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인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오른쪽)과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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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스타 ■ 취재/이선필 기자| 거장이라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지난 26일 일본 도쿄 코가네이시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벼랑 위의 포뇨>(2008) 이후 5년 만에 그가 직접 기획과 각본, 연출까지 맡은 <바람이 분다> 덕이었다.
분명 그렇다. 72세라는 생물학적 나이만 봐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은 주목받아야 한다. 전 세계의 경우를 따져보아도 그처럼 애니메이터로서, 창작자로서 오랜 시간동안 활동하는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주목받았던 내용이 있었으니 바로 그가 발표한 작품 자체였다. 이미 알려진 대로 <바람이 분다>는 동아시아 국가를 비롯해 미국에겐 트라우마와도 같았던 2차 세계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했다. '전범'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한 군국주의의 망령이 일본 전역을 뒤덮었던 1920년에서 1940, 50년 사이를 시간적 바탕으로 뒀다는 말이다. 게다가 주인공인 비행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는 태평양 전쟁 가미카제 작전에 쓰였던 전투기 '제로센'의 개발자였던 실존 인물이다. 이 정도면 영화 개봉 직후 주변에서 우려가 나오기엔 충분하다.
전작을 통해 바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정체는? 그래서였는지 이례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한국 취재진과의 만남을 적극 추진했고, 기자회견 당시 약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질문 공세를 성심껏 소화했다.
최근 그가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발간하는 소책자 <열풍>에 일본 헌법 개정을 반대하며 위안부 문제 등을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기에, 관련 질문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회견 장소가 외부에 거의 공개하지 않았던 감독 개인의 작업실이었다는 점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의중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현장에선 헌법 개정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묻는 질문이 있었다. 심지어는 아베 정권이 취하고 있는 우경화 노선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작품으로 만났고 그의 일생에서 다시 있을까 싶은 공식 기자회견이었기에 <오마이스타>에서는 작품 중심의 발언을 중점적으로 담아 전했지만, 정치 이슈 관련 질문을 피해 가지 않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답변 또한 싣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따르면, 오히려 일본 사회의 문제점과 미래를 고민하며 만든 작품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와 <원령공주>로 알려진 <모노노케 히메>(1997)로, 버블 경제로 호황을 누리던 일본이 어디로 흐를지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성찰이 녹아 있다. 작품 속 세상처럼 절망적이진 않지만 현재 일본의 환경과 경제는 극심한 위기에 빠져있다. 주변국과 반목하며 역사의식을 잃어버린 일본의 현주소를 떠올리자면 그의 통찰력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작품을 통해 바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우익과 좌익으로 나뉘기 보단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에 가까웠다. 여기에 환경과 어린이에 대한 애정을 덧붙일 수 있겠다. 물론 역사, 사회 이슈에 대해 소신을 밝히며 종종 논란에 휩싸이긴 했지만 적어도 그가 선보인 작품 속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좌·우 분명한 입장을 요하는 정치적 위치에서 한 발 비켜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