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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범>은 장산범을 묘사하는 대신에 '소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허정 감독은 "전부터 소리가 소재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장산범 괴담을 듣자마자 바로 내가 찾던 소재라고 생각했다"고 말할 정도로 <장산범>은 소리를 중요시한다. <장산범>에서 느끼는 소리의 힘은 구전 또는 문자로는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 주연을 맡은 박혁권 배우는 "시나리오를 받고 어떤 사운드와 영상으로 완성될지 궁금했다"고 이야기한다.
소리를 담당한 김석원 사운드 디자이너는 <장산범>의 사운드를 '방향성'으로 정의하며 "극장 사운드 시스템은 5.1 돌비 채널이 대다수이지만, 그 채널에서도 360도 전 방향 효과를 가진 사운드를 통한 스릴를 완성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장산범>은 극장에서 소리를 체감하는 맛이 풍부하다. 백미는 바로 동굴 장면. 암전과 소리가 공간을 지배하는 동굴 장면은 쉼 없이 관객의 심장과 고막을 자극한다.
얀 해롤드 브룬번드 교수는 책 <사라진 히치하이커>에서 강력한 호소력이 있는 단순한 이야기, 실재한다는 신념에 근거, 의미 있는 메시지 또는 도덕성을 암시를 도시 전설의 요건으로 꼽았다(참조: 조민준, <한겨레>, "도시괴담은 공포를 먹고 산다"). 그가 언급한 요건 가운데 세 번째는 괴담이 그 시대의 욕망을 표출하는 방식임을 뜻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괴담에도 시대의 정서가 반영되었다. 군사독재 시절은 군대나 학교라는 갇힌 집단을 소재로 사용하여 폐쇄성을 드러냈다면 최근 늘어난 조선족 등 중국과 관련된 괴담은 우리 사회에 흐르는 경계심을 표출하고 있다.
불신 그리고 공포<숨바꼭질>에서 다룬 '초인종 괴담'은 시선과 침입의 공포를 담고 있다. 여기에 영화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동산의 욕망을 투사하여 "집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을 건드렸다. '장산범 괴담'은 낯선 존재가 주는 무서움이 서려 있다. 영화는 목소리를 흉내 내는 장산범을 통해 '불신'을 끄집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