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 주연의 영화 <취권>의 한 장면
성룡 주연의 영화 <취권>의 한 장면원화평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오면 <나홀로 집에>(1990)의 주연배우 맥컬리 컬킨이 쉽게 떠오른다. 그리고 겨울에는 설원에서 "오겐키데쓰카(잘 지내시나요)"를 외치는 <러브레터>(1995) 속 장면이 떠오른다. 이처럼 영화가 특정 시기의 분위기나 풍경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경우가 있다.

'민족 대명절'로 불리는 설날이 며칠 안 남았다. 그렇다면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는 어떤 영화, 어떤 배우가 떠오를까? <머털도사>(1989) 같은 애니메이션이나 실베스타 스텔론의 <람보>(1982) 시리즈, 또는 박중훈으로 대표되는 한국 코미디 영화를 떠올릴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명절 하면 역시 '성룡' 아닐까?

해마다 성룡(61·청룽)이 출연한 영화는 TV '특선영화'의 단골메뉴처럼 등장했다. 물론 오늘날에는 최신 흥행작이 특선영화로 자주 선정되면서 밀려난 감도 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명절 극장과 안방에서 인기를 누린 배우로 성룡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이소룡, 이연걸과 함께 중국 액션영화의 흐름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하나였다.

한국인과 명절을 함께한 배우 성룡... 시작은 <취권>

 1985년작인 <폴리스 스토리>의 한 장면
1985년작인 <폴리스 스토리>의 한 장면성룡
1979년 9월 추석에 한국에서 <취권>(1978)이 개봉하면서 성룡과 명절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당시 <취권>은 무려 4개월간 상영되면서 새해까지 극장으로 관객들을 불러들였다. 이 후에도 성룡은 1981년 할리우드 진출작 <캐논볼>과 1983년작 <프로젝트A> 등 굵직한 작품에 잇달아 출연했다. 주인공이 진퇴양난을 거듭하면서 성장하는 무협극과 유머를 갖춘 액션영화는 명절에 즐거움을 찾는 관객에게 오래 전부터 제격이었던 듯하다.

맨몸 액션을 주로 보여주던 성룡도 느와르 열풍이 불던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총을 잡기 시작했다. 미국 진출작 <캐논볼>에서 쓴맛을 본 성룡은 감독과 주연을 맡은 1985년작 <폴리스 스토리>를 통해 성공적으로 재기했다. 그는 이 영화로 매끄러운 스턴트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선사했다.

무술의 전통을 계승하는 반항아적 인물에서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형사까지. 연출과 인물 성격의 변화를 거듭하면서 성룡의 영화세계는 뚝심있게 이어진다. 대표작인 <취권>과 <폴리스 스토리>는 시리즈로 후속작이 제작되었고, 한국에서도 개봉하면서 '명절 연휴에는 코미디 액션영화'라는 등식을 낳기도 했다.

우스꽝스러운 상황과 시원한 액션이 주는 짜릿함은, 시대가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 재미를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이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성룡의 인기는 명절마다 안방으로 무대를 옮겨서 계속되었다. 이렇듯 세월이 흘러도 끊임없이 성공을 거듭하면서 그의 영화는 남녀노소가 함께 보는 명절 TV 특선영화로 자주 선정되었고, 성룡은 그야말로 '한국인과 명절을 함께한 배우'가 되었다. 또한 1997년작 <나이스 가이>와 이듬해에 개봉한 <러시아워>는 나이가 들어도 식지 않는 그의 연기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러시아워>는 2001년에 2편, 2007년에 3편까지 제작되면서, 이후 명절 특선영화 계보의 교체에도 여전히 성룡을 브라운관에 남도록 만들었다. 또한 이 영화로 그는 할리우드 내에서 입지를 재구축하면서, <턱시도>(2002), <상하이 나이츠>(2003), <80일간의 세계일주>(2004) 등 거액이 투자된 블록버스터급 영화의 주연으로 발돋움하기에 이른다.

배우로서 인기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성룡은 국제적인 무대에서 활약했다. 홍콩과 중국뿐만 아니라 할리우드로 활동영역을 넓혔고, 출연작은 더욱 다양하고도 화려해졌다. 인기 애니메이션 <쿵푸팬더>(2008)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기도 하고, <베스트 키드>(2010)에서는 윌 스미스의 아들인 제이든 스미스의 사부로 출연하기도 했다. 철없는 천방지축의 청년 역을 맡던 배우가 이제는 스승으로, 쌓여가는 연기 경험에 맞추어 역할도 차츰 변해갔다.

아들 구속에 촬영장 사고... 성룡의 2014년은 '흐림'  

 <폴리스 스토리 2014>의 한 장면
<폴리스 스토리 2014>의 한 장면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하지만 최근 성룡은 영화 외적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해 8월, 역시 영화배우이자 가수로 활동 중인 아들 방조명(33·팡쭈밍)이 중국 베이징에서 대마 흡입 및 장소 제공의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성룡은 "방조명이 그렇게 된 데는 내 책임이 크다. 나 스스로 그 문제와 관련해 크게 통감하고 있다"며 사과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방조명이 출연하던 중국의 한 찐빵 광고 모델을 대신 이어받기도 했다.

방조명은 이 사건으로 징역 6개월 및 벌금 2000위안(35만 원) 판결을 받아 복역한 뒤 2월 13일 출소했다. 하지만 방조명이 징역 6개월이라는 가벼운 처벌을 받은 것에 대해 '아버지 성룡의 영향력(?) 덕분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성룡은 여전히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촬영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2016년 개봉 예정인 영화 <스킵트레이스>의 수중촬영을 하던 중 선박이 전복되면서 카메라 스태프가 사망한 것이다. 성룡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면서, 중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웨이보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어제도 같이 있었는데. 아프다. 내가 이렇게 무능력하다니, 너를 구해내지도 못했다. 나의 형제여. 잘 가라."

'우산혁명'으로 불린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를 두고는 다소 실망스러운 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성룡은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뉴스를 보니 (시위로 인한) 손실액이 3500억 홍콩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중략) 홍콩의 아름다운 매일을 위해서는 모두의 지지와 노력이 필요하다"며 시위대에 자제를 촉구하는 글을 올렸다.

이는 주윤발(60·저우룬파)을 비롯한 배우들이 시위에 평화적으로 참가한 학생들을 "이성적이고 용감하다"고 칭찬하며 중국 정부의 과도한 진압을 비판한 것과 대비됐다. 해당 발언으로 인해 중국 활동을 금지당한 주윤발은 "돈을 조금 덜 벌면 된다"면서 소신을 지키고 자기 희생을 감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성룡은 중국 대륙의 지지와 실익을 위해 홍콩 민주화 시위의 가치를 왜곡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줄줄이 개봉 앞둔 그의 작품들... 환갑 넘은 나이가 무색

슬라이드  2013년 방한 당시 성룡
2013년 방한 당시 성룡이정민

세계적인 배우로 성장한 성룡에게 2014년은 상당히 정신없는 한 해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앞으로도 한동안 바쁜 나날이 계속될 것 같다. 이번에는 다행히(?) 영화 때문이다. 차기작이 계속해서 개봉되거나 제작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올해 3월 개봉을 앞둔 <드래곤 블레이드>는 제작비 700억 원의 초대형 규모로 제작되었고,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을 섭외하면서 이목을 끌고 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에 출연한 애드리언 브로디와 <2012>(2009)의 존 쿠삭 등 쟁쟁한 배우들이 등장하고, 한국의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최시원이 출연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지난해 사고로 화제가 된 <스킵트레이스>도 내년 개봉을 위해 촬영 중이다. 환갑이 넘은 배우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인 셈이다. 이를 두고 예상하건대, 성룡의 필모그래피는 아마도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일생 동안 130건이 넘는 영화를 제작하고 출연했지만, 마지막 작품이라 불릴 영화는 더욱 긴 시간이 지나야 만날 수 있을 듯하다. 난독증의 어려움을 딛고서 액션배우의 길을 걸어온 성룡. 활발한 제작을 멈추지 않는 동시에 차세대 액션배우 발굴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이 어떨까?

마침 성룡의 액션 연기가 보고싶은 관객을 위한 반가운 소식이 있다. 영화전문채널 '수퍼액션'은 올해 설 연휴에 '성룡 특집'을 편성했다. 18일 수요일부터 <취권>, <취권2>(1994), <성룡의 CIA>(1998) 등 그가 등장하는 많은 영화를 접할 수 있다. 지난날 성룡의 연기를 추억하는 관객이라면, 그의 대표작과 함께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성룡 명절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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