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 2580> '끝나지 않은 비극 형제복지원'의 한 장면.
지난 3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 2580> '끝나지 않은 비극 형제복지원'의 한 장면.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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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정권의 그늘로부터 시작한 사회부적응자에 대한 대대적인 격리 및 감금은 2차대전을 일으킨 히틀러 정권의 인종청소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역사를 조금만 아는 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터이지만, 히틀러가 가스실로 밀어넣은 이들은 유태인이 다가 아니었다. 집시를 비롯하여 동족인 독일인 가운데 장애인 역시 아리아인의 우성 형질 유지에 방해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태인과 마찬가지로 가스실에 희생되었기에 말이다.

히틀러와 나치의 열등국민 분리 정책은 비단 2차 대전 당시의 독일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전두환 정권 당시의 최대 치적 중 하나인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거리의 부랑자는 장애물이 됐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에게 발전된 서울의 사회상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부랑자 때문에 한국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비칠 것을 염려한 5공화국 정권은 이들을 격리 수용하기에 이른다.

지난 3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 2580>은 '끝나지 않은 비극'으로 형제복지원을 재조명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이 부랑자를 격리한 형제복지원에는 부랑자가 아닌 이도 있었다. 술에 취해 공원에서 잠이 든 직장인이 하루아침에 끌려가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주민등록증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찰에 끌려가기까지 했다. 심지어 형제복지원의 실체를 모르는 부모는 시설이 잘 되어있는 줄로 잘못 알고 일부러 자녀를 복지원으로 데려오기까지 했다고 한다.

집시와 장애인을 독일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하기를 바란 히틀러 정권의, 혹은 인종 청소를 감행한 세르비아 사태의 극단적인 타자 배척 성향이 국가적인 폭력으로 행해진 게 바로 형제복지원이라는 거대한 감금 시설이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자행된 폭력

형제복지원은 생지옥 그 자체였다. 말이 복지원이었지 인권 유린이 판을 치던 곳이었다. 폐기물로나 쓰일 동물의 피를 끓인 선지가 국으로 나오고, 부패한 생선이 음식으로 나왔다. 사람들은 심하게 구타를 당했는데, 머리를 두들겨 맞아 피가 흘러나오고 골이 보일 정도였다. 심한 구타로 괄약근이 풀려서 항문으로 변이 나오면 그 똥을 먹으라고 강요당했다. 불과 30년 전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자칭하는 대한민국에서 자행된 범국가적인 폭력이다.

사회 부적응자를 한국에서 몰아내기 위해 형제복지원이라는 '게토'를 창안한 대가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형제복지원이 부랑자를 감금하기 시작한 1975년부터 1987년까지 12년 동안 죽어간 사람은 무려 513명에 달한다. 맞아죽고 영양실조로 죽어간 이들은 죽어서도 의과대학의 해부용 시신으로 팔려갔다. 살아서는 사람대접 한 번 받지 못하고, 죽어서는 해부용 시신으로 거래되어 형제복지원의 재정에 일익을 담당했다.

영화 <26년>의 곽진배(진구 분)와 심미진(한혜진 분)은 5.18 광주항쟁의 아픔이 현재까지 어떻게 진행됐는지 보여주는 후대의 피해자였다. 영화 <26년>의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형제복지원에 수감되었던 이들은 구타의 후유증에, 혹은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아직까지 고통당하고 있었다.

누구는 형제복지원에 있느라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서 막노동을 전전하며 살아야 한다. 누군가는 복지원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수용자를 학대하는 데에 가담한 죄책감 때문에 고통 받고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당시 복지원에서 입은 육체적인 후유증 때문에 고단위 진통제를 달고 살아야 하는 고통에 시달린다.

문제는 복지원에 수감되었던 이들에게 먼저 사죄해야 할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형제복지원의 원장 박인근은 국가의 눈감아주기 형량 구형 덕에 2년 6개월의 구치소 생활을 마치고, 원장 일가는 지금까지 사회복지법인을 운영 중이라고 한다. 가해자가 제대로 된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재판이 거듭되면 거듭할수록 형량이 줄어든 것이 정권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다큐멘터리는 잊지 않고 있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또 다른 가해자는 국가와 당시 위정자다.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시작된 형제복지원 운영은 전두환 정권 들어 전성기를 맞아하고, 그곳에 수감되었던 많은 이들은 신음하거나 죽어갔지만 이들에게 국가적 차원의 배상이나 사과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군사정권의 두 위정자가 낳은 폐해는 국가가 어떻게 개인의 인권을 짓밟고 유린할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시사매거진 2580>이 담은 근대화의 지옥도는, 피해자는 아직까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신음하지만, 가해자는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진정한 사과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집중 조명하고 있었다.

국가 범죄에 대한 시청자의 각성을 촉구하는 다큐멘터리이자 동시에, 과거에 일어난 국가 범죄에 대해 우리들이 어떻게 피해자를 보듬어주고 위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국가적인 차원의 보상과 사과가 다가 아니라, 시청자로 하여금 다시는 이러한 국가적인 폭력이 발생하지 못하게끔 경각심을 불어 넣으면서 말이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국가의 폭압에 대해 국민이 제어하고 견제의 기능을 갖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나치라는 파시즘이 작동하던 2차 대전 당시의 독일 사회로 혹은 군부 정치의 그늘로 빠져드는 걸 용인하고야 마는 역사의 어두움을 용인하는 사회가 되고 말 것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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