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아왔던 장애인 영화 <오아시스>가 드디어 개봉되었다. 내가 장애인이다보니 오랜만에 나온 한국의 장애인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일인지라, 며칠 전 시간을 내어 영화를 보러 갔다. 그런데 관객이 너무 많아 마지막 상영시간을 제외하곤 모두 매진되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면서도 내내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라는 징크스를 깨고 흥행에 성공한 이 <오아시스>라는 영화를 잊을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영화' '현실의 편견과 장벽을 뛰어넘어선 뭉클한 사랑얘기' 등등의 극찬을 받은 이 영화에 대해 이창동 감독은 "사회부적응자 또는 장애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사회적 규정은 그들에게는 또 다른 벽일 뿐이다"라고 했기에 감독의 표현에 가슴 한구석이 시원해지는 느낌으로 영화를 상상하였다.
 영화 <오아시스>의 한 장면

드디어 이 영화를 보았다. 보고난 소감은……비참했다. 결국 이창동 감독조차도 장애인을 '바보'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또 하나의 한국영화 <아다다>를 보고 나온 느낌이다. 이창동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전반적인 내용은, 사실 그다지 문제가 된다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도 알 것 같다. 그리고 설경구와 문소리의 연기는 너무도 탁월했다.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 그가 말했던 "사회부적응자 또는 장애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사회적 규정은 그들에게는 또 다른 벽일 뿐이다"라는 말에 비추어봤을 때, 그는 장애인을 너무 모르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한국인이 가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자'는 의도가 곳곳에 깔려 있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있는 여자주인공 '공주'는 여전히 한국인이 가진 편견을 그대로 소유한 한국형 장애인, 아다다의 모습이었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 '공주'는 홍경래가 장군이 아니라 반역을 하여 난을 일으킨 인물이라는 것도 아는, 지능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나온다. 단지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제대로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일 뿐이다. 뇌성마비 장애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지능은 손상이 없고, 신체적인 마비만 있는 경우와 지능과 신체 모두 손상을 입은 경우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뇌성마비 장애인을 생각할 때, 모두 지능이 낮은 것으로 오해한다. 이창동 감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홍경래가 장군이 아니라는, 뜻이야 어쨌든간에 반역자인 것을 아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라면, 그는 지능에 그다지 문제가 없는 전자의 경우라고 짐작하게 한다. 또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 점원이 두 장애인 주인공을 부드럽게 내쫓기 위해 "점심시간이 끝났다"라고 했을 때, 제대로 시내에 한번 나와보지 못한 여주인공 '공주'가 그 말이 '장애인은 나가라'라는 뜻이란 걸 금방 파악하고, 남주인공 '종두'에게 "그냥 나가자"라고 말한 것을 보아도 그렇다. 하지만 그런 똑똑한(?) '공주'가 영화 속에선 바보가 되었다. 자기 아버지를 치어 죽인, 어찌보면 공주에게서 사랑하는 아버지를 뺏어간 원수인 종두. 그런 사람이 집엘 찾아왔다. 어찌 지내는지 궁긍했다면서…. 그렇게 두 사람은 만나게 된다. 며칠 후 종두는 늘 집에만 있는 공주에게 호감을 갖고 꽃을 보낸다. 이 장면까지는 공주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치어죽인 사람이지만, 많이 미안해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또 며칠 후, 종두는 공주의 집을 찾아간다. 두 번째 만남이다. 그런데 이 만남에서 종두는 "네가 얼마나 이쁜 줄 아나?"라고 하면서 공주를 더듬는다. 공주의 의지는 전혀 무시한 채, 떨며 자지러지는 공주의 젖가슴을 무참하게 만지고, 급기야 자신의 바지까지 벗는다. 그런데 감독은 이 후의 장면에서 주인공 공주가 이 남자 종두를 아무렇지도 않게 집으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설정했다. 외로움을 느끼던 공주가 종두에게 전화를 걸어 할 말이 있다며 집으로 오게 한다. 게다가 전화를 받고 집으로 찾아온 종두를 향한 공주의 첫마디가 "편하게 앉으세요"이다. 아무리 외로워도, 아무리 넘쳐오르는 성욕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해도,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을 강간하려고까지 한 사람에게 그렇게 대처하는 사람은 없다.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바보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감독은 그렇게 설정했다. 그뿐인가…. 영화의 절정에서 공주는 종두를 사랑하게 되어 함께 성관계를 갖게 된다. 성관계 중에 공주오빠 부부가 집으로 들렀는데 이때 종두를 강간범으로 오인해서 경찰서에 신고하게 되고, 종두는 감옥을 가게 된다. 경찰서에서 피해자 진술을 위해 같이 간 공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감옥에 간다는 생각에 흥분을 하게 되고, 제대로 말을 못해(이것은 뇌성마비 장애인들의 특성 중에 하나이다) 진술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경찰조사관은 보호자의 말에 따라 진술서를 썼고, 공주는 너무나 괴로워한다. 그리고 종두는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공주같이 지능에 그다지 이상이 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라면, 흥분을 가라앉힌 그 다음날에라도 경찰서에 전화를 하여 강간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도 하기 힘들었다면, 마음이 완전히 진정된 며칠 후에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가 장애인강간(특수강간)의 죄목으로 감옥살이를 한다는데, 게다가 전과3범이라 가중처벌까지 되어 오랜 기간 감옥살이를 해야할 상황인데, 끝까지 아무 말 하지 않고 출소할 날을 기다리며 사는 공주의 모습…, 너무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나는 문득 이 영화가 공상과학영화가 아닐까, 코미디영화가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분명 영화는 중증장애인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공주의 오빠 내외가 공주의 명의로 시에서 장애인에게 싸게 임대하는 아파트를 분양받아 편법으로 사는 모습이며, 음식점 점원이 온몸을 뒤트는 중증의 장애인을 보고 내쫓는 모습이며, 경찰관이 '저런 여자한테 성욕이 느껴지냐'고 말하며 종두를 변태취급하는 모습 등…. 이 영화는 분명 공상과학영화도, 코미디 영화도 아니라는 것을 몇 번이고 상기시켜준다. 그럼에도 이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는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뇌성마비', 즉 '바보'로 나온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주나 종두는 관객들 입장에서는 쉽게 자신과 동일화가 되지는 않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관객들이 두 인물 속에서 자신과 본질적으로 같은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만족합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이창동 감독은 우리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안고 주인공을 만들었고, 그 편견덩어리인 여주인공을 통해, 곧 한국인이 보편적 편견으로 생각하는 뇌성마비 장애인의 설정을 통해, 장애인영화임에도 흥행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인, 부끄러운 '동일화'를 형성케 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또 하나…. 영화를 보는 동안 너무도 가슴아프고, 화가 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종두가 갑작스레 공주의 집에 들어와 공주를 강간하려고 하는 장면에서 같이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웃었다. 종두가 몸을 비트는 공주의 발에 키스할 때, 공주의 옷을 풀어헤쳐 가슴을 만질 때, 공주의 얼굴을 더듬을 때, 관객은 웃었다. 과연, 저 여주인공이 뇌성마비장애인이 아니라 비장애여성이었어도 관객이 웃었을까. 분명, '죽일 X'하며 속으로 욕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관객은 큰 소리로 웃었다. 마치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이…. 나는 눈물이 났다. 조용한 영화관이 떠나갈 만큼 큰 소리로 "왜들 웃어?"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심정을 중증장애를 가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부디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부탁하고 싶다. 중증장애인은, 아니 우리 장애인들은 바보가 아니다. 우리도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렇기에, 적어도 나는 이런 사랑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결코 순수하지도, 결코 아름답지도 않은 허울좋은 편견덩어리의 사랑은 말이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영화는 영화일 뿐이야, 일일이 따지면서 어떻게 영화를 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송정문 경남여성장애인연대 회장
ⓒ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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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다만 이 영화가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현실의 편견과 장벽을 뛰어넘어선 뭉클한 사랑' 등의 찬사를 받을 만한, 그런 제대로 된 작품성은 갖추진 못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 땅의 여성장애인들은 소수자이다. 그냥 소수자가 아닌 이 사회에서 소외받고, 무시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고 그냥 웃어넘길 수가 없다. 아무 말 하지 못해서, 영화에서조차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우리 삶을 바보같은 아름다움으로 포장되는 것에 대해 작은 비명이나마 지르고 싶다.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www.dominilbo.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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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기사제휴 협약에 따라 경남도민일보가 제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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