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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7월) 세계유산등재 당시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정부의 대응보다는 언론이 군함도 이슈를 이끌어가고 있었고, 가을(9월) 무렵 <무한도전> 방송으로 꺼져가던 군함도의 신음 소리는 다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또 한편 구석에서는 그 겨울에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 지원위원회'가 해산되었다.
이름만 보아도 어떤 기관인지 알 만하지만, 본 위원회의 설립 목적을 애써 적시해 보자.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나아가 1965년에 체결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과 관련하여 국가가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와 그 유족 등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위로금 등을 지원함으로써…."본 위원회는 2010년 조직된 이래로, 꾸준한 활동과 성과를 보여 왔으나, 2015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운영이 정지되었다. 국회의 동의를 받지 못하여 연장할 수 있는 관련법을 마련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군함도 관련해서, 본 기관은 2012년 12월 27일 발행으로 보고서 "사망 기록을 통해 본 하시마(端島) 탄광 강제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실태 기초조사"를 세상에 내놓았다.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은 1986년 공문서 '화장매장인허증'을 발굴하는데 여기에는 1925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인 122명이 왜 사망하였는지, 일본인보다 얼마나 더 많은 비율로 사망하였는지를 추산할 수 있는 기록이 남겨져있다.
지금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군함도에서 122명이 사망하였다는 사망자 수는 이 모임이 밝혀낸 숫자이다. 나가사키에서 1980년대 당시 수기로 이렇게도 계산하고 저렇게도 계산해 낸 것을 위의 위원회는 그 명부를 다시 받아 그들의 본적지 등을 조사하여 신원을 더욱 정확히 밝혀내었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과 한국의 공공기관이 연대한 결과로, 한쪽은 현지에서 발굴, 조사, 해석하고, 다른 한쪽은 이를 이어 받아 더욱 정밀하게 확증지었다. 그들 각각이 가지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공동으로 이뤄낸 쾌거로서, 증거를 내밀고 일본에게 사죄, 보상,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트인 것이다.
지난 7월 26일 개봉된 <군함도>는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도심에서 번쩍이던 한순간의 섬광과 원폭 구름을 바라보던 조선인 강제노동자들을 영상에 실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폭2세 환우들은 아직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원폭 피해의 대물림을 따져 묻고 있다. 최고연령 70세가 다 되어 가는 원폭2세 문제를 일본이 인정하지 않으니, 한국 정부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아이러니한 지점들을 <군함도> 는 다시 우리들에게 살펴보게 하고 잊지 말라고 각성시켜 준다.
<군함도> 는 소소한 이야기보다는 굵직굵직한 큰 숙제를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아니 우리에게 숙제가 남아 있음을 환기시켜 주었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또 무엇이 있는가. 친일파 척결, 조선인 원폭 피해자 문제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군함도> 의 또 다른 한 축은 미불임금의 청산이다. 손석희 앵커의 <뉴스룸>은 일본에 대한 개인 피해 청구권이 유효함을 보도하였다. 미쓰비시 지배하에 강제 노동을 당하기도 하였으며, 어떤 경우는 원폭까지 입은 조선인들이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있었다. 지금도 법정에서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군 피해 위안부 할머니 문제도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식민지 국가가 가해 국가로부터 배상금을 제대로 받아낸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마중물을 부었고 남은 것은 우리의 몫이다.
금기에 도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