 위반으로 몰락시킨 (이탈리아) 정부는 제3국에서 들어온 불법 이민자와 무국적자의 값싼 노동력을 합법적으로 착취하며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지탱해 나간다. 그리고 후작 부인, 정부로부터 연이어 착취당하는 담배농장 마을 주민들은 순진하기에 가장 만만한 라짜로의 몸과 마음을 마구 착취한다.
▲영화 <행복한 라짜로>(2018)
(주)슈아픽처스
▲영화 <행복한 라짜로>(2018) (주)슈아픽처스
시대와 공간이 변해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착취의 악순환 속에서 가장 최하위 피식자로 지목된 라짜로는 사람들의 짖궂은 요구에도 행복한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는 정녕 자신이 최하위 피식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착취하기 바쁜 인간의 어리석음까지 이해하고 사랑하겠다는 신의 거룩한 응답일까.
다만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어리석은 인간들은 어쩌면 신이 내려준 마지막 기회도 알아보지 못할 뿐. 여기 인간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염원하던 성인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는데도 성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 과연 성인 라짜로는 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직 공포와 탐욕을 상징하는 늑대만 라짜로가 가진 진정한 성스러움을 알아보는 모습이 묘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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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선의를 악의로 갚는 사람들, '라짜로'는 정말 행복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