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 공식 기자회견
부산국제영화제
- 감독님, 간단한 인사 말씀과 작품 설명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일본에서 온 구로사와 기요시라고 합니다. 저는 40년 넘게 영화 제작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베테랑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요. 하지만 아직도 영화가 끝나고 나서 다음에는 어떤 영화를 찍어야 할지 고민할 정도로 저만의 테마나 스타일이 정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가진 인식이 조금은 다를 수도 있겠네요.
올해로 69살이 되었습니다. 2024년 한 해에만 두 편 작품을 완성해서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하게 되었는데요. 한 편은 프랑스 작품, 또 한 편은 일본 작품입니다. 두 작품 모두 전형적인 장르영화이면서 어떤 의미로는 B급 영화네요. 한 해에 두 편을 촬영하는 69세 감독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 제가 조금은 다른 감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프랑스 작품이라고 말씀드렸던 영화는 작년 봄에 촬영한 <뱀의 길>입니다. 25년 전, 제가 일본에서 촬영했던 영화이기도 한데 당시에는 야쿠자가 등장하는 저예산 작품이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셀프 리메이크라는 형태로 특별한 작업을 하게 된 셈인데요. 사실 제 의사로 시작된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5년 전쯤, 프랑스의 한 프로덕션에서 제 작품들 가운데 다시 찍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일지 문의를 했었고,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주저 없이 직감적으로 떠올랐던 작품이 바로 이 영화 <뱀의 길>이었습니다.
왜 이 작품이 떠올랐을까 고민을 해보면 원작의 각본을 쓰신 타카하시 히로시 감독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영화 <링>의 각본을 쓰신 것으로도 유명한 분인데요. 각본 자체가 워낙 좋은 작품이었고 개성적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작품은 어떤 의미로 제 작품이라기보다 타카하시 히로시 감독의 성향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 많은 작품 가운데 유독 이 영화만큼은 제 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어쩌면 그런 마음이 이번에 다시 제 작품으로 바꿔야겠다는 욕망으로 발현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 다른 작품은 <클라우드>입니다. 작년 11월부터 12월에까지 겨울에 걸쳐 제작한 작품인데요. 4-5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각본이었습니다. 이 작품의 계기는 일본에서 본격적인 액션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일본에도 액션을 다룬 장르 영화가 물론 있습니다만 대체로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커서 판타지로 여겨지는 작품 혹은 등장인물이 야쿠자, 경찰, 살인을 한 사람과 같이 평상시에도 폭력과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영화를 찍고 싶었어요. 일상에서 폭력과 연관이 전혀 없는 일반인이 결과적으로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그런 극한적인 관계가 그려지는 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이 작품을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습니다만 일본에서도 이런 영화에 투자하는 분들이 잘 없습니다. 게다가 코로나가 있었기 때문에 각본을 완성하고 난 뒤에도 몇 년이나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스다 마사키 배우의 출연이 결정되면서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죠.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본에서는 30대 배우 중에 인기로도 실력으로도 최고 수준의 배우입니다. 그런 배우의 출연이 결정되고 난 뒤에 감사하게도 투자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작품을 촬영할 수 있게 되었네요."
- 영화 <크라우드>에 대한 질문입니다. 어떤 시각에서는 감독님의 작품이 세상을 냉소적이고 차갑게 바라본다고도 이야기하지만 저는 사회와 공동체의 위험한 지점에 대해 근심하면서 이 부분을 작가적으로 세상에 전달하고자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어떤 반응이 있기를 기대하셨을까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거짓말이라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런 시선으로 영화를 그리려고 했던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액션 장르의 주인공 입장에서 본다면 영화 <클라우드>의 주인공이 어둡고 탁한 이미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는 했습니다. 다만 사회의 차갑고 날카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의도는 작품을 쓰는 동안에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 모든 영화의 첫 시작은 리얼리즘입니다. '현실은 이럴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영화를 출발시키고 싶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물론 이를 끝까지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리얼리즘이 마지막까지 잘 유지되면 정리된 흐름에 따라 마지막 스토리까지도 자연스럽게 완결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는 그런 흐름이 싫어서 리얼리즘에 약간의 비약적인 전개를 가미하고, 최종적으로는 영화의 세계에서만 그릴 수 있는 순간을 추가하고자 하는데, 그런 부분이 어떤 의미로는 말씀하신 것처럼 보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지금 하게 됩니다.
이번 영화 <클라우드>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우리 주변에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일반적인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현실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뭔가 알기 쉬운 액션을 넣어서 영화적인 요소를 더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요. 이 사람이 액션까지 가려면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또 액션을 하고 난 뒤에 마지막 결말은 어떻게 지어야 할지 그런 것들을 고민하면서 이번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누구나 알기 쉬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참 좋을 텐데 영화를 그리다 보면 대체로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여러분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