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우신
제르비스는 제루샤에게 청혼을 하고, 제루샤는 이를 거절하면서 '키다리 아저씨'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리고 한 번만 만나달라고 부탁한다. '키다리 아저씨'는 그런 제루샤의 요청을 승낙한다. 제루샤는 제르비스를 만나러 오고, 제르비스를 만나러 와서 키다리 아저씨와 제르비스가 동일 인물임을 알게 된다. 둘은 서로의 사랑을 깨닫고, 키스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둘의 관계는 매우 아름답게, '잘' 그려졌다. 예컨대, 제루샤가 왜 지미를 택하지 않고 제르비스를 택했는지 제루샤는 편지로 설명한다. 지미는 '어리다'는 이유였다. 제르비스는 얼굴도 모르는 제루샤였지만, 편지에 묻어나던 제루샤에 끌렸고, 제루샤는 펜들턴 가문이지만, 펜들턴 가문답지 않은 그의 미덕에 끌렸다. 둘이 사랑에 빠질 이유는 충분했다.
이 서사에서 아쉬운 결말은, 단순히 둘이 이성애 로맨스에 빠졌음이 아니다. 다만, 그 과정에 있어서, 제르비스가 '청혼'을 하는 것은(원작 소설을 따른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아쉽다. 제루샤와 제르비스의 사랑이 가득한 재결합과 키스는 관객들이 '둘이 결국 결혼을 하겠구나'라는 추론을 충분히 가능케 한다. 연애와 결혼이 상징할 수 있는 것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예를 들어 제루샤 에봇은 이제 제루샤 펜들턴이 되는 것이다. 결혼이 가문 간의 결합, 새로운 사회로의 '편입'을 상징하는 사회에서 '그래서 결국 제루샤는 펜들턴이라는, 거대한 가문의 일원이 되는구나'라는 아쉬움이 한편으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키다리 아저씨>의 끝은 새로운 결혼이라는 방향성을 제시할 수도 있다. 제르비스 펜들턴은 펜들턴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제루샤가 강조했듯 기존의 펜들턴 가문 사람들과 다른 인물이다. 제르비스는 펜들턴 가문의 사람이지만, 어떻게 보면 펜들턴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고 읽을 수도 있다. 이성애 가부장 가족 제도에 묶이지 않던 제루샤 에봇과, 소속되었음에도 그들과 다른 행보를 걸어왔던 제르비스 펜들턴의 결합. 어쩌면 <키다리 아저씨>의 결말은, 가부장제를 유지해오던 이성애 결혼 제도에 약간의 흠집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힐링 뮤지컬이라는 말만으로는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