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가 되었던 제인 마치의 정면 초상화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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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 노년의 여자 작가가 쓴 자전소설을 읽는 내레이션으로 전개된다. 배경은 1920년대 프랑스 식민지의 베트남. 17세의 가난한 프랑스인 소녀는 집에 가기 위해 탄 페리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한 부유한 연상의 중국인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소녀에게 물질적인 호의를 베풀어 주는 대신 그가 소유한 '비밀의 집'에서 밀회를 갖자고 제안한다. 보수적인 기독 학교를 다니는 소녀지만, 그녀는 그가 가진 돈과 그녀가 가졌던 성적 호기심을 시도해 볼 수 있게 된 것에 마냥 좋기만 하다.
남자에게는 아버지가 정해 놓은 혼처가 있지만, 그들은 결혼 날짜 전까지 짧은 로맨스를 즐기는 데 동의한다. 소녀는 남자가 제공해 줄 수 있는 물질과 젊은 육체를 마음껏 사용 (?)한다. 그의 정략 결혼을 그들의 계약 만료일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반대로 남자는 그녀와 시간을 보내면서 서서히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가 물려줄 막대한 부를 포기 하지 못해 결국 소녀를 떠나 보내고 사랑하지 않는 여자의 신랑이 된다.
소녀는 그를 처음에 만났던 배를 타고 작가가 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갑판에 기대있던 소녀는 먼 발치에서 검은 세단 안에 미동 조차 없는 남자의 그림자가 그녀를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해가 질 때까지 멍한 표정으로 배에서 남자가 있던 쪽을 바라보던 그녀는 밤이 되어서야 눈물을 쏟아내며 오열한다.
프랑스 출신의 여배우 잔 모로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 영화는 그녀의 내레이션으로 끝을 맺는다.
"전쟁 이후 몇 년이 흘러 소녀가 결혼과 이혼, 책의 출판 등을 거친 후, 남자는 그의 부인과 함께 파리로 왔었다. 그는 소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긴장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책을 쓰게 된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의 오빠가 죽은 것을 전해 듣고 슬펐다고도 했다. 그리고는 할말이 없어진 그는 예전과 같이 말했다. 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그녀를 사랑하는 것을 절대 멈추지 않겠다고. 죽을 때까지."<연인>은 알랭 르네의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Hiroshima Mon Amour)>의 원작을 쓴 마게리뜨 뒤라(Marguerite Duras)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그녀의 서정적인 문체로 쓰인 내레이션이 녹음 당시 70세였던 잔 모로의 노쇠한 목소리를 거쳐 나와 문학적인 연륜을 느끼게도 하지만, 영화는 사실 책의 페이지보다는 정물화에 가깝다.
영화에서 소녀를 연기했던 제인 마치(당시 18살)가 속옷조차 입지 않고 걸친 낡아빠진 실크 원피스. 골동품 같은 원피스 사이에서 빛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 소녀의 작은 얼굴을 다 덮어 버릴 것 같은 남자용 중절모. 그녀를 관음증 적으로 바라보는 고급 수트를 입은 검은 피부의 남자. 남자의 차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소녀의 손 끄트머리에 얹어 보는 남자의 새끼 손가락. 처음 사랑을 나누고 무릎을 꿇고 앉아 참회하듯 소녀의 몸을 닦아주던 남자. 결혼식 전날, 꺼져가는 촛불 아래서 아편에 찌들어 몸도 가누지 못하는 남자가 소녀를 올려다 보던 힘없는 눈빛.
"인간의 에로티시즘은 죽음과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