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손' 스틸 이미지
㈜인디스토리
명문가 장손의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그 후배가 떠오른 건, 추석 명절 연휴에 맞춰 개봉한 영화 <장손>을 보고서다. 영화는 3대 대가족이 모인 제삿날, 가업인 두부 공장과 관련해 청천벽력 선언을 한 장손(長孫)의 이야기를 담았다. '연극계의 대모' 손숙 배우(할머니 말녀 역)가 출연한다고 해 오래전부터 별렀던 작품이다.
영화를 함께 본 아들 녀석은 "저렇게 제사를 지내는 집은 적어도 저희 세대 이후론 단 한 곳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스물두 살인 아들은 '온갖 음식을 장만해 상다리 휘어지도록 제사상에 올리는' 모습은 다음 세대에서 더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당장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허례허식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제사가 유형문화재로 등재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아마도 아이의 예측대로 될 것이다. 그 어떤 가문이든 제사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내려온 관습적인 의례일 뿐이다. 조선 시대처럼 '주자가례'(주자가 유가의 예법 의장에 관해 상술한 책 - 기자 말)가 임금의 명령에 버금 가는 제도적 권위를 지닌 때라면 모를까, 어차피 제사는 후손들이 결정할 '선택'의 문제가 돼버린 까닭이다.
영화 속에서도 지극 정성으로 제사를 모시는 건 다 후손들 잘되라고 하는 거라는 대사가 나오지만, 이를 믿는 청년 세대는 없다. 제사라는 관습을 이용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기성세대의 얄팍한 술책이라며 눈 흘기는 이들도 있다. 이들의 '삐딱함'이 얄미울지언정 딱히 반박하기도 뭣하다.
솔직히 제사는 온 가족이 모여 조상의 음덕을 기린다는 것 말고는 다른 사회적인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본디 성리학적 명분론이 사회를 옥좼던 시절, 양반가마다 스스로 명문가임을 내세우기 위한 연례행사였다. 이것이 평민층의 신분 상승 욕구와 맞물려 시나브로 퍼졌고, 오늘날 반드시 계승해야 할 고유의 전통 풍습인 양 자리 잡은 것이다.
당장 우리 부부도 오래전부터 아이들 앞에서 유언 삼아 제사상을 차리지 말고, 무덤을 만들지도 말라고 당부한 터다. 어차피 무덤을 벌초하기도 녹록지 않을 뿐더러 타인의 손에 관리를 맡겨야 한다면 애초 멀쩡한 땅을 헐어 만들 이유도 없다. 지구상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게 맞다고 본다.
허전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