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인기와 최악의 성적 사이에서 방황하던 한화 이글스가, '검은 독수리' 요나단 페라자의 원맨쇼에 힘입어 모처럼 홈팬들 앞에서 체면을 세웠다. 5월 10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키움과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홈 경기'에서 페라자의 짜릿한 끝내기 홈런을 앞세워 5-4로 역전승했다.
 
전날까지 최하위 롯데 자이언츠와 승차 없이 9위를 달리던 한화는, 3연패 늪에서 탈출하면서 15승 23패를 기록하며 키움과 공동 8위로 올라섰다. 키움은 7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한화는 2회말 키움 선발 하영민을 상대로 1사 1, 2루 찬스에서 정은원의 우전 적시타와 연속 폭투, 야수선택으로 먼저 3점을 뽑아냈다. 하지만 3-4회와 6회 득점권에서 연이어 후속타 불발로 찬스가 무산되며 점수차를 벌릴 기회를 놓쳤다.
 
5회까지 한화 선발 산체스에게 2안타 무득점으로 꽁꽁 묶여있던 키움은 6회부터 반격에 나섰다. 2사 후 로니 도슨, 김혜성, 이주형이 3연속 안타를 터뜨리며 한 점을 만회했다. 이어 7회에는 무사 2, 3루에서 김재현의 2타점 적시타로 기어코 동점을 만들며 산체스를 강판시켰다. 구원등판한 한화 이민우는 다시 키움 대타 이용규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3-4로 역전당했다.
 
이 과정에서 페라자는 하마터면 이날 경기의 역적이 될뻔했다. 7회 3-3 동점상황에서 우익수인 페라자가 잡을 수 있었던 임지열의 타구를 놓치는 포구실책을 저지르며 1사 1루가 되어야할 상황이 무사 1, 2루로 돌변했다. 이후 산체스의 강판과 역전 허용으로 이어지는 빌미가 됐다.
 
하지만 페라자는 타석에서의 연이은 활약으로 자신이 저지른 수비 실수를 만회하며 결자해지에 나섰다. 8회말 공격에서 페라자는 키움 김재웅을 상대로 좌전 안타로 출루했고, 폭투로 2루 진루에 성공한데 이어, 이후 문현빈의 우전 적시타 때 홈을 밟으며 4-4 동점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피날레는 연장 10회말이었다. 선두타자로 다시 타석에 들어선 페라자는 김동혁의 4구째 한가운데 높은 직구를 받아쳐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굿바이 홈런으로 극적인 승리를 완성했다. 페라자의 KBO리그 첫 끝내기 홈런이기도 했다.
 
또한 페라자는 시즌 12번째 홈런으로 최정- 한유섬(이상 SSG) 김도영(KIA) 강백호(KT·이상 11개) 등을 제치고 홈런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이날 페라자는 끝내기 홈런을 포함해 5타수 3안타 1볼넷 1타점 2득점으로 맹활약했다.
 
올시즌 한화의 새로운 외국인 타자로 영입된 페라자는 시즌 초반부터 맹활약을 이어가면서 팀의 최대 복덩이로 자리 잡았다. 한화는 몇 년간 나름 준수했던 외국인 투수에 비하여 외국인 타자 영입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특히 지난 2023시즌 브라이언 오그레디( 타율 0.125 OPS.337 8타점, 홈런 0개)와 닉 윌리엄스는(타율 .244 OPS .678 9홈런 45타점)는 연이어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한화 팬들의 악몽이 되고말았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페라자 역시 영입 당시만 해도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지난해까지 마이너리그에서 7시즌을 뛰며 533경기에서 타율 .272(1988타수 540안타), 67홈런, 292타점을 기록했지만 끝내 빅리그에는 오르지 못했다. 외국인 타자치고는 작은 체구에 수비력에도 의문부호가 붙었다.
 
하지만 한화는 페라자의 빠른 배트 스피드와 파워, 열정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강점으로 꼽으며 성공을 자신했다. 결과적으로 한화의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페라자는 11일 현재까지 타율 .320에 12개 홈런과 1.031의 OPS를 기록하며 리그를 맹폭하고 있다. 홈런과 OPS는 리그 1위다. 일각에선 벌써 페라자를 2018년 한화의 마지막 가을 야구를 이끌었던 제러드 호잉이나 2년연속 30홈런-100타점을 돌파했던 윌린 로사리오와 비교할 정도로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비록 미국에서도 약점으로 지목받았던 수비는 이날 키움전처럼 종종 뼈아픈 실수로 불안한 모습도 있지만, 공격에서의 압도적인 생산력으로 이를 충분히 만회하고 있다. 팀타율(.252) 꼴찌의 빈공에 허덕이고 있는 한화 타선에 그나마 숨통을 트여주는 것도 페라자의 지분이 크다.
 
한화는 개막 3월 한 달 7승 1패의 성적으로 잠시 단독 선두까지 등극하며 돌풍을 일으켰으나, 4월 들어 5승 17패 승률.227이라는 충격적인 '역주행'을 거듭하며 리그 최하위권까지 추락했다.
 
한화는 이번주 하위권팀인 롯데-키움과의 6연전이 꼴찌 추락과 중위권 반등 사이에서 중요한 기로였다. 하지만 한화는 롯데와의 주중 3연전에서도 우천취소 1경기를 제외하고 에이스 류현진과 페냐가 연달아 무너지며 연패를 당했다. 여기에 9일 경기에서는 투수 장지수의 벌투 의혹과 2군행 논란까지 겹치며 안팎으로 분위기가 최악까지 치달았다. 사령탑 최원호 감독에 대한 비판 여론도 크게 고조됐다. 만일 이날 키움전마저 또 패배했더라면 상황이 심각해질수 있었다.
 
부진한 팀성적에도 불구하고 한화 팬들이 변함없이 성원을 보내주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날 키움과의 홈경기에서 대전이글스파크는 또다시 매진을 기록했다. 한화는 시즌 18번째 홈경기에서 17번째 만원 관중을 기록했고, 지난 시즌부터 이어온 KBO리그 홈 경기 연속 매진 신기록도 17경기로 늘렸다. 프로스포츠에서 성적이 좋지않으면 팬심도 식기 마련인데, 야구계에서도 '보살'로 불리우는 한화 팬들의 남다른 야구사랑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이날 경기에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KT와의 홈개막전에 이어 다시 한번 야구장을 찾았다. 한화는 김 회장이 올시즌 방문한 두 번의 경기에서 모두 끝내기 승리를 거두는 기분좋은 징크스를 이어갔다.
 
다행히 이날 값진 끝내기 승리로 대전이글스파크에도 모처럼 매진을 기념하는 축제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었다. 한화로서는 다시 한번 하위권탈출을 위한 분위기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수 있을 전망이다.

모처럼 미소를 되찾은 최원호 한화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집중력 있게 최선을 다해줬다. 누구 한명보다도 모든 선수들을 칭찬해주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다.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 페라자도 "실책을 하고 나서 팀원들에게 미안했는데 주눅들지 않고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며 "회장님이 야구장에 오신 것은 알고 있었다. 우리 선수들은 (그와 별개로) 언제나 항상 100%로 열심히 야구하고 있다"고 선전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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