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영화사 오원
 
공포 문학 장르로 연신 투고했지만 좋은 소식을 받지 못했던 한 작가 지망생은 자신의 고서당 아르바이트 경험을 살려 '라이트 노벨'을 써보았다. 검은색 긴 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여주인공 시노카와 시오리코의 '순정 만화풍' 삽화를 표지로 한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은 무명의 미카미 앤을 680만 부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줬다. 라이트 노벨로 시작된 작품은 7권에 이르러 명실상부한 '소설'로 인정을 받으며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되었다.

<립반윙클의 신부>의 쿠로키 하루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워 할머니에 이어 양장점을 통해 추억을 길어 올렸던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의 미시마 유키코 감독이 <다시 한번 세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들고 왔다. 바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이다.

영화는 뜻밖에도 할머니 때문에 '책 트라우마'가 생긴 청년 다이스케(노무라 슈헤이분)로부터 시작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분의 물건을 정리하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책을 만졌다가 뺨을 맞을 정도로 혼난 기억을 살려낸 다이스케. 그는 그 후 글만 있는 책을 읽지 못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그 사건만 빼놓고서는 돌아가실 때까지 식당을 운영하신, 다이스케에게 언제나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그는 문득 그렇게 좋은 분이 왜 그때 그토록 화를 냈을까란 의문이 들어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를 들고 비블리아 고서당을 찾는다.

고서당을 찾아온 난독증의 청년. 그런데 고서당의 주인 시노카와 시오리코는 돌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다친 뒤 동생의 도움을 받으며 서점을 운영하느라 쩔쩔매던 중이었다. 시오리코는 청년 다이스케를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게 되고 다이스케는 그 조건으로 자신은 혼자 읽지 못하는 <그후>를 함께 읽어달라 한다. 다이스케는 나쓰메 소세키의 <그후>를 들고 찾아갔을 뿐인데, 고서당 주인 시오리코는 책 하나로 할머니와 다이스케의 관계를 추론해 내고, 숨겨진 사연까지 예상해낸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영화사 오원
 
원래 서점의 주인인 할아버지가 사제가 되는 대신 차렸기에 성서(bible)의 라틴어 이름인 '비블리아'를 가게의 제목으로 삼았다지만 오타쿠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원조'국가답게, '고서'라고 하기가 무색하게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시작하여 다자이 오사무, 에도가와 란포 등 일본 근대 작가들은 물론 셰익스피어까지 여러 작품을 매개로 문학의 세계를 주유한다.

특히 7권으로 이루어진 각 권마다 '고서'들이 등장하고 그와 엮인 '사람'들의 사연이 소개된다. 심지어 여주인공의 어머니는 '책'을 쫓아 집을 나가기도 했는데, 그 어머니를 닮은 여주인공처럼 등장인물들은 '취미' 그 이상으로 '고서'에 연연한다.

책을 매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영화는 이렇게 씨줄과 날줄로 책과 엮인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하다가, 다이스케가 가져간 <그후>로부터 풀리기 시작한 다이스케 할머니의 '러브 스토리'로 이어간다. 과거의 젊은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가게를 찾아온 손님이었던 작가 지망생 다나카 요시오(히가시데 마사히루 분).

가게를 찾아온 첫날 실수로 정신을 잃은 다나카는 자신에게 친절한 젊은 안주인 고우라(카호 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두 사람은 '다자이 오사무의 <판도라의 상자> 책을 통해 감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이미 남편이 있던 고우라와 작가라는 재능의 한계와 집안의 반대에 부딪힌 청년 다나카의 사랑은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두 사람의 관계는 마지막 포옹을 한 각자의 손에 들려있던 '나쓰메 소세키'의 <그후>와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으로 상징된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손자 다이스케가 <그후>를 통해 할머니의 과거를 따라 고서당의 주인 시오리코와 만나듯이, 자신의 감정을 토해놓듯 쓴 '사소설'이라는 장르의 선구자 다자이 오사무 <만년>은 새로운 등장인물 다나카 요시오를 통해 다이스케는 물론, 책의 세계에 갇혀있다시피 했던 시오리코로 하여금 '사랑'에 눈뜨게 만든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영화사 오원

한 청년의 슬픈 실연의 상처를 다룬 <그후>, 부잣집에서 태어났음에도 끊임없는 자기혐오로 부터 비롯된 자살 시도를 되풀이 하며 자신의 감정을 토해놓은 작품을 썼던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 등까지, <비블리아 고서점 사건 수첩>은 책을 통해 사랑을 읽고, 책을 통해 사랑과 자아를 살피게 한다.

또 어쩌면 상투적일 수 있는 청년과 유부녀의 불장난 같은 사랑은 작가 지망생인 청년이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읽어나가는 작품들을 통해, 그리고 결국은 발표되지 못한 그의 '사소설'을 통해 로맨틱하고 아련한 러브 스토리로 승화된다.

긴 호흡의 소설을 짧은 시간의 영화에 녹여내느라 때로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그조차도 고서점이라는 현실적이지 않은 공간, 거기에 모여드는 현실에서 한 발 비껴선 인물들, 그리고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책으로 인해 희석된다.

홋카이도의 시골 마을 소라지의 와이너리, 고베의 고즈넉한 골목 끝에 자리 잡은 미나미 양장점을 통해 사랑과 안식을 이야기 했던 미시마 유키코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한 발 성큼 비켜서서 상상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볼 만한 영화다. 무엇보다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이라면 '일독'해 볼 만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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