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조 조정과 명예 퇴직이 본격 등장해 해고가 자유로워졌다. 그로부터 약 20여 년이 지난 현재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 각광받는 출발점이 되었다.

사측의 해고가 쉬워지자 노동자들의 회사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정년까지 봉직하며 충성을 바쳐야 하는 대상이라는 인식이 사라지면서 이직이 자유로워졌다. 급여, 복지, 환경 등 보다 좋은 조건을 모색하고 비교해 직장을 옮기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한국 프로야구에 FA가 도입된 것도 비슷한 시기인 1999년이다. 이전까지 프로야구 선수에게는 직장 선택의 자유가 전혀 없었다. 구단의 드래프트를 통해 지명된 선수가 소속팀에서 줄곧 뛰다 은퇴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FA 이적을 선택한 최형우와 우규민 (사진 편집: KBReport.com 케이비리포트)

FA 이적을 선택한 최형우와 우규민 (사진 편집: KBReport.com 케이비리포트) ⓒ KIA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


트레이트 혹은 방출이 아닌 한 유니폼을 바꿔 입는 것도 불가능했다. 1980년대에는 구단에 밉보인 선수들의 보복성 대형 트레이드도 자행되었다. 1982년 출범된 한국 프로야구에는 현재까지 선수에게 트레이드 거부권이 없다. 선수가 트레이드를 거부하는 유일한 방법은 은퇴뿐이다.

드래프트는 선수 개인의 직장 선택의 자유를 막는다. 하지만 리그의 균형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만일 부자 구단이 돈을 앞세워 신인 선수들을 싹쓸이한다면 리그의 순위는 고착화된다. 경기를 관전할 필요성이 사라져 팬들이 떠날 것이다.   

억대 연봉 선수의 숫자가 과거에 비해 크게 증가했으며 프로야구 선수가 개인 사업 소득자로 분류되지만 여전히 선수는 '을'이다. 리그나 팀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레전드조차 '갑'인 구단이 더 이상 쓰지 않겠다면 등 떠밀려 은퇴하는 것이 현실이다.

 1군 경쟁 기회를 잡지 못하고 2016시즌 뒤 은퇴한 LG 이병규

1군 경쟁 기회를 잡지 못하고 2016시즌 뒤 은퇴한 LG 이병규 ⓒ LG 트윈스


은퇴해 유니폼을 벗는 시점까지조차 조명 받지 못하는 쓸쓸한 선수는 훨씬 더 많다. '방출'은 '해고'와 동일한 의미의 서글픈 단어이다. 그런 의미에서 FA는 선수에게 찾아오는 유일한 직장 선택의 기회이다. 선수 본인이 오랜 기간 꾸준한 노력과 활약을 통해서만 손에 넣을 수 있다.

프로야구 선수의 직업인으로서의 생명은 짧다. FA는 그 사이 한 번 올까말까 한 호기이다. 자신이 원하는 직장으로 보다 좋은 조건을 얻어 이직할 수 있는 평생 단 한 번의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FA 자격을 취득했으나 은퇴한 용덕한

FA 자격을 취득했으나 은퇴한 용덕한 ⓒ NC 다이노스


베테랑 FA 선수들의 이적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FA 등급제가 도입되어야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현재처럼 보상 선수와 보상금이 족쇄가 되면 다년 간 특정 팀을 위해 공헌해서 얻은 직장 선택의 권리마저 행사하지 못하게 되기 떄문이다. 

더불어 거액의 계약을 맺고 이적하는 FA 선수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스스로 쌓아올린 성과를 통해 능력이 입증된 직장인이 보다 좋은 대우를 받고 이직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듯 선수들 또한 보다 나은 조건의 팀으로 이적하고 싶은 욕구를 인정받아야 한다.

오랫동안 응원했던 팀의 간판 선수를 떠나보내는 것은 야구팬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다. 이적하는 FA 선수가 정제되지 못한 인터뷰로 전 소속팀 팬들에게 서운함을 안기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곤 한다.

하지만 세련된 언변이 '생계 수단'인 정치인조차 말실수를 피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선수가 모든 이를 만족시킬 능수능란한 인터뷰를 하기란 쉽지 않다. FA 자격을 취득한 뒤에도 원 소속 구단에 잔류하는 선수가 팬들의 애정과 환호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FA 이적 선수를 향한 인신공격성 비난은 지양해야 한다.

최근에는 샐러리맨 대다수가 직장 생활 기간 동안 몇 번의 이직을 경험하게 된다. 프로야구 선수의 FA 이적도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해불가의 영역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정당히 행사한 이들을 '배신자'로 취급해서는 곤란한 이유다.

[기록 참고: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KBO기록실, 스탯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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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글: 이용선 필진/ 감수 및 편집: 김정학 기자) 이 기사는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에서 작성했습니다. 프로야구/MLB필진/웹툰작가 상시모집 [ kbr@kbreport.com ]
FA KBO리그 프로야구 KBREPORT 최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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