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대한축구협회를 상대로 잔여 연봉을 지급하라는 내용 증명을 보낸 사실이 알려져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8일 각종 언론매체를 통하여 조광래 전 감독이 법률대리인을 통해 잔여 연봉을 지급받기 위한 법적 조치에 돌입한 것이 보도됐다. 조광래 감독 측은 "국내 지도자들에게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고자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광래 감독은 1년 전인 지난해 2011년 12월 축구대표팀 사령탑에서 경질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월드컵 3차 예선 레바논전 원정경기 패배 이후 대표팀이 예선탈락의 위기에 몰리면서 성적부진에 따른 문책성 경질이었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이 과정에서 규정에 명시된 기술위원회 소집과 논의 절차없이 협회 수뇌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감독 경질을 강행하면서 논란을 자처했다. 절차상의 하자는 축구협회에서도 인정한 부분. 조광래 감독과 함께 일하던 코칭스태프들도 모조리 동반사퇴했다.

그러나 조광래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굴욕적인 경질 조치 이후에도 당초 2013년 6월까지로 계약된 기간에 따른 잔여연봉을 지급받지 못했다. 통상적으로 프로와 대표팀을 막론하고 감독을 경질하더라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남은 계약기간에 따른 잔여연봉은 모두 지급하는게 관례다. 재정이 넉넉하지않은 시도민 구단이라도 할지라도 중도 퇴진한 감독들에게 잔여 연봉은 모두 지급한다. 하물며 축구협회는 1년 예산만 1000억을 웃도는 공룡 집단이다. 돈이 없어서 연봉을 지급하지 못했을리는 없다.

축구협회의 명분없는 연봉 줄다리기는 논리적인 사유보다는 조광래 감독에게 '괘씸죄'를 적용한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축구계 대표적인 야권 인사로 불리우는 조광래 감독은 재임 당시 선수선발과 대표팀 운영을 놓고 기술위원회나 축구협회 고위층과 여러차례 대립각을 세워왔다. 경질 이후에도 기자회견을 열어 축구협회의 대외적으로 부당한 일처리를 폭로하고 규탄하는 등 저항을 멈추지않았다. 축구협회 기득권 세력으로서는 이런 조광래 감독이 호의적으로 보이지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축구협회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는 명분도 없을뿐더러 말 그대로 국제망신감이다. 조광래 감독과 같이 일했던 코칭스태프들에게도 연봉을 지급하지않으려고 했던 축구협회는 브라질 출신의 외국인 코치였던 가마 코치가 제기한 법정 소송에 패하여 이미 잔여 연봉을 지급했다. 지난 8월 대한 상사중재원은 축구협회에 7월까지의 연봉 지급을 할 것을 주문하며 가마 코치가 "경질될 사유가 없었다"고 명시하며 축구협회의 일처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반면 다른 국내 코칭스태프들은 끝끝내 잔여 연봉을 모두 지급받지못했다. 대표팀에서 물러난 코치들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했다. 서정원 코치는 수원 코치를 거쳐 신임감독까지 올랐고, 박태하 코치는 서울로, 김현태 코치는 인천으로 향했다. 그러자 축구협회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한 시기와 동시에 남은 계약기간의 연봉은 줄 수 없다고 버텼다. 먼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쪽에서 남의 재취업까지 왈가왈부하며 새 일자리를 구했으니 약속된 돈도 줄 필요가 없다는 생떼를 쓴 것이다. 축구협회의 논리라면 "돈을 받고싶으면 잔여 계약기간동안 아무 것도 하지말고 백수로 지내"라는 이야기다.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요구였으나 국내 코치들은 울며겨자먹기로 어쩔수없이 합의했다. 첫째는 거대조직인 축구협회와 대립하는 모양새가 현 소속팀에까지 부담을 끼칠 수 있는 것을 우려했고, 둘째는 축구인으로서 자부심이 돈에 연연하는 이미지로 훼손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코치들은 결국 잔여연봉 전부가 아닌 4개월치밖에 지급받지 못했다. 말은 원만한 합의였지만 사실상 강요에 의한 굴복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조광래 감독은 아직까지도 경질 이후 잔여 연봉을 한 푼도 지급받지 못했다. 자존심이 유난히 강한 조감독은 지난 1년간 축구협회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돈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침묵을 지켜왔다. 연초에 김주성 축구협회 사무총장은 조 감독을 만나 4개월치 월급만 받으면 안되겠느냐고 설득하다 면박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조광래 감독은 현 집행부의 임기만료가 임박한 상황에서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결국 법적 조치에 나섰다. 연봉 미지급 부분은 어쨌든 조중연 현 회장 체제가 책임질 사안이기 때문이다. 내년 1월 9일까지 계약서 상에 나온 잔여 임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본격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나서겠다는 것이 조광래 감독 측의 입장이다.

조광래 감독이 돈 때문에 뒤늦게 소송에 나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광래 감독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역시 자신이 받은 대접이 후배 축구인들에게 선례로 남을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협회는 더 이상의 국제망신을 자처하지말고 결자해지에 나서야한다. 올해초 횡령과 절도를 한 회계직원에게 퇴직위로금 명목의 '용돈' 1억5000만원이 아깝지 않았으면서, 정작 부당한 해고를 당한 축구인에게는 당연히 주기로 약속된 임금조차 떼어먹으려고하는 것이 현재 한국축구협회의 수준이다. 축구를, 축구인의 권익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대변해야할 축구인 출신의 수장이 이끌고있는 축구협회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 하는 점은 모두 축구팬들이 안타까워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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