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안내] 이 글에는 영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의 줄거리 등이 일부 노출돼 있습니다...<편집자 주>

ⓒ 20세기 폭스
흔히 영화를 나누는 기준 중에 이러한 분류법이 있다.

첫 번째, ‘극장용’ 영화. 이 부류에 속하는 영화는 대부분 화려하기 그지없는 스펙타클한 영상과 일거에 자동차 수 십대 정도는 부술 만큼의 돈을 아끼지 않는 내용을 가진, 철저한 관객 서비스 정신을 도모한 작품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싼 영화표를 거머쥐고 일부러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작품들이 되겠다.

두 번째로 이른바‘예술 영화’가 있다. 이 부류에 속하는 작품들은 언제나 비수기에 당당하게(?) 극장에 걸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프랑스’나 심하게 혀를 꼬아야만 발음되는 감독들의 작품군(예를 들어 끌레밍 스꼴라리스카 감독의 ○○ 같은)이라면 두말 할 것 없이 관객들의 주머니를 털기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이들은 주로 몹시 그 발음을 즐겨하는 마니아들에게 항상 열려 있기 마련이다. 다만 대부분의 일반 관객들은 예외.

마지막으로, ‘비디오용 영화’가 그것이다. 이 부류에 속한 작품들은 하나같이 앞서 이야기한 작품들과는 다르게 오랫동안 고군분투하며 독자노선을 걸어온 ‘헝그리’정신으로 단단히 무장한 영화가 대부분이다. 미처 극장에서 자신들의 장점을 발현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스러진 영화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비디오 숍에서 “아, 이런 영화가 있었네!”하는 감탄사를 주저 없이 내뱉게 만든다.


굳이 이런 분류법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비디오용’ 영화가 주는 산뜻한 기쁨 때문이다. 간혹 아무 생각 없이 빌려온 영화가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올 때, 또는 지금까지 누려보지 못한 흥분과 긴장감을 줄 때 밀려오는 카타르시스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굳이 비교하자면 낚시꾼이 월척을 낚았을 때의 그 전율에 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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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내게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가 그랬다. 미처 극장에 내걸린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늘 우리에게는 예뻐야만 할 기네스 펠트로가 '뚱녀'로 나온다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기막힌 영화가 아닌가.

주인공 할(잭 블랙 분)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대로 예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꿈꾼다. 그러나, 별볼일 없는 그가 추파를 던지는 여자마다 딱지를 놓고 만다. 그러던 중, 유명한 심리 치료사를 만나게 되면서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한없이 달라진다.

할이 사랑하게 된 아리따운 여자는 바로 300파운드가 넘는 ‘뚱녀’ 로즈마리(기네스 팰트로 분). 같이 간 음식점에서 그녀가 앉은 의자가 부러지는 것은 기본이고, 수영장 물이 넘칠 정도로 풍덩 다이빙 하는 체구가 마냥 좋기만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를 걱정한 할의 친구는 할을 치료한 심리 치료사를 찾아가 원래대로 해줄 것을 부탁한다. 결국 로즈마리의 정체를 알게 된 할의 마지막 선택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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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로 주목받기 시작한 패럴리 형제의 화장실 유머는 이번에도 십분 발휘된다. 하지만 전작과는 다르게 지저분한 ‘섹스’ 코미디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고 오히려 ‘핸디캡’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의 전복에 있다.

예를 들어, 못생긴 남자와 예쁜 여자가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남자가 돈이 많은가 보군”하고 생각한다. 반대로 뚱뚱한 여자와 준수한 외모의 남자가 지나가도 역시 똑같은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비단 그것은 시기심에서 오는 판단착오일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가진 마음의 본질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주인공 할의 목표를 쉽게 허물어 뜨릴 만큼 그의 착각 속에서 살고 있는 로즈마리는 젊고 아름다운 완벽 그 자체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사랑의 빛깔은, ‘외모’에서 비추어지는 얄팍한 빛이 아니고 오래 묵어 둔탁하지만 전하는 빛은 영원한 ‘마음’의 아름다운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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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영화는 그 빛깔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감동으로 옮아간다. 비록 코미디라 할지라도 어느 한 약점을 잡아내어 내지르는 웃음은 비웃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만, 적어도 내게는 ‘비디오용’ 영화로 여겨졌던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를 통해 건네받은 유쾌함은 시종일관 ‘월척’을 낚은 듯한 마음으로 진하게 배어나오게 만든다.
2003-08-06 19:4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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