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환 전 성남 감독은 한국축구의 한 시대를 풍미한 명장이다. 박 감독은 1980년과 1982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 2연패 및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월드컵 4강, 프로축구 성남의 K리그 3연패(1993~1995) 등 클럽과 대표팀 양쪽에서 모두 한국축구에 화려한 족적을 남겼다. 올드 축구팬들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감독이다.

특히 한국축구가 아직 세계무대와 거리가 있던 시절, 청소년월드컵 4강은 당시만 해도 한국축구가 기록한 최대의 성과였다. 훗날 한국대표팀의 애칭으로 자리 잡은 '붉은 악마'가 처음 외신을 통해 알려진 것도 박종환호에서 비롯됐다. 당시 박종환 감독의 위상은 가히 '80년대의 히딩크'에 비견할만 했다.

하지만 박 감독의 말년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박 감독은 2014년 시민구단으로 전환한 성남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그해 4월 선수폭행 사태가 발생하며 약 4개월 만에 불미스럽게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당시 박 감독은 "훈계 차원에서 꿀밤을 한두 대 때렸을 뿐"이라며 폭행 사실을 부정했으나, 하루도 지나지 않아 목격자들의 증언과 구단의 공식발표로 거짓말을 한 사실이 탄로나며 더 큰 비난을 받아야했다.

사실 박종환 감독은 전성기에도 강도높은 스파르타 훈련과 권위적인 지도방식으로 악명이 높았다. 실제로 선수들에게 폭언을 하거나 손찌검을 저지른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은 축구계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그런 지도방식도 통했다. 박 감독만이 아니라 많은 축구 감독들, 또한 다른 분야의 지도자들 역시 폭력과 권위에 의존한 지도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구시대의 상징, 박종환의 '빠따타카'

 성남의 지휘봉을 잡았던 박종환 감독.
성남의 지휘봉을 잡았던 박종환 감독.이상민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박 감독은 그가 남긴 업적에서 보듯, 결코 무능한 지도자는 아니었다. 단지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박 감독은 권위와 강압이 아닌 소통으로 젊은 세대의 선수들을 다루는 방법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축구팬들이 박종환식 축구를 빗대어 만든 표현이 바로 '빠따타카'다. 체벌을 의미하는 '빠따'와 패스축구를 의미하는 '티키타카'를 결합한 것으로, 박종환 감독이 강압적인 지도방식으로 선수들의 능력치를 끌어내는 것을 빗댄 표현이다.

요즘도 한국축구가 졸전을 펼치거나 도마에 오를때마다 축구팬들이 '박종환 감독을 불러와서 빠따타카를 시켜야 정신 차린다'식의 애드립을 종종 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축구판 삼청교육대같은 상징적인 의미로 박종환 스타일이 소환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약 30년전만해도 시대를 앞서간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종환 축구가 이제는 '구시대의 유산'을 의미하는 상징이 되었다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 박종환 감독의 복귀와 실패는 한국축구에는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라누스 미헬스나 아리고 사키, 매튜 버스비, 알렉스 퍼거슨같은 전설적인 감독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도 축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80~90년대 한국축구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최고의 성공을 거둔 박종환 감독이 오늘날에는 '흑역사' 정도로 남게된 것은 본인에게나 한국축구에게 있어서나 비극이었다.

이런 사례는 박종환 감독만이 아니다. 1990년대 대우 로얄즈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이차만 감독은 박종환 감독과 같은 해인 2013년 경남 사령탑을 맡으며 15년 만에 현장으로 복귀했으나 역시 성적부진으로 한 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그해 8월 사임했다.

야구에서 통산 10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선사하며 역대 최다승 기록을 보유한 '코끼리' 김응용 감독은 2013년 칠순의 나이에 한화 지휘봉을 잡으며 현장으로 복귀했으나 2년 연속 최하위라는 초라한 성적만을 남기고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김 감독은 경질되지는 않았지만 재계약에 실패했고, 한화 팬들 사이에서는 최악의 감독으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평생 쌓아온 야구인생에 큰 흠집을 남겼다.

최근 야구계의 뜨거운 감자로 거론되고 있는 이는 김성근 한화 감독이다. 공교롭게도 김응용 전 감독의 후임으로 2015년부터 한화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한국스포츠계에서 70대를 넘긴 노장으로서는 드물게 성공적으로 장수한 인물로 꼽혔다. '야구의 신'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김성근 감독은 한국프로야구사에서 최고의 명장 중 한명으로 추앙받았으며, 소신있는 언변과 철학으로 스포츠 감독을 넘어 오피니언 리더로까지 부상한 보기드문 인물이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올 시즌 논란의 중심에 있다. 우승후보로 꼽혔던 한화의 성적부진과 꼴찌추락, 그리고 이 과정에서 드러난 김성근 감독의 팀 운영상의 여러 문제점과 혹사 논란 등이 불거지며 김 감독은 평생 쌓아온 야구인생의 명예에 큰 오점을 남기고 있다. 한때 김 감독을 존경과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던 팬들은 그의 리더십을 둘러싼 명암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엄청난 실망과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야구'라는 비아냥 듣는 김성근식 야구

머리 만지는 김성근 지난 17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LG의 경기. 한화 김성근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던중 머리를 만지고 있다.
머리 만지는 김성근지난 17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LG의 경기. 한화 김성근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던중 머리를 만지고 있다.연합뉴스

김성근 감독이 처한 현재 상황을 보면서 박종환 감독이나 김응용 감독의 실패가 오버랩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겪고 인생의 경륜을 갖춘 노장들이 말년에 와서 유독 참혹한 실패를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통점은 바로 '경험에 대한 과신'이다.

프로 감독들의 자존심이란 일반 팬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어마어마하다. 하물며 김성근 감독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과거에 큰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는 인물들은 그만큼 자신의 철학에 대하여 강한 확신과 자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 방식이 옳다'내지는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독선으로 변질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박종환 감독과 마찬가지로 김성근 감독도 한 때는 그 시대를 앞서가는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항상 "야구는 감독이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감독이 팀의 전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고 주장하며 선수들을 항상 극한으로 밀어붙여 잠재력을 끌어내야 한다는 야구관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야구에서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은 비과학적이고 전근대적인 야구관으로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폭행과 체벌도 훈계이자 지도방식이라고 주장하던 박종환 감독처럼, 김성근 감독도 '혹사'와 '자율'이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 전형적인 구시대 가치관의 지도자다. 현재의 한화의 야구는 오늘날에는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도 일본에도 존재하지 않는 오직 김성근 감독만의 야구다.

팬들은 최근 한화 야구를 가리켜 '북한야구'같다는 수식어를 붙인다. 절대권력을 지닌 최고존엄의 지도자가 외부의 비판과 소통에 문을 닫고 '내 방식대로'만을 고수하고 있는 경직된 리더십이 마치 북한을 연상시킨다는 의미다. 최근 월권 논란으로 도마에 오른 친아들 김정준 코치와 부자가 권력을 세습하듯 팀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김일성근', '김정일준'같은 조롱섞인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박종환·김응용·김성근 감독은 모두 정상적이라면 해당 스포츠계의 원로로서 존경받을 만한 위치에 있어야 할 인물들이다. 그러나 빠따타카와 북한야구라는 수식어에서 보듯이, 물러나야 할 시기를 깨닫지 못하고 과거의 경험과 신념에만 갇혀서 달라진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본인들과 팬들을 모두 아프게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어른들을 가리켜 속된 말로 '꼰대'라고 한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로 어른이 존경받지 못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하지만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는 사회는 더 불행하다. 한국 스포츠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명장들의 말년은 왜 더 아름답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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