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웨이>

영화 <마이웨이> ⓒ 디렉터스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가 7년 만에 돌아왔다. 1996년 <은행나무 침대>로 감독의 길에 들어선 강제규는 1999년 <쉬리>로 한국 영화사를 다시 쓰게 하였다. 전국 관객 618만을 돌파한 흥행작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설정과 짜임새도 탄탄하여 그는 충무로 대표감독 가운데 한 사람으로 떠올랐다. 남북분단과 사랑이라는 처연함과 안타까움!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로 강제규는 언론의 주목을 다시 받게 된다. 1174만의 관객을 동원함으로써 이른바 천만관객 신화의 중심에 서게 된 강제규. 그 후로 그에게는 '흥행의 귀재'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미국에서도 <형제애 Brotherhood>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고,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부문 후보작으로 출품되었다.

천만관객 신화는 2003년 <실미도>의 1100만으로 시작되어, <태극기 휘날리며>를 거쳐 <왕의 남자>(1230만, 2005년)와 <괴물>(1300만, 2006년), 그리고 <해운대>(1130만, 2009년)로 이어져오고 있다. 강제규는 <마이 웨이>를 가지고 다시 천만관객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이 웨이>의 손익분기점이 1000만이기 때문이다. 과연 가능할 것인가!

준식 : 영화의 중심, 그러나 설득력은...

 영화 <마이 웨이>의 주인공 준식(장동건 분)

영화 <마이 웨이>의 주인공 준식(장동건 분) ⓒ 디렉터스

<마이 웨이>에서 이야기를 끄는 힘은 마라톤이다. 영화의 주인공 준식(장동건 분)과 타츠오(오다기리 조 분)가 마라톤으로 질긴 인연을 맺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달리기를 잘했던 두 사람이 달리기로 만나서 마라톤으로 대단원을 맞이하는 영화 <마이 웨이>. 따라서 영화 제목은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내가 선택하여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 운명처럼 대면하는 길.

준식은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으로 조선민중의 한을 달래주었던 손기정처럼 마라톤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한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달린다. 달리는 것만이 그의 삶의 원인이자 목표이기 때문이다.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준식은 달린다. 한겨울 혹한 속에서도 뙤약볕 모래사장에서도 그는 달린다. 그의 달리기에는 이해하기 힘든 맹목성이 있다.

"여기서 경성까지 달리면 얼마나 걸릴까. 1년쯤 걸리겠지."

노르망디 바닷물 속에서 준식이 타츠오에게 던지고 답한 말이다. 그런데 1년씩이나 걸릴 것 같지 않다. 노르망디에서 경성까지 1만2000km. 1년 365일. 나누면 하루에 33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 거리. 그들처럼 젊고 잘 달리는 청년들이라면 8개월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준식은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는 달려서 경성으로 돌아왔을까.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준식의 영웅성에 대해 공감하거나 동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준식의 행동에 의아해 하거나 더러 분노한다. 아버지와 조선의 적이며, 극악무도한 일제의 충실한 장교 하세가와 타츠오에게 어째서 나라 뺏긴 조선청년 준식이 그토록 도저한 인간애를 보여줘야 하는지 관객은 알지 못한다. 감독과 관객의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종대 : 민족주의 혹은 출세주의의 경계에서

<마이 웨이>에서 객석과 가장 폭 넓고 깊이 있게 교감하는 인물은 종대(김인권 분)다. 그의 솔직함과 직선적인 성격, 그리고 설득력 있는 상황설정 때문이다. 준식의 여동생 은수를 연모하는 종대는 그림자처럼 준식과 동행한다. 언제나 준식의 편에 서서 행동하는 그의 머릿속에는 은수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미래가 있다. 그러나 운명이란 게 어디 호락호락한가!

영화는 경성에서 출발하여 소련-몽골 국경을 거쳐 독일군과 소련군이 대치하는 유럽-러시아 전선을 지나 노르망디에 이르는 1만2000km의 여정을 보여준다. 일상화된 죽음을 동반한 여정에서 관객은 세 차례에 걸친 거대한 전쟁장면을 확인한다. 장대한 규모의 장면을 기막힌 카메라워크와 눈부신 컴퓨터 그래픽이 숨 돌릴 겨를 없이 잡아낸다.

영화는 할리우드 스타일 관객에게 제격이다. 거기서 준식은 주역이 아니라 조연으로 전락한다. 외려 종대와 타츠오가 최전방에서 영화를 인도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보여주는 치열한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 내지 애국주의가 강력하게 충돌하기 때문이다. 여러 걸음 물러서있는 듯 보이는 준식의 캐릭터는 아주 희미하다.

종대는 소련군 포로가 된 다음 입체적이고 전천후적인 인물로 변신한다. 순박한 식민지 조선 청년에서 민족적 자각과 자의식이 충만한 인물이 된다. 소련군에 앞장서 충성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려는 욕망의 화신이 되는 것이다. 그는 친구들과 등을 돌리고서라도 출세와 성공을 염원하는 불같은 욕망의 노예가 된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은수를 잊지 못한다. 이렇게 종대는 <마이 웨이>에서 가장 빛나고 화려한 인물로 살아난다.

타츠오와 쉬라이 : 변화하는 일본청년과 차돌 같은 중국처녀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요소는 언어일 것이다. 제목은 그렇다 치고,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대사가 일본어로 진행된다. 한국 관객들은 한국영화를 보면서도 자막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더욱이 주인공으로 설정된 준식보다 그의 일본인 경쟁자 타츠오의 캐릭터가 훨씬 다채롭고 용량도 크다.

 영화 <마이 웨이>의 여자 저격수 쉬라이(판빙빙 분)

영화 <마이 웨이>의 여자 저격수 쉬라이(판빙빙 분) ⓒ 디렉터스


준식은 성장이나 변화가 멈춘 정지된 인물이다. 이에 반하여 타츠오는 어릴 적에는 반항기로 넘쳐나기도 하고, 나이 들어서는 전쟁광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기도 한다. 죽음에 직면한 자신을 구하려는 준식에게 고마움을 절절하게 전달하려는 면모도 보여준다. 노르망디에서는 끝까지 준식을 구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헌신적인 자세도 내비친다.

타츠오의 변신과 비교하면 준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물화의 인물로 고요하게 멈춰 서있다. 성공적인 영화의 핵심적인 요소가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인물 창조라고 한다면, 준식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이런 면은 쉬라이(판빙빙 분)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고지전>에 등장하는 여성 저격수 태경을 연상시킨다. 백발백중에 미모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저격수 쉬라이를 움직이는 힘은 일본군에게 당한 능욕과 복수를 향한 뜨거운 염원이다. 전쟁광처럼 죽음마저 불사하는 쉬라이의 형상은 우리가 도저히 다가가기 힘든 거리를 느끼게 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쉬라이를 편하게 해줄 수 없을 것이라는 인상이 생겨난다. 따라서 그녀는 죽어서야 비로소 자유롭게 되리라는 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중일 관객들의 시선 : 21세기 세계와 개인, 그리고 국가

<마이 웨이>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몇몇 국지전을 제외하면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을 겪은 지 7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렸으니 말이다. 21세기 두 번째 10년을 보내면서 현대인은 전쟁과 국가, 그리고 민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영화에 대한 한중일 세 나라 관객의 반응 역시 적잖게 궁금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일환으로 일제가 일으킨 대동아전쟁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경험을 가진 한국인과 중국인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중국인들은 쉬라이에게 얼마나 동조할까. 타츠오가 보여주는 천황과 일제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과도한 국가주의 혹은 일본인 특유의 민족주의에 대해 현대의 일본 청년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알고 싶다.

이 모든 것이 강제규 감독의 머릿속에서 어떤 사유와 계산으로 이루어졌는지, 그 또한 궁금하기 짝이 없는 대목이다. 21세기 현재에도 여전히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정부와 천황가문, 극우 민족주의 내지 국가주의 세력의 존재를 생각하면 <마이 웨이>는 불편하고 우려되는 영화다. 그런 까닭에 영화는 그만큼 선진적이고 진취적이기도 하다.

영화의 인도적이고 선진적인 지점에서 문제는 시작한다. 2011년 12월 14일 1000회를 맞이한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반성과 사죄를 모르는 전쟁 범죄자들의 능청과 허세 또한 지속되고 있다. 진정한 사죄와 참회가 전제되지 않는 용서는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용서가 필요 없다는 자들에게 무슨 용서를 한단 말인가. 이런 점이 목에 걸린 날카로운 생선 가시처럼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영화에 대한 의미 있는 판단, 관객에게 달렸다

 영화 <마이 웨이>의 한 장면

영화 <마이 웨이>의 한 장면 ⓒ 디렉터스


<마이 웨이>는 여러 논쟁과 화제를 만들면서 흥행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천만관객 신화를 만들어낼 것인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한중일 삼국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등장하여 연기대결을 벌이고, 영화의 소재가 일본 제국주의가 야기한 조선침탈과 남경대학살,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과 노르망디까지 연결된다는 점에서 흥미롭기 그지없다.

'1944년, 노르망디에서 촬영된 한 장의 사진을 바탕으로 한 <마이 웨이>'

포스터 구절처럼 강제규는 상상력과 장인정신으로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제 영화를 다각도로 접근하고, 올바르게 평가하는 일이 우리 몫으로 남았다. 관객숫자가 아니라, 의미 있는 관점과 판단력을 가지고 <마이 웨이>를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자신의 길을 고집스레 달렸던 준식의 인생은 역사와 마찬가지로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마라톤 노르망디 마이 웨이 천만관객 한중일 관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터넷 상에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아름답고 새로운 세상 만들기에 참여하고 싶어서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개인 블로그에 영화와 세상, 책과 문학, 일상과 관련한 글을 대략 3,000편 넘게 올려놓고 있으며, 앞으로도 글쓰기를 계속해 보려고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