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정숙한 세일즈> 관련 이미지.
JTBC
드라마는 1992년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32세의 초등 1학년 아들을 둔 정숙(김소연)은 돈이 궁하다. 남편이 직장 생활을 진득하니 하지 못해 수입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경리를 구하는 작은 회사에 면접을 보지만 유부녀라고 퇴짜를 맞는다. 정숙의 말대로 "경리랑 유부녀랑 무슨 상관이겠는가"마는, 지금도 그때도 노동시장은 성 불평등했다. 경제적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고심하던 정숙이 눈이 번쩍 뜨이는 아이템을 찾았으니 바로 성인 용품 방문판매였다.
성인용품 방판을 접할 기회가 있다면 요것조것 구경하고 재미있겠지만, 이는 지금의 성에 개방적인 여성의 호기심일 테고, 90년대 여성, 그것도 젊은 여성이 성을 입에 담거나 관심을 기울이면, 즉시 정숙하지 못한 발라당 까진 여자로 낙인 당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랬다. 당시 성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법은 미용실에서 '레이디 경향' 등의 잡지를 통해 얻는 게 고작일 정도로 성에 대한 담론이 척박했고 터부시되었다. 이런 사정이었으니 대도시도 아니고 지역 작은 마을에 성인용품 방판이 등장했으니 마을이 발칵 뒤집힐 일이 아니겠는가.
드라마의 시간적 배경인 1992년에 나는 20대 후반이었다. 당시 나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친구들이 결혼한 상태였고 아이를 낳은 친구도 있었다. 결혼하면 성생활이야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당시 내가 미혼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조차 마치 들으면 안 되는 비사라도 되듯 성 생활에 대해 함구했다. 참 답답한 시절이었다.
가부장의 주술이 상당히 강력했던 시절, 마치 삿된 마법의 봉인을 찢고 나오기라도 한 듯, 여자들이 성인 용품을 내보이고 설명하는 장면들에서 나는 여러 번 포복절도했다. 모두 기혼인 마을 여자들이 성인 용품을 보고 아예 그 용도를 모르거나 화들짝 놀라거나 하는 장면이 매우 리얼하고 익살스러웠기 때문이다. 신문물에 호기심이 발동하는 건 자연스러운 욕구지만, 마을 유지의 부인은 음란한 도구를 판다고 경찰에 신고까지 한다.
정숙은 사면초가다. 남편의 외도 행각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정숙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성인 용품이나 파는 "역겨운" 짓을 해 남편이 나갔다고 입방아를 찧고, 의지하던 엄마마저 "더럽다"며 딸을 비난한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먹고 살길이 막막해 성인 용품을 판 것 뿐인데 혐오의 화살이 빗발친다. 자본이나 기술, 학벌 등이 없는 정숙은 무엇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런 것이 있기는 한 건가.
정숙이 직면한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