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 51>의 메인포스터식당 두리반을 지키기 위한 경쾌한 저항의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51+필름
용산의 슬픔과 공포가 채 가시지도 않았던 2009년 연말. 홍대 앞 두리반에서는 용산과 전혀 다른 방식의 철거 저항이 홍대 앞에서 시작 되었다. 두리반은 당시에 홍대입구역에서 동교동 삼거리 방향(현재 홍대입구역 4번출구 앞 대로변)에 위치한 칼국수 집이었다. 사장인 안종려와 그녀의 남편인 소설가 유채림이 전 재산 8500만 원과 대출금 2500만 원가량을 합쳐 겨우 임대해 마련한 공간 이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생계의 터전이 마련된 지 2년 만에 홍대입구역에 공항철도가 들어선다는 이유로 두리반은 소멸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공사를 맡은 GS건설과 철거 시행사 남전디앤씨가 그들 부부에게 내민 보상금은 이사비용 300만 원가량이 전부였다.
터무니없는 보상금과 강제철거라는 벼랑 끝에서 달리 선택지가 없었던 부부는 결국 두리반에서 농성을 시작한다. 용산 남일당 건물과 같은 처절한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를 두리반. 이곳에 어느 날 한받, 밤섬해적단, 박다함, 회기동 단편선, 하헌진 등의 음악가들이 찾아온다.
이들 음악가와 밴드들이 철거 반대 농성에 합류하면서 두리반은 처절함과 비장한 저항이 아닌 경쾌한 저항의 장이 된다. 정용택 감독은 이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두리반에 모여든 음악가와 주인 부부, 그들의 경쾌한 저항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홍대 앞에서 밀려난 음악가들의 성장기이기도두리반에 모인 음악가와 밴드들은 강제철거 위기 속에서 라이브 공연을 시작했다. 두리반의 공연들이 곧 점거였고 농성수단은 음악이었다. 주말을 중심으로 매주 공연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급기야 폭염 속에서 단전까지 되는 악조건에서도 공연은 멈추지 않았다. 재개발이라는 보편적인 사회문제 외에도 자립음악가들이 펼치는 실험적이고 재치와 조롱이 가득한 공연들은 두리반에 대한 사회의 기대와 관심을 집중시켰다.
급기야 이들 음악가들은 2010년 5월 1일 노동절 120주년을 맞아 두리반에서 60여 밴드가 넘게 공연한 '뉴타운컬쳐파티 51+'를 개최하고 여기에는 공식적으로 2500명이 넘는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1년 반에 이르는 531일 간의 농성기간 동안 50회가 넘는 공연과 두 번의 '뉴타운컬쳐파티 51+'이 개최되었고 <파티 51>은 이 공연 현장의 열기와 두리반에서 활동한 음악가들이 펼치는 무대 위에서의 재치와 광기를 고스란히 2014년의 우리들에게 전달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두리반의 저항은 이런 노력들로 인해 큰 성과를 거뒀다. 결국 두리반은 오랜 농성 끝에 비교적 합리적인 수준의 보상금을 받았으며 홍대 주변을 떠나지 않고 저항의 공간에서 칼국수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재개발 농성장에 음악가들이 결합한 두리반은 무척이나 독특한 상황이었다. 만약 <파티 51>이 두리반을 통해 재개발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승리를 기념하는데 머물렀다면 이 영화는 무척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한데 여기서 더 나아간다. 생활 영역들을 재배치하고 변질시키는 자본주의의 도시학 속의 홍대, 즉 이제는 음악만으로 음악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홍대 앞과 마주한 음악가들의 삶과 두리반을 포개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