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신임 전무이사(오른쪽) 등 새 임원진이 지난 2017년 11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향후 계획과 각오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홍명보 전무이사의 쓴소리, '공감 제로'라 비판받는 이유우선, '2002 한-일 월드컵 성공 원인'을 크게 잘못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과거의 시간과 선배들의 힘"이 모여 성공할 수 있었다고 홍명보는 말했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실력 부족'이었다. 우리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한국 축구는 '체력이 강하고 기술이 부족한' 줄 알았다. 현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1승을 거둔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성공 요인은 누가 뭐래도 선수 선발에서 '편견을 깬' 히딩크 감독이었다. A매치 경력이 얼마이든 어디서 뛰든, 히딩크는 최고의 모습을 보이는 선수만 선발했다. 당시 스타급 선수였던 이동국과 고종수가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명이었고 윙백이었던 박지성을 공격수로 끌어올리고, 대학생이던 차두리를 월드컵에 데려간 것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계의 기존 인식을 깨면서 파격적인 선수 선발을 했고, 박지성과 이영표가 2002년 월드컵에서 활약한 것도 이 덕분이었다. 이들의 월드컵 출전을 두고 '첫 월드컵에 나가 성공했다'고 말한 홍명보 대표이사가 비판받는 이유는, 이와 같은 전후 사정을 지우고 마치 '(박지성 이영표 등이) 그저 무임승차했다'는 식으로 들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당시 월드컵 개막 약 6개월을 앞둔 시점까지 강인한 체력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반면 '체력이 강점'이라던 기존 축구계의 인식에서 벗어나 '우리의 기술이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전과 달리 세계 강호들을 상대로 평가전을 치렀고, 0-5로 패해도 주눅 들지 않았다. 자신의 길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고, 여론에 흔들리지 않았다. 1990년대 볼 수 없었던 지도 철학이 신화를 만들어낸 셈이었다.
또 하나의 월드컵 성공 요인이 있었다면 막대한 지원이었다. 숱한 해외 전지훈련을 치렀고, 두려움 없이 강팀과 평가전을 치를 수 있었다. 히딩크의 뜻대로 대표팀이 나아갈 수 있게끔 도왔다. 무엇보다 히딩크란 명장을 데려온 투자가 있었다. 그 당시, 과거에 사로잡힌 선배들은 어떠한 목소리를 냈나. 당시 많은 축구계 인사들은 월드컵 본선 전까지 '평가전 5골차 패배' 등을 이유로 히딩크의 판단에 의문을 드러내곤 했다. 이를 알면서도 과거의 시간과 선배들의 힘이 '신화'를 만들었다 할 수 있을까.
박지성과 이영표, 안정환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저 '운'이었다는 식으로 말할 수 없다. 예로 박지성은 그 선배들이 주름잡고 있던 2002년 월드컵 전까지 대한민국 축구판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해외 무대를 떠돌던 선수였다. 피나는 노력과 남다른 도전 정신이 유럽 무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인정받는 박지성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국내에선 찾아볼 수 없는 지도자를 만난 행운도 따랐다. 이것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관점에 가깝다. 적어도 '자신은 성공하고 다른 사람들이 못하는 것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이라는 해석보다는 말이다.
다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로 돌아와서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던져 보자. 2018년 한국 축구에서 하석주와 차범근의 사례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후배들의 땀이 헛되지 않도록, 홀로 실패의 책임을 떠안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선배들이 존재하는가. 선뜻 '그렇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같은 날 축구협회의 주요 보직에 앉은 이의 발언과 과거 대표팀 감독직에서 경질된 이의 발언을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홍명보 전무이사가 소신을 밝혀 후배들을 비판한 것과 차범근 전 감독이 후배인 하석주 감독을 위로한 것이 선명하게 비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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