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살인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세 번째 살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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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 등 그동안 잔잔하고 따뜻한 가족영화를 많이 선보였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진실'에 관한 통찰력 있고 강렬한 질문을 던진다.
오는 14일 국내 개봉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세 번째 살인>은 지금까지 그의 작품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감독 특유의 잔잔한 흐름 가운데 날카로운 시선이 번득인다. 지난 2004년 발표한 <아무도 모른다>에 가까운 듯하면서도 그것과는 또 다른 색깔이다.
<세 번째 살인>은 진실과 거짓, 심판과 구원, 믿음과 불신 등 상반된 위치에 놓인 것들을 전복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것들을 새롭게 생각하도록 한다. 영화의 포스터에는 "좋은 의미로 관객에게 멋진 배신감을 주고 싶었다"고 한 감독의 한마디가 적혀있다. 그의 의도처럼 영화는 살인사건에 얽힌 진실을 여러 차례 전복시키며 끝없는 혼란과 배신을 안긴다.
승률을 높이는 것밖에 모르는 냉정한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 분)는 자신이 맡은 살인사건의 미궁 속으로 점점 빠져 들어간다. 살인범 미스미(야쿠쇼 코지 분)는 모든 범행을 자백한 살인범이지만 여러 번 진술을 번복함으로써 변호사 시게모리에게 혼란을 준다. 여기에 살해당한 공장 사장의 딸 사키에(히로세 스즈 분)는 아버지에 관한 진실을 말하며 사건의 베일을 벗긴다.
이 영화는 '살인'이나 '진실', '재판' 등을 다루는 다른 비슷한 영화들과 완전히 결을 달리한다. 이 지점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보통 이런 장르의 영화는 처음에 혼란스럽게 시작해 이야기가 진행되어 나가며 진실이 밝혀지고 명료하게 큰그림이 드러난다. 그러나 <세 번째 살인>은 처음에 모든 것을 확실하고 명료하게 시작해 오히려 끝을 향해 갈수록 점점 흐려지고 모호해진다. 관객은 어떤 길을 힘들게 역행하여 걸어가서 한 번도 마주한 적 없었던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이 영화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 살인을 행한 주인공이 믿는 바처럼 "마땅히 죽어야할 인간종류"가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의지와 상관없이 죽게 되는 가혹한 운명에 속한 인간은 과연 누구의 심판을 받은 것인지, 그것을 심판하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지에 관한 이야기까지. 인간과 그 너머의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거리가 눈처럼 소복하다.
새하얗게 깨끗한 눈이 어느 순간 녹고 그것이 어떤 발자국에 의해 짓밟혔을 때 거무튀튀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처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완전무결한 눈이 아닌 진실과 거짓이라는 발자국에 짓밟힌 검은 눈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세 번째 살인>은 제74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제42회 토론토국제영화제 마스터스 부문 후보 공식 초청,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후보 초청 등의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