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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함무라비법을 좋아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형동양의 복수를 만인 평등으로 소화했다. 실수였다. 같은 계층끼리는 서로 동등하게 가해할 수 있지만, 피해자가 하위 계층일 경우 단돈 몇 푼만으로도 보상이 끝날 수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설령 그런 계급 차별이 없다 해도, 직접 보복을 부추기는 그 성문법에 이젠 찬성하지 않는다.
숙희(김옥빈 분)는 킬러다. 나어린 시절 침대 밑에 숨어서 목격한 아버지의 죽음이 그 빌미다. 중상(신하균 분)은 숙희를 킬러로 만든 킬러 메이커다. <악녀>의 스토리는 숙희와 중상의 관계가 진전되거나 퇴색하는 변화로써 확충된다. 갈등을 유발하는 복선이 전개 과정에서 하나둘 쌓여가지만 해결됨이 없이 클라이맥스를 향한다. 숙희의 멘붕을 조성해 악녀 이미지를 도출하려는 구조다.
점층적으로 연계되는 복선들은 관객의 몰입도를 높여 준다. 숙희는 몰랐지만 자기를 길러낸 중상은 아버지를 죽인 원수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아버지를 위한 복수마저 포기하고 싶을 만큼 사랑해서 결혼한 정인이다. 들떠 움직이던 신혼여행 첫날, 갑작스레 조직일로 나선 그가 죽었다는 비보에 현장으로 달려가 싸운 끝에 남한의 국가 비밀조직에 사로잡힌 그녀를 유일하게 미소 짓게 하는 딸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부활하듯 나타난 그는 자기 딸임을 알면서도 그녀의 두 번째 남편 현수(성준 분)조차 끝까지 지키려던 딸을 죽인 냉혈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