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딸> 포스터.
영화 <딸> 포스터. Zambeel Films

이슬람 문화권은 여성의 조혼 풍습이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런데 조혼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여성에게는 선택권이 없다고 한다. 이는 그들이 결정권자인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유엔은 한 보고서를 통해 이 여성들이 가족이나 친구와 떨어져 고립되거나 교육, 취업 등의 기회를 누리지 못한다고 지적한 바 있고, 세계보건기구는 육체적으로 미성숙한 소녀의 임신과 출산이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파키스탄 영화 <딸>(원제 DUKHTAR, 아피아 나다니엘 감독, 2014)는 바로 이 조혼을 소재로 한 영화다. 파키스탄은 여성들의 인권과 관련, 좋지 않은 뉴스와 연루되는 경우가 많은 나라다. 최근에는 명예살인이나 조혼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많은 남성 중심 이슬람 커뮤니티들이 강하게 저항하고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딸과 백발 노인의 결혼

 영화 <딸> 스틸 사진.
영화 <딸> 스틸 사진. Zambeel Films


영화 속 알라 라키(사미야 뭄타즈 분)는 파키스탄 북동부 산악지대 한 시골 마을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엄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은 알라 라키 모녀의 바깥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는데, 덕분에 알라 라키는 열다섯 살에 시집을 온 그 날 이후 한 번도 어머니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적대 관계에 있는 이웃 부족과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정략혼을 맺기로 한다. 문제는 알라 라키의 딸이 아직 어린 데다 결혼 상대가 호호백발 노인이라는 점이다. 이를 막기 위해 알라 라키는 어린 딸을 데리고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알라 라키의 결정이 목숨을 건 일이라는 건, 비단 파키스탄이 명예살인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에 따르면 이 나라 지방 군벌 조직원들은 총을 들고 자유롭게 활보하는 데 별문제가 없으며, 언제든 사사로이 살인하고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알라 라키의 선택을 모욕으로 받아들인 건 이웃 부족뿐만이 아니다. 알라 라키의 남편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어서, 그는 추적자들에게 딸만 데려오면 된다는 언질을 준다.

명색이 추격전이 스토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쫓고 쫓기는 과정의 스릴감은 그리 인상적인 편이 못 된다. 그런데 할리우드 장르 영화에 익숙한 눈으로 보자면, 이 영화의 긴장감은 엉뚱한 곳에서 발생한다.

이를테면 교통수단이나 도로가 발달하지 않은 탓에 모녀가 얻어 탄 트럭이 달리는 길은 오로지 외길이다. 자동차 추격전이라도 벌어질라치면 그야말로 도망갈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공간적인 특성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긴장감이 만만치 않다.

또한 파키스탄이 남녀의 접촉을 엄하게 제한하는 곳이다 보니, 알라 라키와 그를 돕는 트럭 기사 소하일이 투 샷으로 잡히는 장면에선 성적 긴장감이 팽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명백히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심리적 긴장감이다.

파키스탄 몰라도 즐길 수 있는 파키스탄 영화

 영화 <딸> 스틸 사진.
영화 <딸> 스틸 사진. Zambeel Films

이외에도 영화는 즐길 만한 것들이 많다. 로드무비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이 영화에는 다양한 풍경이 담겨 있으며,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파키스탄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특히 인더스 강과 카불 강에 얽힌 전설이 인상적인데, 연인이던 여자의 눈물과 남자의 피가 각각 강을 이루었다는 이 슬픈 사랑 이야기에는 각종 무력 분쟁으로 얼룩진 파키스탄 근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이처럼 이 영화는 파키스탄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에서 이 나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드문 기회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조혼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이 영화는 분명히 조혼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이 문제를 깊이 탐구하지는 않는다.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에 사회문제를 녹여냄으로써 이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해당 이슈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정도에 머무른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진 나라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시청했습니다.
DUKHTAR 아피아나다니엘 파키스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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