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에서 열린 시사회에 초대받은 캄보디아 유명배우가 초대장을 내보이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박정연
전체인구의 1/4에 해당하는 200만 명이 희생된 캄보디아 판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는 사실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니다. <미션>(Mission)이라는 영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롤랑 조페 감독이 지난 1984년 제작한 〈킬링필드〉가 캄보디아 내전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반공'이 국시였던 당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은 단체관람으로 이 영화를 봐야 했다. 기자 역시 같은 반 친구들과 이 영화를 대한극장에서 본 기억이 난다. 40~50대 이상 올드 영화 팬들이 캄보디아 하면 제일 먼저 <킬링필드>를 떠올리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시 영화출연이 처음이었던 배우 헹 S. 응오르는 이 영화 한편으로 1985년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조연배우상을 거머쥐었다. 영화는 편집상, 촬영상 등을 포함해 3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하지만, <킬링필드>는 캄보디아의 아픈 역사와 치부를 그대로 보여준 사실감 넘치는 걸작이라는 영화비평가들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치평론가들과 역사가들부터는 최악의 영화라는 혹평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하고 명확했다. 철저히 미국자본에 의해, 미국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보니, 많은 역사적 진실들이 왜곡되고 가려졌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물론이고, 당시 참전한 종군기자들도 이 영화가 70년대 캄보디아를 피로 물들인 킬링필드의 원인제공자가 미국이었다는 기본적인 사실마저 교묘히 숨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이 영화는 60~70년대 미국의 폭격으로 무고한 캄보디아의 민간인 최소 50~80만 명이 죽고,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소년들이 오직 부모의 복수를 갚겠다는 일념 하에 크메르루주 게릴라군의 일원이 되는 전후 과정마저 배제시켰다. 미국은 전범의 책임에서 빠진 채 오로지 크메르루주만을 일방적인 가해자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그러한 이유로 미국의 시각이 아닌, 피해당사자인 캄보디아인들의 시각이 반영된, 역사의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알릴 그런 영화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물론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만한 작품은 거의 전무했다. 문제는 거액의 자본금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영화 <킬링필드>가 제작된 지 30여 년만인 지난 2015년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미국 최대 영화산업계 큰손과 손을 잡으며 단숨에 해결됐다.
영화제작 발표에 앞서 졸리는 여러 인터뷰에서 "캄보디아는 내 아들 매덕스의 고국이다. 원작을 읽는 순간 스크린으로 옮기고 싶다는 꿈을 가져왔다. 과거 캄보디아의 아픈 역사를 캄보디아인의 시각과 관점에서 해석하고 싶다"며 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졸리는 "소녀의 눈으로 경험한 과거 시대 사람들에 관한 진실된 이야기를 하겠다"고도 말했다. 그는 캄보디아 출신 원작자와 공동으로 극본작업에 나서는 열의까지 보였다. "이 영화는 오직 캄보디아를 위해 만들었다"는 졸리의 말 한마디에 캄보디아 팬들은 열광하며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