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고향은 어디일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할리우드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고향을 굳이 말하자면 그곳은 파리라고 해야 한다. 그곳에서 영화의 역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최초의 영화이자 또한 최초의 기록영화인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은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에서 탄생했다. 최초의 극영화이자 SF영화인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나라 영화>도 프랑스영화다. 최초의 극영화와 기록영화가 모두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세계 영화사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예술운동이었던 '누벨바그'도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세계 영화사는 누벨바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누벨바그가 세계 영화사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등 프랑스의 젊은 영상혁명가들은 파격적인 실험과 대담한 혁신으로 현대 영화의 문법을 완성했다. 누벨바그 이후 고전영화의 시대가 끝나고 현대영화의 시대가 시작됐다.

1980년대 초에도 프랑스에서 세계 영화사에 기록될 만한 일련의 젊은 작가들이 등장했다. '누벨이마주'로 일컫는 프랑스영화의 새로운 경향은, 비록 누벨바그의 영향만큼은 아닐지라도, 세계 영화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디바>의 장 자크 베네, <나쁜 피>의 레오 카락스, <마지막 전투>의 뤽 베송 등 누벨 이마주의 젊은 거장들은 감각적 영상과 독특한 감성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누벨바그가 현대 영화의 문법을 정립했다면 누벨이마주는 현대 영화의 언어를 더욱 풍부하게 했다. 누벨이마주 등장 이후 현대 영화의 중심은 몽타주(편집)에서 미장센(화면구성)으로 확연히 이동했다.

뤽 베송은 누벨이마주 세대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작가였다. <그랑 블루> <니키타> 등 대중적인 명성을 안겨 준 작품들은 물론 <마지막 전투> <지하철>과 같은 초기작들도 대중과 큰 거리를 두지 않았다. 감각적인 영상과 대중적인 이야기가 결합된 뤽 베송의 작품들은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뤽 베송은 누벨이마주 세대 중에서도 가장 할리우드 친화적인 감독이었다. 그리고 그는 할리우드로 떠났다.

 <루시>는 9월3일 개봉했다.
<루시>는 9월3일 개봉했다.UPI코리아

누벨 이마주의 씁쓸한 노년

뤽 베송의 할리우드 진출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레옹>은 전설이 되었고 비록 흥행은 시원치 않았지만 <제5원소>는 SF영화의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잔 다르크> 이후 뤽 베송의 경력은 다소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할리우드는 재능 있는 작가들의 무덤이다. 컨베이어벨트와 같이 고도로 분업화된 할리우드의 포드주의적인 제작시스템은 마치 '악마의 맷돌'처럼 그들의 재능을 가차 없이 분쇄해 버린다. 뤽 베송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물론 상업영화의 제작자로써 뤽 베송의 할리우드 진출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1990년대까지 뤽 베송은 누벨 이마주의 전사였지만 할리우드의 진출 이후에는 평범한 활극영화의 제작자로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 젊은 관객들에게 뤽 베송은 <택시> <13구역> <테이큰>과 같은 전형적인 할리우드풍 활극영화의 제작자로 더 친숙하다.

2011년 <더 레이디> 이후(아웅 산 수치의 일대기를 그린 <더 레이디>는 뤽 베송의 영화이력에서 가장 뜬금없는 작품이다.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루시>는 <잔 다르크> 이후 10여 년 만의 복귀작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오랜만에 연출로 복귀한 <루시>는 <니키타> <레옹>과 같은 누벨 이마주풍의 활극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최민식의 합류는, <레옹>의 게리 올드먼이 그랬던 것처럼 거장의 성공적인 복귀를 예고하는 긍정적인 신호처럼 보였다.

하지만 뤽 베송은 더 이상 누벨 이마주의 전사가 아니었다. 어느덧 50대 중반에 이른 노장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누벨 이마주의 시대는 이미 전설이 되어 버렸다. <루시>는 10여 년 동안 그가 줄기차게 제작해 왔던 활극영화들의 평범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미지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었고, 활극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존재와 시간에 대한 형이상학적 횡설수설은 루시를 우주로 보내버렸다(절대로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루시가 <그녀>의 사만다로 변신하는 기괴한 결말은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뤽 베송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와 정말 대단한데! 뇌와 지성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어'라 말하고 그것에 대해 알아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킬링타임 영화를 관람하고 왜 그런 진지한 결론에 도달해야 하는지는 납득하기 어렵다.

 영화의 도입부, 최민식의 악마적인 연기는 <레옹>의 게리 올드먼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의 도입부, 최민식의 악마적인 연기는 <레옹>의 게리 올드먼을 떠오르게 한다.UPI코리아

특히 최민식의 활용법은 아쉽다. 영화의 도입부, 최민식 특유의 악마적인 연기는 <레옹>의 게리 올드먼과 같은 강렬한 악역의 탄생을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대본의 근본적인 결함, 즉 한국어에 대한 몰이해는 최민식이 자신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조차 차단시켜 버렸다. 최민식은 자신의 연기가 "실망스럽고 뭔가 적응해 나가는 단계"였다고 말했는데 그에게 한국어 대사를 수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재량권만 주어졌어도 보다 나은 결과에 도달했을 것이다.

<루시>는 뤽 베송식 활극영화의 팬들에게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작품이 될 것이다. 하지만 누벨 이마주의 부활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도 <루시>는 한국 관객들에게는 꽤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이다. 뤽 베송과 최민식, 스칼렛 요한슨을 한 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뇌와 관련된 잘못된 신화들

루시(스칼렛 요한슨 분)는 남자 친구 때문에 미스터 장(최민식 분)의 마수에 걸려든다. 장은 그녀의 몸속에 강력한 합성 약물을 넣은 채 강제로 운반하게 한다. 다른 운반책들과 함께 끌려가던 루시는 갑작스러운 외부의 충격으로 몸속의 약물이 체내로 퍼지게 되고 약물의 작용에 의해 그녀 안의 모든 감각이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점점 초월적 존재로 진화한다.

<루시>는, 사람은 자기 두뇌의 10%밖에 사용하지 못하며 만일 뇌의 100%를 사용하게 되면 시공간을 넘나드는 초월적 존재로 진화하게 된다는 나름 과학적인(?) 전제 아래 전개된다. 이러한 설정은 또 다른 할리우드영화 <리미트리스>에서도 활용되었다. <리미트리스>에서 무명작가 에디 모라(브래들리 쿠퍼)는 우연히 'NZT'라는 신약을 손에 넣게 되고 약물의 힘으로 두뇌를 100%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는 초인적 지능으로 단숨에 부와 명예를 손에 넣는다.

 강력한 합성약물이 몸 속에서 퍼지면서 루시는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로 진화한다.
강력한 합성약물이 몸 속에서 퍼지면서 루시는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로 진화한다.UPI코리아

그런데 우리는 진짜 두뇌의 10%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걸까? 심지어 아인슈타인조차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른바 '10% 신화'를 믿었다. 하지만 이 같은 가설은 과학적 사실과는 꽤 거리가 있다.

최신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사람은 평생 뇌를 골고루 사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뇌공학자 베리 고든은 "우리는 명백히 뇌의 모든 부분을 사용하며 뇌의 대부분은 거의 항상 활동한다"고 말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도 10% 신화는 신빙성이 약하다. 뇌는 인체에 필요로 한 산소와 포도당의 20%를 소비한다.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관의 90%가 사용되지 않는다면 퇴화하는 것이 진화론적 상식이다. '10% 신화'은 전혀 입증되지 않은 '도시전설'일 뿐이다.

이외에도 뇌와 관련된 '신화'는 적지 않다. 뇌의 크기와 지능지수가 비례한다는 통념도 사실과 다르다. 지능지수가 170이었던 아인슈타인의 뇌의 총중량은 1230g으로 남성 평균인 1400g보다 가벼웠다. 뇌의 주름수도 지능지수와 특별한 연관 없다. 아인슈타인의 뇌 주름 수는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흔히 지능지수는 천재의 필수조건처럼 여겨지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뉴턴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수학에 별다른 흥미도, 재주도 없다고 한다. 다윈의 대학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이외에도 지능지수가 높지 않은 천재적 과학자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능지수 210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김웅용씨는 다섯 살이 되기 전에 4개 국어를 하고 미적분까지 풀었다. 하지만 1981년 대학에 입학해 1998년 비로소 박사가 되었다. 박사 학위를 얻는데 무려 17년이 걸렸다. 이는 평균적인 학위 획득기간보다 훨씬 길다. 놀랍게도 그의 지도교수는 그를 "유달리 특이점을 찾기 어려운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평가했다(그는 현재 대학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20세기 초에 태어난 미국의 사이디스라는 사람은 지능지수가 무려 250에서 300으로 추정됐다. 한 살 때 글을 쓰기 시작하고 18개월 때 신문을 읽었다. 네 살 때 라틴어와 그리스 알파벳을 자유자재로 구사했고 여섯 살 때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히브리어, 터키어, 아르메니아어를 배웠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7개월 만에 졸업하고 열한 살에 하버드대학에 입학해 열여섯 살에 최우등생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열여덟 살에 다시 하버드 의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사이디스는 20대에 증권가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46세에 쓸쓸히 사망했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지하철 환승권을 수집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의 유일한 저작도 지적 가치가 매우 의심스러운 지하철 환승권과 관련된 책이었다.

뇌는 사람을 특별한 존재로 만든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장점은 아니다. 우리는 자연이 준 것 이상의 능력을 사회 속에서 획득했다. 설령 우리가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 10%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특별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silchun615 에 중복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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