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 놈: 인류의 시작>B급도 아닌 C급을 표방한 블록'놈'스터 영화.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줬다.
(주)엣나인필름
백승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숫호구>(2014)는 엇갈린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도전 정신을 높이 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후지필름 이터나상'을 주며 격려했다. 반면에 포털 사이트에 달린 관객평을 보면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 "용기가 넘친다" 등 규칙을 벗어난 자유로움을 호평하는 사람들과 "대충 찍었다", "장난하나" 등 조악한 완성도를 질타하는 부류까지 평가가 다양하다. 분명한 것은 <숫호구>가 많은 이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백승기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이하 <시발, 놈>)은 제목부터 당황스럽다. '시발'이라니. 어디서 제목을 꺼낼 생각이면 주위부터 살펴야 할 판국이라니. 참으로 놀라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시발, 놈>은 "우리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원래 무엇이었을까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왔으며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란 거창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유인원들 사이에서 나타난 최초의 인간 시발놈(손이용 분)이다. <시발, 놈>은 일이 처음 시작하는 '시발(始發)'과 사람의 옛말인 '놈'을 더한 세상에 나타난 최초의 인간을 의미한다. 욕을 노린 언어유희도 있을 것이다. 백승기 감독이 추구하는 C급 무비를 연결하면 'C급+발(發)'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영화는 시발놈이 식사, 옷, 잠자리 등의 첫 경험, 다른 시발놈(김보리 분)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 유인원 무리에서 인간으로 겪는 성공과 실패를 다룬다. 시발놈이 여러 문제를 해결하면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영화는 보여준다.
<불을 찾아서>(1981)를 연상케 하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 계기에 대해 백승기 감독은 이렇게 설명한다. "최초의 인류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각종 자료를 찾기 시작했지만, 결론은 극과 극이었다, 모두 같은 이야기를 다른 표현 방식으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섞어 전혀 새로운 가설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시발, 놈>은 백승기가 자유롭게 그린 인류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