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란> 스틸컷
넷플릭스
한국 사극의 지향점은 크게 두 방향이 있다. 사료로부터 신선한 사건이나 인물을 찾아내는 게 하나다. 관심이 크지 않은 고구려 초기를 재구성해 낸 <우씨왕후>가 대표적이다. 다른 하나는 기존에 잘 알려진 사건이나 인물을 재해석하는 방법이다. 한때 수많은 버전의 장희빈이 등장했던 것처럼. 근래에는 여말선초를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의 시점에서 제각기 관조하는 작품이 많았다.
임진왜란 시기를 다룬 <전,란>은 후자다. 사실 임진왜란을 다루는 방식은 정해져 있었다. 선조, 이순신, 류성룡, 광해군처럼 유명한 인물의 시점에서 전쟁을 조명하거나 잘 알려진 전투와 사건을 제각기 영상화하는 경우가 잦았다. <전,란>은 다르다. 임진왜란을 철저히 배경으로만 삼으면서 기존 접근법과는 다소 다른 길을 선택했다. 임진왜란 그 자체보다는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전,란>은 전쟁 전후로 변화한 사회상을 민속적이면서도 해학적인 추임새로써 공들여 표현한다. 이를 토대로 격랑을 헤쳐 나가야 했던 두 주인공의 감정선에 집중한다. 그 덕분에 <전,란>은 신선하게 일정 수준 이상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성공했다. 단지 짜임새가 '전쟁'과 '반란'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더 다듬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전쟁은 곧 기회
<전,란>은 오프닝에서부터 '정여립의 난'을 묘사하며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한다. 붕당의 갈등과 선조의 권력욕이 유발한 정쟁 정도로만 치부되던 사건이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력에 주목한다. 정여립은 '대동(大同)'이라는 기치를 내세우며 왕통이 아니어도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란>의 오프닝은 그의 사상이 선조와 조선 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을 줬는지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그 이후의 전개 역시 대동의 기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임진왜란의 묘사가 대표적이다. 백성들이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과 광화문, 육조거리가 불태우는 시퀀스가 전투 장면보다 큰 스케일로 공들여 연출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전,란>은 사회적 혼란을 개인 차원의 이야기로 치환해 대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묻는다. 천영은 면천되어서 본래 신분을 되찾으려 하고, 종려는 그런 천영에게 신분을 넘어서는 마음을 준다. 왜군의 침입은 이 우정을 어그러뜨리고, 두 친우는 갈라선 채로 자기가 믿는 가치와 신념을 위해 검을 든다.
두 주인공의 서사는 캐릭터가 강렬히 대조된 덕분에 특히 인상적이다. 플래시백 기법을 활용해 같은 사건도 서로 다른 시점에서 조명해 캐릭터성을 구축하는 게 대표적이다. 푸른 철릭을 입은 천영과 붉은 단령을 입은 종려를 대비시키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천영이 왜군을 벨 때, 종려는 임금을 호종하며 도리어 백성을 벤다. 이 장면은 시각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확실한 대비를 이루며 경복궁 화재만큼이나 뇌리에 각인된다.
해학 가득한 사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