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옥탑방 왕세자>의 이각(박유천 분)과 MBC <더킹투하츠>의 이재하(이승기 분)

SBS <옥탑방 왕세자>의 이각(박유천 분)과 MBC <더킹투하츠>의 이재하(이승기 분) ⓒ SBS, MBC


이상하지 않은가? 요즘 한참 화제가 되고 있는 수목드라마 중 두 드라마의 주인공이 왕자님이다.

한 분은 가상의 입헌 군주국인 대한민국의 왕자님(<더킹 투하츠>)으로 왕이던 형님의 죽음으로 왕이 되실 터이고, 또 다른 한 분은 타임슬립하여 21세기 대한민국으로 떨어진 조선의 왕자님(<옥탑방 왕세자>)이시다. 게다가 이분은 대한민국에서도 재벌가 손자로, 한도가 없다는 블랙카드를 쓰는데 주저함이 필요 없는 신분이 되었다.

뿐만이 아니다. 크게 이변이 없다면 올 한 해 최고의 히트작이 될 <해를 품은 달>의 훤(김수현 분)이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한 때가 바로 김수현의 아역 여진구가 분했던 왕세자 시절이었다. 무엇이 21세기에도 왕자님을 갈구하게 하는 걸까?

 MBC <해를 품은달> 이훤 역의 김수현

MBC <해를 품은달> 이훤 역의 김수현 ⓒ MBC


왕자님에 이어 떠오르는 게 바로 신데렐라. 그렇다. 백마를 타고 온 왕자님은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그녀를 구렁텅이에서 구원해 왕비로 만들어 주는 존재다. 여성학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심리적 증후군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따르면, 여성은 동화 속의 신데렐라가 아님에도 끊임없이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그녀를 부귀영화의 길로 이끌어 주길 바란다고 한다.

진화 심리학에서는 여성들이 임신 및 출산 후, 내 아이를 안심하고 양육 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남자에게 외모 불문 끌리게 된다고 한다. 실장님에 이어, 재벌남도 모자라, 이제 왕자님까지 등장하는 대한민국의 드라마는 여성의 본능을 가장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그 많던 씩씩한 캔디들은 어디로 갔나

그런데 기억을 되돌려 보자. 이렇게 무차별적 왕자님들의 귀환 이전에는 용감하고 씩씩한 캔디의 성공 스토리가 인기를 끌었었다.

<옥탑방 왕세자> 이희명 작가의 전작 <토마토>의 이한이(김희선 분)는 가진 것 없어도 밝고 씩씩하고 게다가 재능까지 겸비한 구두 디자이너였다. <더킹 투하츠> 홍진아 작가의 전작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도 두루미(이지아 분)가 없었다면 강마에(김명민 분)처럼 한군데씩 결점이 있는 사람들이 오케스트라를 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옥탑방 왕세자>를 집필하고 있는 이희명 작가의 전작 <토마토>(1999)

<옥탑방 왕세자>를 집필하고 있는 이희명 작가의 전작 <토마토>(1999) ⓒ SBS


<해를 품은 달>의 원작자 정은궐의 작품으로 얼마 전 KBS에서 방영된 <성균관 스캔들>의 김윤식(박민영 분)은 '대물'이라는 호를 얻을 정도로 당차게 남자들만의 성균관에 들어가 제몫 이상을 톡톡히 해냈었다. 심지어 각색자 진수완 작가의 또 다른 작품 <경성스캔들>의 차송주(한고은 분)는 열혈 무장 투쟁에 앞장서지 않았던가.

비록 남자의 도움을 받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드라마 여주인공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었다.

순정녀, 캔디의 자리를 차지하다

그런데 최근 드라마에서 그녀들이 달라졌다.

'해를 품은 달'을 찬찬히 살펴보면, 여주인공 허연우(한가인 분)는 같은 작가의 작품일까 싶을 정도로 수동적이다. 기품 있고 지혜롭지만, 운명의 회오리 안에서 그녀는 그저 휩쓸러 가기만 한다. 성인이 되어 무녀가 되었지만, 훤을 만나 기억을 되찾고 다시 훤의 여자가 될 때까지 그녀가 의지적으로 한 일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더킹 투하츠>의 무시무시한 특수부대 교관 1호 김항아(하지원 분) 동무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하지원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나온다는 평가처럼, 그녀는 특수부대 교관이라는 직책이 무색하게 한 남자의 사랑 혹은 치기에 휘말려 줄곧 상처받고 애달파 하기만 하고 있다.

 MBC <더킹 투하츠> 이재하 역의 이승기와 김항아 역의 하지원

MBC <더킹 투하츠> 이재하 역의 이승기와 김항아 역의 하지원 ⓒ MBC


<옥탑방 왕세자>는 9살 이래로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음에도 트라우마 한 점 없는 씩씩하고 밝은 여주인공인 박하(한지민 분)보다 악역인 세나(정유미 분)가 때로는 더 주인공인 것처럼 자신의 운명 개척에 적극적(?)이다. 어느 틈에 박하는 왕세자 일행에 휘말려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며, 직장도 어머니 덕에 얻고,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순정파가 되어 버렸다.

능력의 최대치 보여주는 남자 주인공들

여주인공이 이런 반면에 실장님에, 재벌남을 넘어 왕자님인 남주인공들의 능력은 최대로 확장되었다. 앞서도 밝히듯이 <옥탑방 왕세자> 이각은 세나로 인해 옥탑방에서 쫓겨나게 생긴 박하의 위기를 머리카락을 자르는 거래 하나로 단번에 해결하고, 옥탑방을 펜트하우스 수준으로 리뉴얼 해주었으며, 맞선에 나가는 그녀를 위해 새 옷을 안긴다.

 SBS <옥탑방 왕세자> 이각 역의 박유천

SBS <옥탑방 왕세자> 이각 역의 박유천 ⓒ SBS


입헌 군주국의 한계를 운운하면서도, 항아를 쥐락펴락하는 잘 사는 남조선 왕자 이재하(이승기 분) 역시 못지않다. 심지어 <해를 품은 달>의 훤은 단칼에 모든 실마리를 풀어내, '명탐정 훤'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신하들의 역모 역시 미리 간파해 역습을 했다. 이분은 도대체, 학문이면 학문, 무술이면 무술, 심지어 개그까지 못하는 게 없었다.

이 심각하게 불균형적인 남여 주인공의 능력치 배분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왜 한때는 여주인공의 꿈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드라마의 모티브였는데, 이제는 꿈도 사랑도 모든 것이 왕자님의 손아귀 안에서 처분되기만 바라는 처지가 된 것일까? 혹시나 이건, 개인의 노력을 통한 꿈의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이 시대 여성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판타지일까?

최근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번 선거 때 야당의 패배 요인을 엉뚱하게 20대 된장녀의 낮은 투표율로 몰아세운 해프닝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가 사람들을 유도하는 것인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드라마가 만들어 내는 것인지. 과연 이 드라마들이 초라한 현실을 위로해 주는 건지, 비참한 현실을 잊게 만드는 최음제가 되는 건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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