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타르의 마지막 작품 <토리노의 말>을 본 그 밤은 돌이킬 수 없는 악몽과도 같았다. 마치 세상을 시험하러 애써 지구로 찾아온 악마를 만난것 처럼 온몸이 쑤시고 마디마디가 저려온다. 온통 어둠으로 가득차 있었던 146분이 흘렀을 때 정말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암흑이 머리에 박힌 것처럼 스산한 심정이었다.
황량한 벌판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녀의 서사조차 표현하기 힘든 이야기는 적어도 내게는 충격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보는 이를 힘들게하는 작품을, 그것도 마지막 작품으로 남긴 작자의 몰골이 궁금했다. 과연 벨라타르가 악마는 아닐까?
파멸에 이르기까지 발생하는 소멸들아직까지 귀 속을 파고드는 폭풍소리가 끔찍하게 들린다. 온통 <토리노의 말>에서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 찾아오는 이 거친 바람의 소리는 작품의 분위기를 장악한다. 집안을 삼킬 것 같은 그 폭풍을 맞으며 부녀는 매일같이 똑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그런 모습이 몇 번씩 반복되어질 때 지루함보다는 처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폭풍소리보다 더 끔찍한 부녀의 변화없는 행위는 그것을 스크린으로 보고 있는 모두를 지치게 만든다. 난 무엇보다 이 무서운 폭풍이 그들을 그 황량한 곳에 묶어둘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그 굉장한 소리가 그들을 파멸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