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기훈 수원 삼성 감독

염기훈 수원 삼성 감독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염기훈 감독이 결국 수원 삼성의 사령탑에서 자진사임했다. 염기훈 감독이 지휘했던 프로축구 K리그 수원 삼성은 지난 25일 서울 이랜드전에서 1-3으로 역전패하며 5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수원은 6승 1무 7패, 승점 19점으로 6위에 머물렀다. 다이렉트 승격이 가능한 1위 안양(승점 27)이 아직 2경기나 덜 치른 상황에서 승점은 8점차, 최대 14점까지도 벌어질 수 있다.
 
염기훈 감독은 이날 패배 직후 팀 성적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고, 이 소식을 곧바로 팬들에게도 전했다. 팀의 부진에 크게 격앙되었던 수원 팬들은 염 감독이 직접 사임 소식을 전하자 일순간 숙연해졌다.

염기훈 감독은 팬들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팬들에게 죄송하다. 2010년 수원 와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웃으면서 떠날 수 있었어야 했는데 마지막에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게 되어 너무 죄송스럽다. 이젠 뒤에서 수원과 팬분들을 응원하겠다. 이제는 제가 모든 책임을 지고 떠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작별인사를 전하면서 울컥한 듯 목이 메인 염기훈 감독은 "그동안 감사했고, 죄송했다. 수원에 있으면서 행복했다. 다음에 또 인사드리겠다"라는 소감을 남기고 돌아섰다. 수원 팬들은 떠나는 염기훈 감독을 위하여 응원가를 불러주며 마지막 예우를 표시했다.
 
염기훈 감독은 2006년 전북 현대에서 프로에 데뷔하여 울산 현대를 거쳐 2010년부터 수원 삼성에 입단하여 은퇴하던 2023년까지 활약했다. 수원에서만 총 14시즌을 활약하며 416경기 출전, 71골, 12개 도움으로 구단의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고, 주장 역시 최다인 7시즌을 역임했다. 수원에서 3회의 FA컵 우승과 리그 베스트11, 2회의 도움왕 등을 통해 수원을 대표하는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 멤버로 활약하는 등 A매치 57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기록했다. 전성기에는 날카로운 킥과 크로스 능력을 앞세워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처럼 염기훈 감독은 누구보다 수원을 사랑했고, 수원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사랑받지 못하고 초라한 모양새로 팀을 떠나게 됐다. 올해 1월 정식 감독으로 선임된지 불과 5개월, 지난해 감독대행 기간까지 합쳐도 1년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축구계에서는 염기훈 감독의 실패가 어쩌면 '예고된 비극'이었다고 평가한다. 염기훈 감독이 대행을 거쳐 정식 감독으로 선임될 때부터 많은 팬들은 우려의 시각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염 감독의 부진과 조기 사퇴는 그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 것에 가까웠다.

염기훈호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까. 일단 첫 번째 책임은 역시 감독 본인에게 있어 보인다. 염기훈 감독은 지도자로서는 경험이 일천한 초보 감독에 불과했다. 은퇴를 앞둔 지난 2023년부터 플레잉코치로 지도자 수업을 받기 시작한 염 감독은 6월부터 프로 감독을 맡을 수 있는 P급 라이센스를 태국에서 수강했다.
 
염 감독은 수원이 강등위기에 몰린 지난해 9월 26일, 감독대행을 맡아 지도자 데뷔무대를 치르게 됐다. 수원은 염기훈 체제로 치른 7경기에서 3승 2무 2패로 나름 선방했지만 끝내 강등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원은 염기훈 감독을 아예 정식 감독으로 선임하며 첫해 1부 리그 승격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겼다. 하나같이 경험없는 초보 감독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미션들이었다.
 
어쩌면 염기훈 감독은 선수와 지도자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가 지나친 욕심을 부린 측면이 있다. 염 감독은 이미 2, 3년 전부터 선수로서는 기량 면에서 뚜렷한 하락세를 드러냈으나, 현역 생활에 대한 미련으로 은퇴 시기를 놓쳤다. 구단으로서도 수원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염기훈에게 함부로 은퇴를 종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염 감독이 미래의 감독을 염두에 두었다면 현역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차라리 좀 더 일찍 차근차근 지도자 수업을 받는 길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수원이 침몰하던 상황에서 감독대행과 정식감독 자리를 연이어 받아들인 것은, 염 감독으로서는 팀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능력과 구단의 상황을 모두 현실적으로 판단하지 못한 자충수였다. 이 과정에서 염 감독은 전임 감독을 몰아냈다는 루머에 휩싸이는가 하면, 팀의 강등과 성적부진에 대한 책임까지 뒤집어쓰게 되었다.
 
하지만 염기훈 감독보다 더 큰 책임은, 결국 수원 구단의 운영에 있다. 수원은 2010년대 제일기획으로 운영주체가 이관된 이후, 전성기의 명성을 잃고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여왔다. 이미 2022 시즌에는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내려갔다가 구사일생하는 위기를 겪었음에도 교훈을 얻지 못했고, 결국 이듬해인 2023년에는 구단 역사상 첫 2부 강등의 수모를 당했다.
 
특히 수원은 지난해만 감독이 두 명(이병근-김병수)이나 연이어 경질되는 혼란을 겪었고, 리그 마지막 7경기를 남겨놓고 지도자 경험이 일천한 염기훈을 감독대행으로 앉히는 파행을 이어갔다. 또한 2부에서 맞이하게 된 올 시즌에는 팬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염기훈 감독의 정식 선임을 강행헸다.

이는 결국 '감독의 자질'이나 구단의 근본적인 '혁신'보다는, 수원 팬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는 염기훈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것에 불과해 보인다. 지금까지 윤성효-서정원-박건하-이병근 등 수원 출신 레전드들을 감독으로서 선임했던 '리얼 블루' 정책이 줄줄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그만큼 초보 감독으로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 염기훈 감독을 잘 보좌하는 것이 구단의 의무였지만, 수원 프런트는 이번에도 염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는 동안 이를 수수방관 했다.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든 감독을 보호하고 팬들을 다독이거나, 적극적으로 추가 전력을 보강하려는 절실함 등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염 감독은 성적에 대한 부담과 팬들의 압박 사이에서 혼자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수원 팬들 역시 이번 사태에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껴야한다. 이미 지난해 강등으로 잔뜩 독이 올라있던 수원 팬심은 팀이 2부 리그에서도 압도하지 못하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물론 5연패는 어떤 구단이라도 해도 용납하기 어려운 결과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염기훈 감독은 불과 한 달 전여만 해도 '4월 무패' 행진을 기록하며 이달의 감독상까지 수상할만큼 지도자로서도 가능성을 보여주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5월들어 팀이 조금씩 부진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자 수원 팬들은 초보 감독의 시행착오를 전혀 기다려주지 않았다. 수원의 현재 순위는 6위지만 1, 2경기만 연승해도 최대 2위까지 올라올 수 있는 상황이다.
 
이미 2, 3연패를 기록하던 시기부터 수원 팬들은 홈에서 '염기훈 나가'를 외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K리그 팬덤 문화의 고질적인 병폐가 된 '선수단 버스 가로막기'를 통해 염기훈 감독을 불러내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고 사퇴를 종용하기도 했다.

감독은 팬들의 화풀이를 위한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의 집단행동에 감독이 반드시 응해야할 의무도 없다. 앞으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떤 베테랑 감독이 온다고 해도 소신있게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때 K리그를 호령하던 수원이 몰락한 것은, 하루 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또한 염기훈이나 역대 사령탑들만의 책임도 아니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수원 구단과 팬들부터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어떤 명장인 온다고 한들 수원의 구세주가 되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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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훈사퇴 수원삼성 리얼블루 K리그2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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