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전자랜드의 중심에는 박찬희가 있었다
KBL
190의 큰 키, 빠른 돌파 능력과 뛰어난 패스 센스, 그리고 수비 능력까지.
2005년, 고등부 최고의 가드라고 평가받던 박찬희가 경희대학교에 진학하자 농구계는 술렁였다. 한국 농구의 숙원이던 '장신 포인트가드'라는 평을 받으며 연세대, 고려대 등 많은 명문대가 노렸기에 그의 선택은 더욱 의외였다. 그는 경희대 입학 첫해부터 팀을 우승시키며 왜 본인이 고교 랭킹 1위였는지를 완벽히 입증했다.
박찬희는 이후 4년간 경희대에서 대학 최고의 가드로 군림했다. 당연히 2010-11드래프트의 주인공도 그였다. 드래프트 전부터 강력한 1순위로 거론되며 실제 드래프트 날에도 KT&G(현 KGC)에 전체 1순위로 입단했다.
그는 당시 드래프트가 끝난 후 경희대 진학 이유에 대해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라"는 아버지의 조언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중위권이던 경희대를 우승시키고, 자신 역시도 대학 최고의 가드가 되었기에 스스로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준플레이오프 삼성과의 경기를 앞두고, 우여곡절의 농구 인생을 겪은 박찬희는 다시 한번 '뱀의 머리'로 도약할 기회를 앞두고 있다.
KGC에서의 우승, 그 이후로의 하락세박찬희는 프로 입성 첫 해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다. 평균 34분 출장해 12득점의 4리바운드 4어시스트의 기록을 남기며 이정현(KGC인삼공사)을 제치고 신인왕을 당당히 차지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2년에는 김태술, 양희종, 오세근과 함께 초호화 라인업을 구축하며 정규리그 2위, 플레이오프 우승을 이뤄냈다.몇 년간 하위권을 전전하던 KGC의 리빌딩이 완성되었던 순간. 비록 챔프전 MVP는 오세근이었지만, 소속팀을 우승시키며 다시 한 번 '뱀의 머리'가 된 박찬희였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박찬희의 커리어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는 팀을 우승시킨 이후 상무에 입단했는데, 제대 후 심각한 슛 난조를 겪으며 슬럼프에 빠진다. 애초에 신인 시절부터 떨어지는 야투율이 큰 단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상무에서 복귀한 13-14시즌엔 5%의 3점 슛 성공률을 보이며 신인 시절 30%에도 훨씬 못 미치는 성공률을 보였다. 그리고 이후 2년간 20% 초반의 3점 슛 성공률을 기록하며, 그는 영원할 것 같았던 인삼공사의 야전 사령관에서 백업으로 밀려나게 된다.
16-17시즌을 앞둔 KGC인삼공사는 오세근, 이정현, 김기윤, 양희종, 강병현 등 국가대표급 라인업을 구성하며 말 그대로 '용'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우승후보였다. 이런 KGC에게 고연봉자 후보군 박찬희는 어쩌면 '용의 꼬리'와 같은 존재였다. 결국 그는 팀 내 이해관계 속에서 전년도 최하위 팀이었던 전자랜드로 트레이드된다.
전자랜드에서의 화려한 비상... 슛, 극복할 수 있을까전자랜드는 박찬희의 농구 인생에 어울리는 팀 컬러였다. 항상 입단 당시에는 중하위권 팀을 우승권으로 이끌었던 그였기에 전자랜드로의 이적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이 전자랜드의 새로운 에이스로 자리 잡으며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7.4어시스트(리그 1위)의 패스 능력은 발군, 거기에1.8스틸(리그 4위)로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2월 2일 삼성전에서는 생애 첫 트리플더블(20득점 10리바운드 12어시스트)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KBL 베스트5를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선정되며 커리어 하이를 새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