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한국대표팀
대한축구협회
2018년 신임 감독 선임을 앞두고 김판곤 전 기술위원장은 수비 중심의 수동적인 축구(RE-Active)가 아닌 스스로 경기를 컨트롤하고 지배할 수 있는, 이른 바 능동적인 축구(PRO-Active)를 선호하는 지도자를 물색했다. 감독 발표 기자회견에서는 당초 이름값 있는 명장들이 아닌 차순위에 있는 벤투 감독을 선임한 배경과 이유, 방향성, 비전을 상세하게 설명한 것이다. 이처럼 투명한 프로세스는 큰 호평을 이끌어냈다.
벤투호는 첫 시험대인 2019 아시안컵에서 8강 탈락에 머물렀다. 후방 빌드업을 추구하는 방향성만 제시했을 뿐 전체적으로 지루하고 답답한 경기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거치면서 전술적 완성도를 높여나가기 시작했다. 2차예선 5승 1무(22득점 1실점), 최종예선에서는 7승 2무 1패(13득점 3실점)의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특히 11년 동안 이어진 이란전 무승 징크스를 깼을 뿐만 아니라 최종예선 2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본선행을 조기 확정지을만큼 안정적인 레이스를 선보였다. 조마조마하며 지켜봐야 했던 2014, 2018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때와는 대조적인 성적이었다.탄탄한 조직력을 구축한 벤투호는 결국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과 한조에 속한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서 1승 1무 1패의 성적으로 16강에 올랐다.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 통계 기준으로 한국은 상대 진영에서의 점유율 부문 33%를 기록했는데, 이는 32개국 가운데 4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독일, 캐나다, 브라질 다음 순위였다. 그만큼 주도적인 공격을 펼쳤다는 방증이다.
선수 선발에 대한 고집, 후방 빌드업 전술로는 월드컵 무대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일각에서의 비판을 잠재운 것이다. 이러한 방향성과 벤투 감독의 훈련 방식에 대해 선수들은 큰 만족감을 보였으며, 서로 간의 믿음이 확고했기에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이미 한계 드러낸 클린스만호
카타르 월드컵 성공 이후 마이클 뮐러 신임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은 벤투 감독의 축구를 이어갈 수 있는 인물을 데려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위르겐 클린스만을 선임했다. 벤투 감독과는 전혀 상반된 축구를 구사하는 클린스만의 선임에 모두가 의문을 제기했다.
선수 경력은 화려하지만 근무 태도, 전술 부재 등 감독으로서 역량에 대한 악평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협회 고위층이 절차를 무시하고 클린스만 감독을 낙점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강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초 기자회견에서 공격 축구와 아시안컵 우승을 목표로 삼으며 논란이 된 상주문제와 관련해 국내에 머무르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듯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K리그 현장을 찾는 대신 유럽파 점검이라는 이유로 해외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재택근무 방식을 선호했다. 이미 검증된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을 보러가겠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번 2023 아시안컵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쿼드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4강에서 요르단에 패하며 호언장담한 우승에는 실패했다. 결과도 결과지만 경기 내용이 최악이었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우승을 논하는 것부터 잘못된 생각이었다.
선수 선발부터 문제가 많았다. 박용우, 이기제, 정승현 등 벤투호 체제에서 외면받은 얼굴들이 클린스만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이들 모두 대회 내내 부진을 면치 못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9월 인터뷰에서 벤투 감독의 스타일을 답습하면 발전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벤투의 유산을 완전히 지워버린 채 정작 무색무취 축구로 일관하고 말았다. 넓은 공수 간격, 디테일한 전술 부재의 문제점을 노출하고도 이렇다 할 개선 없이 포메이션만 바꿀 뿐 어느 하나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또, 개인 능력에 의존하는 자유 방임 축구로는 아시아 무대에서조차 통하지 않았다.
대회 운영 능력도 낙제점이었다. 패하더라도 16강에 오를 수 있는 말레이시아와의 3차전에서 로테이션을 돌리지 않고 주전들을 풀가동한 여파는 토너먼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16강, 8강에서 모두 연장전 혈투를 벌이며 체력을 소진한 한국은 결국 4강 요르단전에서 맥없이 패했다.
6경기 10실점은 아시안컵 역대 두번째로 높은 실점률이다. 매 경기 실점하다보니 1경기라도 편하게 가는 법이 없었다. 조별리그에서조차 종료직전까지 120% 이상의 힘을 쏟아야 했다.
공격 역시 시원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11득점 가운데 오픈 플레이로 넣은 장면 고작 4골에 불과했다. 대부분 페널티킥, 프리킥, 자책골에 편중됐다. 손흥민과 이강인의 개인 능력에 의한 득점에 의존한 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