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1@ 그때가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하지는 못한다. 다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중학교 1,2학년쯤이 아닌가로 생각되는 그해 여름,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었던 나는 막내삼촌과 <터미네이터 2>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던 극장(아마 '단성사'가 아닌가 싶다) 입구를 시작으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미래에서 온 사이보그'의 흥행 파괴력은 대단했다.
당시 입장료는 3천원. 나이가 엇비슷한 삼촌과 조카 관계였기에 죽이 잘 맞았던 둘은 입구에 버티고 서서 가진 돈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는 길에 버스를 잘못 타서 다시 갈아타는 바람에 꼭 6백원이 모자란 것이다.
한없이 심약하기만 했던 둘은 행여 주위 사람들에게 꿔달라는 말도 못하고 'T-1000'의 변화무쌍한 모습도 보지 못한 채 기나긴 대열에서 쓸쓸히 퇴장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허름한 동네 어귀에서 발견한 동시 상영 극장은 우리에게는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였다. 거기서 보았던 왕조현, 장국영 주연의 <천녀유혼>은 지금까지도 도저히 잊지 못할 '내 인생의 영화'가 되어 버렸다.
@IMG2@난약사에 살고 있는 귀신 '섭소천'의 비무(飛舞)는 어린 내가 봐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태껏 '전설의 고향'에서나 보던 무시무시한 귀신이 이렇게나 아름답게 그려질 수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비디오로 다시 빌려 본 <천녀유혼>은 그때 그 기억을 되살리게 만드는 일종의 '타임 머신'이다. 수금을 하기 위해 곽북현이란 마을로 들어서게 된 영채신(장국영 분)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냔약사'라는 절에 찾아가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러나, 그 곳에는 남자들을 유혹해 '양기'를 빨아들이는 나무귀신이 살고 있었던 것.
억울한 죽음을 당하여 혼령이 미처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나무귀신의 수양딸이 되어 버린 미모의 귀신 섭소천(왕조현 분)은 영채신의 순박하고 착한 성품에 반하여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번번히 나무귀신의 방해로 이들의 사랑은 가로막히게 되고, 새벽이 오기 전에 그녀의 유골을 찾아 다시 장사지내야만 하는 영채신과 섭소천 사이에 시공을 뛰어넘는 사랑이 생기게 된다.
중국 설화인 <요재지이>를 바탕으로 서극 감독이 제작을 맡은 <천녀유혼> 시리즈는 '귀신과 사람의 사랑'이라는 기묘한 주제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하늘을 날아오르고 현란한 무술을 선보이는 정통 중국 무협물에서 벗어나 환상적인 '중국 영화'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것은 물론이다.
@IMG3@그러나, 이 영화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은 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 장국영의 영향이 크다. 그의 영민한 모습을 바라보는 나로서는 <영웅본색>에서의 '비장미'보다 오히려 <천녀유혼>에서 보여준 '순박함'이 그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것은 한없이 외로웠지만 그 안에 담겨진 배우로서의 '눈빛'이 가감 없이 드러난 느낌을 그 옛날 허름한 동시 상영관에서 숨죽여 보았던 내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이리라.
더구나, 극중 후반부에서 날이 밝아와 귀신인 섭소천을 염려한 영채신이 햇빛을 몸으로 가리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던 '새벽이여 오지 마세요'라는 노래는 굳이 주해를 달지 않아도 가슴 깊이 새겨진다.
미처 못다한 한을 풀지 못해 구천을 떠도는 원혼과의 애절한 사랑이 마치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어느 화려한 호텔에서 인생을 마감한 장국영의 모습을 대하는 것만 같아 내 유년 시절, 가장 잊지 못하는 '미아리' 영화 키드의 추억으로 씁쓸하게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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