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보캅> 한 장면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노튼 박사는 머피의 뇌와 폐, 그리고 한쪽 손만 남긴 채 나머지 부분들을 모두 기계로 대체한다. 머피는 처음에는 자신의 현실과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냥 죽게 해달라고 말하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며 자신의 몸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머피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그의 몸에는 인간보다 기계 면적이 더욱 크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인간인가, 기계인가? 영화는 그런 머피의 모습을 통해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머피는 프로그래밍된 대로 임무를 수행하고 기계적으로 신속하게 상대를 사살한다. 하지만 그는 완전한 기계가 아니며 이 때문에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고민을 한다. 머피와는 달리 완전한 기계인 로봇과의 테스트에서 로봇은 아무런 고민과 거리낌이 없이 인간을 죽이지만 머피는 망설이고 고민한다. 이러한 모습은 어린아이를 인질로 잡은 악당들과의 대치에서 더욱 크게 드러난다.
로봇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적을 사살하지만 머피는 혹시 어린아이가 다칠까 봐 고민하다가 로봇보다 늦는다. 사실 이러한 면이 머피가 감정을 지닌 인간이고, 그를 인간으로 규정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거대 기업인 옴니코프는 로봇보다 시간이 늦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머피의 감정을 불필요한 '오류'로만 규정짓고 이를 없애려고 한다.
리메이크된 영화 <로보캅>은 이러한 옴니코프의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와 그들의 성과만능주의에 대한 예리한 비판을 하고 있다. 옴니코프의 사장인 레이몬드 셀러스를 비롯한 기업가들은 머피를 하나의 인간이 아닌 기계로 규정지으며 그를 프로그램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완전한 기계로 만들고자 한다.
오직 속도와 성과 등 결과만을 중요시 하는 그들은 약물과 뇌수술로 머피의 감정과 인간성을 제거해 그를 완벽한 기계로 만들고자 한다. 옴니코프라는 거대 기업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속의 차갑고 속물적인 인간들에게는 성과와 속도만이 중요할 뿐, 감정이나 인간성은 속도를 더디게 하고 성과를 낮추는 요소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머피를 가족들과도 만나지 못하게 하고, 나중에는 멀쩡한 머피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죽여서 제거하려고 한다. 이처럼 인간적인 감정을 오류라고 규정하여 제거하려는 것은 모든 인간의 감정이 통제된 디스토피아적 사회를 그리는 영화 <이퀄리브리엄>을 연상시킨다.
이 영화는 모든 감정이 제거된 삶을 과연 인간적인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이 영화에서 사람들은 아무런 표정이 없고 가족이 잡혀가는 상황에서도 무덤덤할 뿐이다. 그러나 그런 존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기계에 불과하다. <로보캅>의 머피 역시 모든 감정이 제거된 이후에 정말 기계처럼 변해 버린다. 가족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함께 목숨을 걸고 마약거래상을 수사했던 동료 루이스에게도 기계적으로 대꾸할 뿐이다.
그러한 머피의 변화를 영화 내에서는 그의 헬멧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머피의 헬멧은 평상시에는 올라가 있어서 얼굴 전체가 보이다가 위협 상황이 닥치면 자동으로 감지하여 내려와서 눈과 코를 가리는 장치이다. 그러나 옴니코프가 머피의 인간성을 제거한 이후에 그의 헬멧은 항상 내려가 있다. 이는 그의 얼굴을 가려 그가 인간성을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그가 자신의 눈이 아닌 기계를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가 되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기계)로 변해버렸음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원작과 은색의 로보캅과는 달리 옴미코프가 디자인한 로보캅은 검정색이다. 이는 원작에서의 로보캅이 과학자와 정부에 의해 공공선의 임무를 처리하는 존재에서 그 중간에 기업이 끼어든(자본에 오염된), 그래서 더욱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로 변해버린 것을 상징한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서 사장 셀러스가 제거된 후에 로보캅은 다시 은색으로 돌아온다.
<로보캅>은 미국 내 극우 보수주의자들과 그들의 제국주의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에 옴니코프의 로봇들이 중동지역 치안활동을 하는 모습과 그것을 방송하기 위해 촬영하는 모습이 나온다. 거대하고 위압적인 로봇들은 위협적인 빨간 불빛을 뿜어대면서 아이러니 하게 "위험하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방송국에서는 진행자인 팻 노박(사무엘 L. 잭슨 역)이 로봇들과 그들의 성과를 극찬하며, 로봇에 의해 통제 받는 주민들도 안전해졌으니 행복할 거라고 이야기 한다.
그의 발언은 과거 제국주의 시절에 개발과 문명화라는 미명하에 다른 나라에서 자행했던 학살과 착취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곧 이어서 목숨을 건 자살 테러리스트들의 테러에 의해 이러한 가장된 평화의 허위가 드러난다. 로봇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칼을 든 어린아이를 무참하게 학살한다. 그러나 노박은 이를 무시하며 로봇들 덕분에 군인들이 죽지 않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무서운 자본의 속성과연 노박은 보수주의자답게 철저한 통제를 좋아한다. 그는 미국 내에서도 로봇들이 경찰을 대치하여 치안을 유지하여 범죄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데, 그는 로봇들이야말로 아무런 이견이나 망설임이 없이 공정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이 중요한 것이고 인간을 인간이게끔 만드는 요소인지를, 그리고 오히려 단일성이란 것은 획일성의 또다른 말이고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모른다. 로봇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좀비들처럼 망설임이 없이 프로그래밍된 것만을 따른다. 그래서 영화 내에서도 그들은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 이후의 머피를 "좀비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거대한 힘이 악한 사람들에게 넘어간다면 얼마나 큰 비극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지난 역사의 비극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히틀러의 홀로코스트가 그랬고, 스탈린의 모스크바 재판이 그랬고, 폴 포트의 킬링 필드가 그랬다. 2차 대전 당시 독일 국민들은 마치 프로그래밍된 로봇이나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좀비들처럼 히틀러의 명령대로 잔인한 학살을 거리낌없이 자행했다. 영화 내에서도 로보캅의 통제권은 비도덕적이고 냉혹한 기업가의 손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언제든 로보캅의 힘을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과연 옴니코프는 통제가 잘 안 되는 머피를 죽여 불안요소를 제거함과 동시에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 여론을 반전시켜 미국에서 로봇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안을 폐지하려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음모를 저지하는 것은 인간성을 되찾은 로보캅과 노튼 박사의 도덕성과 양심이다. 머피는 프로그램 된 명령을 어기고 그들의 음모를 저지하러 달려나가고, 노튼 박사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화려한 성공 이면의 추악한 진실을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