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위촉곡인 이반 페델레 <사전 II> 연주 후 무대인사하는 작곡가 이반 페델레와 지휘자 크와메 라이언.
서울시립교향악단
이날 프로그램은 서울시향의 위촉 곡으로 이반 페델레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사전 II>, 앙리 뒤티외의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득한 전 세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크스의 맥베스 부인> 모음곡이었다.
이반 페델레(b.1953)는 2009년 서울시향이 그의 작품 < Scena >를 소개한 바 있다. 서울시향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공동 위촉으로 작곡된 이반 페델레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사전 II>(2015/16), 아시아 초연)는 오케스트라 모든 악기 군이 동시에 동일한 방식의 음악어휘(Lexicon)로 모여 거대한 스펙트럼의 음향덩어리를 만들어내는 점이 무척 신기했다.
3악장의 이 곡은 처음에 샘플러의 전자음향과 함께 시작해 단음 트레몰로에서 2도 트릴, 빠른 아르페지오로 점차 퍼져나가 온 몸이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나간다. 1970-80년대 파리 배음렬 주의가 저면에 깔려있으면서 단 1초도 멈춤 없이 빠르고 기교적으로 복잡다단하게 움직여나가면서 음의 추진력을 형성해간다.
그러한 곡 진행의 방향성이 청자의 귀를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로 다음 순간의 움직임을 기대하게 하며 때로는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의 묘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신디사이저로 연주되는 샘플러는 현악기 음색과 비슷하게 오케스트라에 연결되고, 때로는 타악기들과 함께 금속성 소리로 중요한 지점에 연주되어 임팩트 있게 음악변화의 타이밍을 잡아준다.
다음으로 앙리 뒤티외(1916-2013)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득한 전 세계...> (1967-1970)를 '아르스노바 I : 체임버콘서트'에 이어 이상 앤더스가 협연했다. 4도 주제가 반복, 변주되면서 변용의 방법이 음악구조 뿐 아니라 내면적 줄거리까지도 지배하면서 지나온 사건이 제목처럼 아득하게 '기억'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첼로독주와 오케스트라의 주고받음이 무척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1악장은 첼로저음 C-F#-Bb의 4도 주제가 느리게 상행하여 점차로 리듬을 빠르게 움직인다. 완전4도 증4도, 완전5도의 음정, 파트간 연속되는 상행과 하행의 이어짐이 무척 자유분방하면서도 치밀하게 조직적이다.
각 악장이 앞 악장의 요소를 사용하고, 마지막 5악장은 특히 앞 악장들의 요소를 모두 사용한다. 악장 간 Attaca로 연결, 첼로독주의 4도 주제 상행음계와 하행 후 빠른 아르페지오 변주, 오케스트라 전체가 4도권 옥타브 병행으로 상행하더니 각각 4도 상행과 하행의 격렬한 포르티시모로 음폭을 넓히며 강렬하게 펼쳐지기도 한다.
열정으로 가득한 호연첼로의 이상 앤더스는 지난주 아르스노바I-체임버 공연 때보다 더욱 열정으로 임하며 호연을 보여주었다. 이에 비해 관객들의 박수소리와 호응도가 낮은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점이었다. 관객들은 만족한 연주에 대해 허리를 곧추세우며 꽤 열심히 진지하게 박수를 치고 있었지만, 무대 위 연주자들에게 그 박수의 음량은 에너지의 전달력이 부족했다. 기립박수나 환호성처럼 자유롭고 기꺼운 박수문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상 앤더스와 지휘의 크와메 라이언은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아니어서 약간 기운 빠져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 앤더스는 관객에 대한 매너로 바흐의 첼로 무반주 조곡을 앵콜 곡으로 연주해 보였다. 정다운 친구가 오늘 하루 있었던 일과를 친구에게 얘기하는 듯한 편안한 트릴과 4도 화음이 저조했던 박수의 어색함을 누그러뜨려 주었다.
후반부 프로그램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오페라 <므첸크스의 맥베스 부인>모음곡(1932)-제임스 콘론 편곡(1991)이 한국 초연되었다. 작곡당시 200회 이상 공연되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스탈린의 관람 이후 공연이 제지당하고 쇼스타코비치도 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받았는데, 여주인공 카타리나의 자살이유를 사회상에 돌렸다는 이유였다.
쇼스타코비치는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1865년 동명소설을 기반으로, 주인공 카테리나를 마녀라고 칭하지 않고, 당시 사회상에 의한 비극적 여주인공으로 재해석했다.
카테리나가 하인 세르게이와 바람을 피우고, 시아버지와 남편을 죽이게 되고, 결국은 자살하게 된다는 내용을 극단적 음역과 색채가 뚜렷한 음색의 대비, 비극적 내용과 장면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음률과 역동적인 리듬, 강렬한 다이내믹, 합창과 아리아로 표현했다.
굉장히 쇼킹하고 표현성이 짙은 한 시간 반짜리 오페라를 8곡의 40분짜리 오케스트라 모음곡으로 압축하니 그 청감은 훨씬 더욱 그로테스크하다. 서울시향은 전반부의 21세기와 20세기 중반 작품에서도 훌륭하게 연주했지만, 후반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에서는 더욱더 열정을 가지고 연주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서울시향 사태를 감안한 선곡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