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를 시작한 지 근 6개월째. 지난 10월 홍콩 여행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에 뛰어들리라 마음먹었다. 준비 기간이 길어지고 기대가 늘어날수록 실망도 큰 법이다. 번번이 필기시험에 떨어지고, 어떨 땐 서류전형도 통과하지 못해 '광탈'하기도 하고. 날씨가 화창해질수록 어깨가 축 처지고 점점 기가 죽어가는 요즘, 함께 공부하는 스터디원의 추천으로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Flying Colors,2015)를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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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돼"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주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지만 도리어 부적응자로 찍힌 사야카에게 엄마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응원한다. 남동생 류타를 프로 야구선수로 만드는 데 골몰하는 아빠 대신 사야카를 보듬어 주는 건 엄마뿐이다.

공부는 완전히 포기하고 하고 싶은 대로만 하다보니 학교에선 구제불능으로, 성적은 변변한 대학에 지원서도 내지 못할 정도인 사야카. 학교에선 분위기를 흐린다며 정학 처분을 내리고 엄마는 사야카에게 학원에 가 보라고 제안한다.

 사야카가 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간 날. 츠보타 선생님을 만난 뒤부터 불량소녀 사야카의 앞날이 달라진다.
사야카가 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간 날. 츠보타 선생님을 만난 뒤부터 불량소녀 사야카의 앞날이 달라진다.네이버 영화

상담 시험에서 한 문제도 맞추지 못한 사야카. 하지만 츠보타 선생님은 오히려 '문제 빈 칸에 답을 다 채워넣다니, 창의적이다'며 칭찬한다. 상담 끝에 츠보타 선생님과 사야카는 명문 게이오 대학을 목표로 정하고 공부를 시작한다.

고등학생이라고 하기엔 터무니없는 상식과 교육 수준의 사야카도 학원에서만큼은 '오늘은 무려 한 문제를 맞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학생이다. 츠보타 선생님은 학원에 오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공부를 봐 준다. 놀기 좋아하는 사야카에겐 클럽 용어로, 게임을 좋아하는 학생에겐 게임 캐릭터에 비유하며 하나하나 알려주는 츠보타 선생님의 모습은 참 따뜻하다.

"학교에서 외면당한다 해서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닙니다. 힘든 도전임을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안 되는 학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있다면 오직 무능한 선생만 있을 뿐입니다."

노는 시간도 쪼개 가며 공부에 불을 당긴 사야카가 눈에 띄게 발전하자, 츠보타 선생님은 엄마에게 사야카의 가능성을 믿어달라고 호소한다. 아빠가 도와주지 않을 걸 알기에 엄마는 사야카의 학원비를 대기 위해 밤낮없이 일한다. 함께 놀던 사야카의 친구들도 대학 시험 전까지 공부에 집중하라며 그만 보자고 한다. 담임 선생님도, 아빠도 구제불능이라고 하지만 주변 이들이 물심양면으로 응원해주는 모습을 보며 사야카는 더욱 독한 마음으로 공부에 매진한다.

 독하게 공부하기로 마음 먹은 사야카는 머리도 단발로 자르고 더욱 열심히 한다.
독하게 공부하기로 마음 먹은 사야카는 머리도 단발로 자르고 더욱 열심히 한다.네이버 영화

중간에 고비도 몇 번 찾아온다. 동생 류타가 야구를 포기하고 중간에 집으로 돌아와 버리자 큰 실망에 휩싸인 아빠는 류타를 구타하기에 이른다. 동네 불량배들과 어울려 노는 류타에게 사야카는 돌아오라며 따끔하게 말하지만, 스스로도 게이오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어진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고 격려하는 츠보타 선생님의 말은 희망고문같이 느껴져 답답하기만 하다.

학원 문을 박차고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달려간 사야카. 미안하다며 펑펑 우는 사야카에게 엄마는 '괴로우면 여기서 그만둬도 돼, 충분히 노력했어'라며 꼭 안아준다. 사야카는 엄마에게 함께 게이오 대학에 가 보자고 제안했고, 캠퍼스를 둘러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학원에 돌아온다.

젊었을 적 꿈이었던 프로야구선수의 꿈을 류타에게 강요하다 아들이 좌절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구제불능으로만 여겼던 딸 사야카가 피나는 노력으로 게이오 대학 입학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영화 말미엔 아바도 그간의 행보를 되돌아보며, 사야카를 시험장까지 데려다주며 '화이팅'을 외친다.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 늘 약점이었던 '논술' 영역에서 기지를 발휘한 사야카는 마침내 게이오 대학에 합격한다.

"혹시 가장 큰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침울해지더라도 큰 목표에 도전했던 경험은 분명 미래에 너한테 큰 힘이 될 거야. 그러니 넌 여전히 당당한 모습으로 똑바로 거침없이 나아가길 바란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기에 영화가 이미 '사야카의 성공기'임을 예상했다. 하지만 보는 내내 두 손을 모으고 사야카가 꼭 해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수없이 써낸 지원서가 번번이 떨어질 때마다 '나 참 보잘것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얼마 전에도 기대했던 곳에서 불합격 통지를 받고 속상한 마음에 펑펑 울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묵묵히 응원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사야카가 항상 좋은 사람이라는 걸 믿어 주는 엄마와 츠보타 선생님을 보며 이들이 생각났다.

그래서인지 사야카가 게이오 대학에 설령 합격하지 못했더라도 영화는 내게 여전히 해피엔딩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위치에 있건, 어떤 모습을 하건 사야카 그 자체로 믿어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나처럼 입시나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누군가를 가르치고 키워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픈 영화다.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일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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