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리에 환호하는 대한항공
ⓒ 황교희
"오늘 사고 한번 치겠습니다."

경기 전 기자들에게 이렇게 소리쳤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됐을까?

31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힐스테이트 2006-2007' 남자배구 경기에서 대한한공이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지난 2004년 1월 8일(당시 V투어) 이후 약 3년여 만에 짜릿한 승리를 맛봤다.

5세트 승부를 결정짓는 신영수의 공격이 성공하자 두 손을 번쩍 들며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대한항공의 문용관 감독이었다. 기자들과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날 승리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길 수 있었던 모든 원동력은 선수들이 잘 해주었기 때문"이라며 선수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다.

모교인 1987년부터 인하대학교에서 약 18년여 동안 배구팀 코치와 감독을 역임한 문 감독은 지난 2005년 3월 대한항공 사령탑에 올랐다. 당시 대한항공은 프로 첫 시즌에서 프로팀들을 상대로 단 1승 밖에 거두지 못하며 프로 팀들 가운데 가장 낮은 순위(6승14패)를 기록했을 정도로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상태였다.

@BRI@용병이 첫 도입된 지난 시즌도 용병 영입에 실패하고 선수들의 무기력한 플레이도 고치지 못한 채 15승 20패로 LIG에 밀려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물론 그로 인해 원년을 포함해 세 시즌 연속 드래프트 1순위 선수(신영수-강동진-김학민)를 영입할 수 있었고 신영수와 강동진은 어느새 팀의 주축으로 급성장했다.

일단 젊고 잘하는 선수를 수급한 문 감독은 성인이 된 선수들의 기량 변화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팀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 두 가지를 시도했다.

첫째로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프로 팀 경기는 물론이고 초청 팀들에도 자주 패배를 당하며 매너리즘에 빠졌던 선수들의 정신을 무장시켰다. 감독으로서 선수들에게 먼저 어떤 것을 요구를 한 것이 아니라 요구사항을 먼저 듣고 대신 선수가 스스로 책임지는 식으로 운영했다. 이와 더불어 팀의 장단점과 상대 팀 선수들의 전력을 분석하며 시즌을 준비했다.

또 하나의 변신은 시즌 전 잠시 지휘봉을 내려놓은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는 브라질 배구를 익히기 위해 영입한 '슈빠' 코치에게 약 한 달 반 동안 팀 훈련방법과 일정까지 맡겼던 것이다. 언어가 달라 전달사항에 어려움이 있었는데도 선수들이 잘 따라줬다. 결국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끈기와 브라질만의 특유의 스타일까지 배울 수 있었다.

많은 준비를 했던 대한항공은 첫 경기였던 LIG전에서 부담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지만 25일 한국전력, 30일 상무를 각각 3-0으로 완파했다. 초청 팀 경기에서 얻은 승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31일 디펜딩 챔피언 현대캐피탈전마저 3-2로 넘어서며 배구 팬과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분명히 대한항공은 예전과 달라졌다. 코트 안에서 이기고자 하는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플레이는 그동안 대한항공에서는 찾기 어려웠다. 여기에 부상에서 회복한 주포 신영수와 강동진이 경기를 거듭할수록 실력이 나아지고 브라질 용병 보비의 뛰어난 경기가 지속된다면 올 시즌 그들의 돌풍은 쉽게 그치지 않을 것 같다.

다음은 문용관 대한항공 감독과 한 인터뷰

▲ 대한항공 문용관 감독
ⓒ 황교희
- 언제 마지막으로 현대를 이겼는지 기억하나?
"확실히 기억이 안 난다.(웃음)"

- 현대를 꺾은 소감은?
"상당히 기쁘다. 그 동안 우리 팀은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다. 상대가 강하다고 생각하면 자포자기했는데 그것을 타파할 계기가 필요했다. 선수들에게 마인드 컨트롤의 중요성을 심어줬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주문했다."

- 팀이 변한 것 같은데?
"경기에서는 이겼지만 내용면에서는 만족하지 못한다. 세터의 다양한 플레이가 필요했다. (김)영래가 좋아져 팀이 발전했다. 서브와 득점에서는 좋지만 경험 부족으로 세트 플레이가 떨어진다. 개막 전 일본 전지훈련을 다녀왔는데 세터를 위한 것이었다고도 봐도 무방하다."

-선수들은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다고 했는데 감독은 어땠나?
"스스로 많이 바꾸려 노력했다. 특히 프로팀에 와서 대학 시절 때와는 다르게 하려고 했다.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요구를 듣고 대신 책임을 묻게 하는 그런 운영을 했다. 선수들의 장단점과 상대 팀 전력을 분석할 때는 주로 논의를 했다."

-외국인 코치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나?
"사실 시즌 전 한달 반 동안 그에게 팀을 맡긴 적이 있다. 다행히 선수들이 잘 따라줬다."

- 대한항공의 기둥이 부족하다고들 하는데 감독이 생각하는 기둥은?
"1순위 영입이 이어졌는데 신영수와 강동진이 아닐까 싶다. 제 몫만 잘 해준다면 그들이 기둥이다."

-경기 전 사고 한번 치겠다고 외쳤는데 자신 있었나?
"선수들에게 생각을 바꿔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다.(웃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스포홀릭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01-01 07:57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스포홀릭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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