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피조물>(Heavenly Creatures, 이하 HC)은 피터 잭슨 감독의 1994년 작품으로 뉴질랜드에서 있었던 실제 살인 사건을 토대로 하는 영화다. 케이트 윈슬렛, 멜라니 린스키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아카데미 각본상 노미네이트,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 토론토영화제 등에서 수상을 하며 평단의 갈채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HC 매니아들을 양산해냈다. 피터 잭슨의 부인이자 제작자인 프랜시스 월시가 피터 잭슨과 함께 당시 사건을 다룬 기사들과 폴린의 일기장을 참고하여 각본을 썼다.
파커-흄 사건(Parker-Hulme Case)이라 알려진 이 살인사건은 1954년 6월 22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빅토리아 파크에서 일어났다. 피해자는 45세의 오노라 리퍼(Honora Rieper)였고, 줄리엣 흄(Juliet Hulme)과 폴린 리퍼(Pauline Rieper)라는 열다섯, 열여섯 살의 소녀가 그 범인이었다. 폴린 리퍼는 오노라 리퍼의 딸이었는데,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되지 않아 오노라 파커가 허버트 리퍼와 공식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져 엄마의 처녀적 성을 따라 폴린 파커가 되었다.
이 사건이 세간에 충격을 준 것은 범인의 어린 나이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들의 정신이상을 짐작했던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순식간에 무너뜨린 이들의 명석하고 또렷한 태도 때문이었다. 법정에서도 시종일관 명민한 모습을 보였던 이들은 결국 수년간의 감옥 생활을 거쳐 '다시는 서로 만나서는 안 된다는 조건(condition of their release that they never meet again)' 하에 석방되어 각각 영국과 뉴질랜드에 떨어져 있게 된다.
영화는 1954년 무렵 뉴질랜드 남섬 북동 연안 도시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일대의 한가롭고 여유로운 일상을 조명하는 뉴스릴(newsreel)로 시작한다. 일종의 관광용 홍보 필름으로 보이는 이 뉴스릴은 이후 영화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공간적 배경들, 이를테면 크라이스트처치여자고등학교, 캔터베리 대학교, 중산층 저택의 정원 등을 미리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이후 이어지는 날카로운 비명소리와는 상반되는 이미지, 평온한 거리와 한적한 풍경의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극적 서스펜스를 부가시킨다.
삽입된 뉴스릴의 마지막 부분에서 내레이터가 'yes, Christchurch. New Zealand's city of planes'라고 말하는 가운데 덧씌워지는 비명소리가 도시 풍경들 자체의 시각적인 한산함과 내레이터의 정적인 목소리를 배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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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상의 피조물> 스크린샷 |
익스트림 롱 쇼트에 가까운 (뉴스릴의) 마지막 쇼트에서 이러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화면 밖의 음향이 화면 내 공간의 확장을 의도하면서 사건을 암시한다. 귀를 찢을 듯한 비명소리와 피로 범벅된 인물을 비추는 카메라 기법은 스플래터 무비의 그것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피터 잭슨의 전작 <데드 얼라이브>(Dead Alive)와는 달리 HC의 주인공들이 쫓기는 것은 좀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청춘의 이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광기 넘치는 로맨티시즘이다.
빅토리아 파크에서 덤불 속을 헤집는 비명 소리와 함께 화면은 전환되며 곧 이어지는 트래킹 쇼트(tracking shots)는 인물의 흐름을 잡기보다는 달리는 인물의 시점을 따라간다. 이에 비명이라는 음향 효과가 가세되면서 심리적인 긴장감을 유도한다. 또한 이 트래킹 쇼트의 처음과 끝에는 '샤샥'하는 특수 음향을 삽입하여 쇼트의 긴박감과 속도감을 가중시킨다. 이 트래킹 쇼트가 끝나면 이제 카메라는 인물의 시점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인물을 따라가게 되는데, 두 쌍의 다리를 클로즈온했다가 와이드샷으로 달리는 두 소녀들을 비추게 된다.
숲 속을 달리는 인물들의 두 쌍의 다리를 프레임 안에 넣으면서 동시에 흑백 시퀀스가 쇼트와 쇼트 사이에 삽입된다. 폴린, 줄리엣, 흄 부부가 등장하는 이 흑백 시퀀스는 영화 전체에서 3번 등장하는데, 이는 영화적 상상력에 기초한 허구로서 폴린의 욕망과 결부되어 있다. 계급에 대한 동경과 줄리엣과의 동성애적 우정과 관련한 폴린의 욕망들이 흄 가족에 스스로가 편입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시퀀스는 이후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실제 줄리엣과 폴린의 비극적 상황을 더욱 부추긴다(실제로 부활절에 흄 가족의 소풍에 함께 한 폴린은 강가에서 줄리엣의 엄마인 힐다가 자기를 'you are my fosterdaughter(양녀)'라고 불러주자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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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상의 피조물> 스크린샷 |
삽입된 시퀀스는 숲 속에서의 장면과 여러모로 대비되는 한편 실제와 욕망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면서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심상과 조우한다. 숲 속이라는 실제를 달리는 두 다리와 배 위라는 허구 혹은 욕망을 달리는 두 다리는 서로 매우 다른 맥락에 놓여 있다. 비명을 지르며 절망적으로 달리는 다리와 기쁨에 겨워 달리는 다리. 숲 속 장면과 배 장면의 교차 속도는 컬러와 흑백의 대비 속에서 증대되고, 줄리엣과 폴린은 둘 다 헨리와 힐다(흄 부부)를 향해 'Mummy'라고 부르며 달려간다. 크래쉬커트(crash cut)와 인터커트(intercut) 사이의 유사한 장면이 계속해서 평행하게 교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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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상의 피조물> 스크린샷 |
타이틀 시퀀스에서는 등교하는 여자고등학생들, 그것도 걸어 움직이는 다리들을 카메라가 트래킹하고 있는데, 앞서 시퀀스에서의 다리의 움직임과 비교해서 보면 흥미롭다. 동일하다고 여겨지는 신체 부위들이 서로 다른 맥락에서 어떻게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옷도 제대로 안 입고 서둘러 집에서 나와 담을 넘는 폴린 파커와 아버지가 운전하는 자동차로 등교하는 줄리엣 흄을 교차편집하여 보여준다. 백 명의 여학생들이 부르는 "Just a Closer Walk With Thee"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이 노래는 이후에 결코 다시 '걸을 수' 없었던 이 둘의 미래를 역설적으로 반영한다.
이어 평일 아침 여학생들의 일상적인 등교 장면이 비쳐지고, 로우앵글(low angle)로 달리는 차가 촬영된 앙각쇼트가 이를 뒤따른다. 헨리 흄의 차가 학교 건물 앞에 멈춰서는 것으로 타이틀 시퀀스는 끝을 맺는다. 결국 노래 한 곡의 분량에 맞는 이 타이틀 시퀀스에는 향후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과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는 냉소적인 표정의 폴린의 성격을 보여주며, 줄리엣과 폴린의 계급적 차이에 기인한 사건의 면모 또한 짐작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영국에서 전학 온 줄리엣이 처음 들어가게 된 수업은 불어 수업으로서, 줄리엣의 계급적 성향과 함께 명석하면서 거만한 성격의 일단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불어 교사로 분한 배우는 바로 다름 아닌 엘리자베스 무디(Elizabeth Moody)인데, 그는 피터 잭슨의 전작 <데드 얼라이브>에서 무시무시한 좀비 엄마로 열연한 적이 있다.
미술 시간에 친구(폴린)를 그리라는 선생의 말을 무시하고 줄리엣은 이탈리아의 테너 마리오 란자(Mario Lanza)를 닮게끔 성(聖) 조지를 그린다. 이어진 점프컷(jump cut)에서는 하숙을 내주는 폴린의 가정이 묘사되고 마리오 란자 LP를 들고 달려오는 폴린이 등장한다. 점프컷의 시간적 비약으로 인해 폴린의 이러한 행위는 줄리엣에 의해 즉발되었음을 암시한다.
폴린은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는 인물로서, 계급 상승 욕구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욕망을 분출할 수 있는 창작 행위에 골몰해오던 폴린이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줄리엣을 만나자마자 헤어나오기 힘든 관계에 휘말려 들게 된 것은 필연적이다.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폴린의 아버지가 마리오 란자의 음악에 맞춰 파닥이는 생선을 마이크 삼아 립싱크를 하는 장면은 폴린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속한 하위계급에 대한 수치 그 자체다.
이어지는 점프컷에서는 학교 체육시간에 건강상의 이유로 참여하지 않는 줄리엣과 폴린을 보여준다. 구령을 외치는 화면 밖의 목소리는 계속되면서 줄리엣과 폴린은 클로즈업되어 자그마한 목소리로 서로의 비밀을 속삭인다. 그 비밀은 바로 '훌륭한 사람은 모두 상처가 있다는 것(All the best people have bad chests and bone diseases!)'이다. 심지어 그것은 끔찍하게 로맨틱하기까지 하다(It's all frightfully romantic!).
'건강하다는 것'에 대한 냉소가 가득한 것은 HC의 전반적인 특징 중 하나로, 어렸을 때부터 건강상의 혹은 다른 이유로 욕망과 실재 사이의 괴리를 경험한 소녀들이 어떻게 그들만의 세계를 상상하고 구축해내는지를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폴린은 자전거를 타고 줄리엣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줄리엣이 성 조지를 그리던 미술시간 장면, 폴린이 마리오 란자를 듣기 위해 집으로 달려오는 장면, 체육 수업에서 배제되어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기 시작하던 장면 그리고 이 자전거 질주 장면까지 모두 네 개의 장면은 그 시간의 순서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 컷들의 연속적인 집합은 냉소적인 폴린이 어떻게 해서 줄리엣에 매혹되어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되는지에 대한 서술의 과정이다. 그것은 바로 줄리엣에게는 폴린이 욕망하는 문화적 계급의 이상이 있었고 줄리엣이 바로 폴린이 꿈꾸는 욕망에 근접해 있었기 때문이다.
줄리엣과 폴린, 그리고 줄리엣의 남동생이 햇살 좋은 숲 속을 달리는 장면은 놀랍게도 영화 도입부에서 덤불 속을 달리던 장면과 흡사하다. 익숙한 카메라 트래킹과 시점을 사용함으로써 두 장면 사이에 있는 멀고도 먼 심리적 거리에서 나오는 충격적 대비 효과를 의도하는 것이라 봐도 좋다. 이는 나른한 오후의 매우 한가로운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쓰이는 음향효과는 스플래터 무비의 그것을 닮아있다.
특히 줄리엣의 남동생이 덤불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 폴린을 쓰러뜨리며 폴린이 가지고 있던 마리오 란자 LP를 부러뜨리는 장면에 쓰인 음향효과는 <데드 얼라이브>와 같은 영화에서 갑자기 좀비가 나타나 주인공을 공격하는 장면에 쓰인 것과 흡사하다. 이는 피터 잭슨 감독 개인의 취향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마리오 란자'가 음악과 예술로 가득한 이상향을 꿈꾸는 줄리엣과 폴린에게 갖는 의미가 '좀비에게 희생 당하는 인간의 목숨만큼이나' 막대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줄리엣과 폴린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크라이스트처치 시내 일대를 정신 없이 활보하고 그토록 사랑하는 음악을 외치며 숲 속을 달리는 것과 같은 장면은 주로 핸드헬드 카메라를 사용한 롱테이크를 사용했다. 이와 같은 카메라 기법은 이 십대 소녀들의 행동을 계속 해서 좇음으로써 왕성한 생명력을 드러내 보이는 데 효과적이다.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마리오 란자의 '동키 세레나데'처럼, 마치 당나귀와도 같은 이 정신 없는 생명력과 완벽하게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내고 싶어하는 청춘의 모습들은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만을 좇는 핸드헬드 카메라를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폴린이 줄리엣의 계급을 욕망하는 것과는 반대로 줄리엣은 자신이 속한 계급의 허위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 이는 연약한 지식인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함께 어머니의 불륜을 향한 비난으로 이어진다. 여하튼 폴린과 줄리엣 둘 다에게 있어 현실은 감당하기 힘든 삭막한 곳이다. 실재하는 세계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이 어린 소녀들, 특히 줄리엣은 '네 번째 세계(the fourth world)'에 가기를 소망한다. '네 번째 세계'는 새들과 유니콘, 그리고 커다란 나비들만이 (줄리엣과 폴린 외에) 유일한 피조물(creatures)인 곳, 음악과 미술 그리고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 찬 이상적인 곳이다.
한편 줄리엣이 꿈꾸는 이 '네 번째 세계'는 실제 살인 사건 후에 경찰에 의해 발견된 폴린의 일기장에서만 등장하는 곳이므로, 오로지 감성이 풍부한 십대 소녀의 일기장에 의해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네 번째 세계'의 구축을 위해 피터 잭슨은 다양한 편집을 시도한다. 피터 잭슨은 영화 전체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실화의 디테일을 살리고 있지만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특히 '네 번째 세계'에서 보이는 로맨티시즘의 증후는 이와 같이 실제 사건의 주인공인 폴린 이본 파커의 일기장에 기초하고 있다.
그들의 욕망이 실현되는 이상적인 곳, '네 번째 세계'는 역설적으로 현실에서 이 소녀들의 욕망이 좌절되는 순간에 등장한다. 폴린과 흄 가족의 부활절 피크닉에서, 흄 부부의 영국 단기 여행을 알게 된 줄리엣은 어렸을 때 병원에 있어야 할 때처럼 자신이 다시 한 번 혼자 남겨지는 것을 알게 되고 절망에 빠진다. 줄리엣의 이러한 좌절을 표현하는 방법은 그의 광적인 성격만큼이나 극적이다. 헬리콥터를 이용한 촬영을 동원하여 뉴질랜드의 드넓은 자연 일대를 마구잡이로 달리는 줄리엣을 익스트림 롱 쇼트 안에 넣어두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넓게 펼쳐진 초원만큼이나 광활한 줄리엣의 황폐한 심경을 표현하기 위해서 피터 잭슨이 사용한 것은 클로즈업과 같이 인물의 심리를 다루는 관습적인 방법이 아니라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를 극대로 늘인 익스트림 롱 쇼트를 통해 줄리엣의 슬픔을 마치 더 과장해서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이는 또한 인물의 감정이 과장된 데서 발생하는 유머로 인해 사실상 인물의 감정에 과도하게 이입되는 것을 피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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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상의 피조물> 스크린샷 |
초원의 어느 구석에선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던 줄리엣은 그야말로 갑자기 평범한 자연의 모습에서 '네 번째 세계'를 발견한다. 폴린은 일기장에 묘사하기를, '두뇌의 일부분을 이용하여 그곳에 이를 수 있는 열쇠'를 얻었다고 했다. 바로 이 두뇌의 일부분을 사용하여 창조한 '네 번째 세계'의 표현을 위해서 갑자기 나무들과 꽃들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등의 특수효과가 쓰인다.
그러나 누가 봐도 유치하다 싶을 정도의 미장센은 피터 잭슨의 것이라기보다는 십대 소녀 줄리엣과 흄의 것이다. 이곳은 '아름다운 세계'가 아니라 '네 번째 세계'이며 그들이 상상 속에서 구축해놓은 세계이니까. 또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도 환상 속의 자연은 실제의 그것과는 달리 인위적으로 조작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네 번째 세계'에는 머리에 뿔이 달린 유니콘들이 있고 늑대만큼이나 큰 나비도 있게 된다.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 줄리엣이 그토록 염원하던 이러한 '네 번째 세계'가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줄리엣이 갖는 욕망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폴린의 목소리가 보이스오버(voice over)되면서 말하기를, 이미 6개월 동안이나 이 '네 번째 세계'를 갖고 있었지만 오늘, 바로 예수가 죽은 날에서야 그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줄리엣의 욕망이 상실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축해놓은 세계가 바로 고통 없이 순수한 기쁨으로만 가득 찬 '네 번째 세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폴린의 욕망은 보다 수동적인 것으로 그의 욕망은 상실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지 못함' 즉 결핍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폴린의 욕망은 대체적으로 폴린이 욕망하는 세계 그 자체인 '줄리엣'을 따라가는 양상을 띠게 된다.
'네 번째 세계'를 발견한 이후 줄리엣과 폴린의 허구적 상상력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현실 깊숙이 침투한다. 그들이 만들어낸 찰흙인형들은 이름뿐만 아니라 생명력 또한 부여받아 현실 속에서도 활개를 친다. 심지어 이 찰흙인형들에 자아를 투사한 줄리엣과 폴린은 찰흙인형의 이름들인 드보라(Deborah), 지나(Gina)라고 각각 서로를 부르는데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서 이들의 광기가 커질수록 이러한 이름들을 부르는 횟수는 늘어난다. 줄리엣과 폴린의 분신과도 같은 찰흙인형들은 현실 속에서도 등장하여 줄리엣과 폴린의 세계를 위협하는 것들을 검으로 무참히 찌른다(오노라 파커 살인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면서 이들 소녀들은 더 이상 현실과 환상 혹은 가상을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들의 욕망이 실현되는 곳, 그들의 사랑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곳이 바로 그런 환상의 세계였던 것이다. 건강함으로 상징되는 정상성이라는 범주를 만들어놓고 광기를 포함하여 그 이외의 것을 비정상이라는 이름으로 배제하는 어른들의 세계는 파괴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장면들을 묘사함에 있어서 피터 잭슨은 스플래터 무비의 거장다운 면모를 과시하는데, 줄리엣이 머무는 요양소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신부를 찰흙인형이 끌고 가 무참히 창을 내리꽂는 장면이나 남자애들과도 좀 어울려보라는 한심한 말을 늘어놓는 베넷 박사의 배 가운데 찰흙인형 디엘로의 검이 불쑥 튀어나는 장면 등은 여전히 잭슨다운 시도다.
이전의 영화들에서 좀처럼 감정이입을 시도하지 않았던 잭슨이 HC에서는 이 소녀들을 향한 독자의 감정이입을 매우 활발히 유도하고 있다. 따라서 영화를 보는 관객은 마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그들의 정신 없는 행보에 함께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천상의 heavenly' 것으로만 남지 않게 된 큰 요인 중 하나는 오노라 파커로 분한 사라 페어스의 신중한 연기력이다.
뉴질랜드의 배우 사라 페어스(Sarah Peirse)는 여느 스플래터 무비의 희생자처럼 희화화되지 않고 관객으로부터 동정을 이끌어내며 이 영화가 단지 십대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게끔 함으로써 영화에 인간적인 깊이를 더해준다. 따라서 오노라 파커의 죽음을 다루는 장면에서는 스플래터 무비에서의 음향효과와 긴박감 넘치는 카메라 트래킹 등이 차용되면서도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가 감지되는 것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하나의 퀼트천처럼 잘 짜인 디테일들 - 일례로 줄리엣이 혼자 요양소(sanatorium)에서 쉬고 있을 때 그는 폴린을 위해 스웨터를 짜고 있었다. 이러한 '스웨터' 모티브는 한밤중에 폴린의 방에 들어와 시답잖은 소리를 늘어 놓으며 존이 생각없이 뒤적인 잡지 'Ladies' Home Journal'에서도 나타난다. 또한 요양소 퇴원 후 줄리엣과 폴린이 시내를 돌아다니던 무렵에는 폴린이 그 빨간 스웨터를 입고 있다. – 과 이들 청춘의 극적인 감정상태와 생명력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했던 음악의 사용은 HC의 또 다른 백미일 것이다.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처음 만나는 자유>(Girl, interrupted)나 도라 버치 주연의 <판타스틱 소녀백서>(Ghost World)에서처럼 비록 소녀들의 우정을 다룬 청춘영화의 상당수가 이들 십대 소녀들의 광기에 의존하여 그들을 묘사하고 있지만, 현실과 좀처럼 타협할 수 없는 이러한 광기는 분명 소녀들뿐만 아니라 청춘 그 자체의 전형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HC가 성공적인 영화일 수 있었던 까닭 또한, 청춘의 또 다른 이름인 이러한 광기를 다양한 편집 방법과 카메라 워킹으로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절대 놓치지 않는 현실적인 감각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청춘영화가 그립고 아쉬운 까닭은 이제는 성인이 돼버린 우리 안에서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광기의 흔적, 어떤 원형이 그 안에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