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엔터업계에서 작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들이 어떻게 변화를 일궈내고 흐름을 변화시켰는지, 또 K엔터테인먼트 산업 내에서 지속 가능한 변화와 혁신을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작은 거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편집자말]
 강유미는 '권위 없는 인류학자'를 내세워 여러 인물을 소화한다.

강유미는 '권위 없는 인류학자'를 내세워 여러 인물을 소화한다. ⓒ 강유미의 좋아서하는 채널 유튜브 갈무리


 
초등학교 시절 살았던 장미주택은 U자형 골목의 가운데에 있었다. 2층에는 동갑내기 친구가 있는 주인집이 살았고 옆집도 그 옆집도 다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있었다. 장미주택 골목에서 '숨바꼭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뛰어놀 때 동네 엄마들 대부분은 골목 초입의 장미미용실에 모여 있었다. 여름에 수박을 총총 썰어 사이다를 넣고 만든 화채의 맛과, 고사리·시금치 등 각종 나물에 밥을 비벼 먹는 감칠맛을 알려준 건 '장미(미용실) 이모'였다.
 
그 이모를 다시 떠올린 건 희극인 강유미의 유튜브(좋아서하는 채널) 덕분이었다. 그가 3년 전 올린 '동네미용실 RP(롤플레이)'에는 선글라스를 쓰고 연한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얇은 눈썹의 이모랑 똑 닮은 사람이 있었다. 350만 명이 넘게 본 이 영상의 댓글에는 '이모'와의 추억을 고백하는 댓글이 많다.

그리고 2024년 강유미의 이모 부캐가 다시 부활했다. 최근 크리에이터 겸 방송인 랄랄이 '집주인 아주머니'라는 부캐로 인기인데, 3년여 만에 강유미(이모 부캐)의 미용실에 방문하는 상황극을 연출한 것.

지난 11일 랄랄의 유튜브 콘텐츠 <휴먼다큐 "사람은 좋다" 미용실> 편은 올라온 지 20시간 만에 약 50만 조회수(12일 기준)를 기록했다. 이 영상에는 '미용실 이모' 강유미를 두고 "무슨 주제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동네 어른", "미용실 하는 우리 둘째 이모랑 똑같다" 등의 댓글이 달리는 등 반응이 뜨겁다.


악플적은 유튜버, 이유는...
 
 '남미새’(남자에 미친 새X의 줄임말) 빙의된 내 친구'

'남미새’(남자에 미친 새X의 줄임말) 빙의된 내 친구' ⓒ 강유미의 좋아서하는 채널. 유튜브 캡처

 
과거뿐 아닌 '현재'도 강유미의 주요 콘텐츠다. 최근 올라온 영상인 ▲중고 거래하러 온 초등학생과의 콩트가 담긴 '못 이기는 싸움' ▲'남미새'(남자에 미친 새X의 줄임말) 빙의된 내 친구' ▲비혼주의자의 애환이 담긴 '브라이덜 샤워' 등은 누군가 한 번씩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본 사연을 소재로 했다. 이렇듯 현실감 있는 상황과 캐릭터를 진짜처럼 그려낸 강유미의 유튜브 한줄 설명은 '권위 없는 인류학자'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만나는 사람과 그 사이에서 겪은 이야기를 토대로 400개 넘는 콘텐츠를 차곡차곡 쌓아온 강유미는 'K엔터의 작은 거인'이기에 충분하다.
 
다른 크리에이터와의 차이점도 뚜렷하다. 많은 희극인이 몰래 카메라 상황극으로 일반인의 반응을 보는 콘텐츠를 만들 때, 강유미는 주위의 인물들을 그려 나가는 인류학자의 역할에만 충실했다. 수십만의 구독자가 생기면 구독자의 애칭을 정하고, 질문을 받으며 소통하는 대부분의 유튜버와 달리 그는 "구독·좋아요 눌러주세요"라는 말 한마디 없이 129만 명의 구독을 받았다. 흔한 '악플'없이 응원과 공감의 선플이 이어지는 드문 경우이기도 한데, 댓글의 상당수가 그를 '언니'라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여성 팬층의 인기가 두텁다. 그 역시 여성들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을 주 소재로 삼으며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근처 카페에서 만난 강유미는 이날도 인터뷰 장소에 일찍 도착해 '사람관찰' 중이었다. 편한 바지에 모자를 쓰고 카페 한가운데 앉아 찬찬히 주위를 둘러본 그는 "오전에 집 치우고 반려견과 산책하고 왔다"고 말했다. 촬영이 없는 날, 그의 일상은 대부분 비슷하다. 책을 읽고, 뉴스를 훑어보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둘러보고, 드라마와 영화를 본다. 제일 집중해서 보는 건 그의 유튜브에 달린 댓글들이다.
 
"제 콘텐츠가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던 게 아니에요. 정말 어렵게 모인 사람들(웃음)이에요. 2017년, 처음 채널을 시작했는데 침체기가 1년을 넘었어요. 그래서 내가 방향을 잘못 잡았나 싶은데, 딱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만해야 하나 싶었는데, 당시 크리에이터 매니지먼트를 해주던 곳에서 의외로 재계약을 하자고 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그때 처음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는 백색소음) 상황극을 콘텐츠로 올렸는데, 그게 터졌어요. 그 때부턴 제가 뭘 하려고 하지 않아도 이상하게 잘 굴러갔어요."
 
지난 2022년 처음으로 구독자 100만 명을 달성한 강유미는 "콘텐츠 아이디어의 많은 부분을 구독자에게 빚졌다"고 표현했다. 싫은데 하는 메이크업샵의 콘텐츠를 찍었는데, 배우병 심하게 걸린 여자배우는 어떠냐는 댓글이 달리고, 여기에 이 여배우의 변덕을 영혼 없이 받아주는 스타일리스트의 아이디어가 추가되는 식이다. 사회 초년생 막내의 애환부터 눈은 웃지 않고 목으로만 웃으며 회식을 버텨내는 n년차 직장인의 삶도 댓글에 달린 각종 사연과 하소연을 통해 입체적으로 완성된다.
 
"제 콘텐츠에서 여러 인물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엮이는데, 이것도 지인의 추천과 댓글의 아이디어로 확장된 거예요. 최근 35살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나 화장품 회사에 취업한 무개념 사회 초년생, 집을 처음 구하는 신입생 브이로그도 비슷해요. 제가 모든 걸 경험한 건 아니니까 이런 상황에 놓인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려고 노력했어요. 공시생과 관련한 콘텐츠는 기나긴 수험생활을 하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으로 찍은 건데, 동시에 '내가 누굴 위로할 자격이 있나' 싶은 마음도 들고 그래요."
 
"서로를 오해하지 않기를"
  
 35살 공시생 Vlog중 한 장면

35살 공시생 Vlog중 한 장면 ⓒ 강유미의 좋아서하는 채널 유튜브 갈무리

 
다양한 직업군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강유미가 가장 신경 쓰는 건 종사자들이 '오해받지 않는 것'이다. 그는 업무지시를 거부하는 MZ 사회 초년생의 "제가요? 이 걸요? 왜요?"를 표현할 때도 "조롱이나 비하가 아닌 이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상황과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속내를 밝혔다. 자신 역시 지나온 혼란과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여러 일을 '강유미'라는 필터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제 표현이나 영상 때문에 상처받은 직군이 나오면 안 되잖아요. 제 영상을 통해 어떤 업종의 편견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이럴 수도 있겠네' 서로를 이해하기를 바라죠. 그런데 나도 모르고 주는 상처도 있잖아요. 그래서 항상 조심하고 또 공부해요."
 
두 시간여 이어진 인터뷰 내내 강유미는 신중히 말을 골랐고, 이를 천천히 표현했다. "다른 스케줄이 없어 서두를 거 없다"며 웃어 보였지만, 그보다는 콘텐츠에서도 일상에서도 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해함'을 드러내는 방식 같았다.
 
"전 온라인 커뮤니티도 정말 많이 보고, 사람들의 반응을 열심히 살피는 편이에요. 누군가를 웃기는 일을 업으로 삼았고, 제 개그에 보이는 관객의 반응에 희열을 느끼지만 재미를 위해 모든 걸 해도 된다는 생각은 안 해요. 재미가 제일 중요한 시대는 아닌 거 같아요.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고요. 유해한 콘텐츠가 너무나 많은 시대라 무해해지려고 노력해요."
 
그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 것도 계기가 됐다. 강유미는 "내가 받은 상처가 많아서 누군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개인적으로 마음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상처는 2004년 KBS 19기 공채로 데뷔한 이후 '고! 고! 예술 속으로', '사랑의 카운슬러', '분장실의 강선생님'으로 인기를 얻을 때도 상당했다.
 
"여전히 무대를 좋아하고, 어떤 분장이든 거부감이 없는 편이에요. 다만 그때는 사회적 분위기가 좀 달랐잖아요. 여성 비하가 너무 심했고 당연하기도 했고요. 배우들도 작가들도 여성을 향한 폭력적인 시선이 많았어요. 저처럼 예쁘지 않은 여성들에게 폭력적인 시간이었죠. 외모로 웃기는 건 무대 위뿐인데 말이죠. 문제는 주위의 시선대로 내가 나를 비하하고 폭력적으로 대했다는 거예요. 무대 위에서는 자신감 넘치게 캐릭터를 소화했지만, 실제로는 내내 상처받고 그랬어요."
 
혼자서 구상과 기획, 촬영과 편집까지 아우르던 그에게 5년 전 피디, 1년 전 작가들이 합류했다. "열 살 차이 나는 친구들에게 트렌드와 인기 요인 등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다"면서도 강유미는 앞으로 펼쳐갈 코미디에 '다정한 위로'를 빼놓지 않고 싶어 했다.
 
"사람 웃기는 건 도무지 질리지 않아요. 제가 데뷔한 지 20년 차인데도 그래요. 희극인들이 공개 무대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니까요. 그래서 스탠딩 무대도 여전히 꿈꾸죠. 가학적이지 않더라도 내가 나를 드러낼 수 있고, 우아하게 웃길 수 있을 때. 그런 나만의 콘텐츠를 갖고 언젠가 무대에 서고 싶어요."
 

그러면서 강유미는 자신의 주 구독자층인 여성들을 언급했다.
 
"예전에 제가 그랬듯이 내가 나를 가해하는 목소리의 굴레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많은 거 같아요. 특히 젊은 여성에게요. 물론 스스로를 혼내는 목소리 속에 사는 남성들도 많죠. 그런데 우리 세상에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한테 여러 조건과 소양, 덕목을 갖추라고 다들 강요하잖아요. 그럴 때 우리는 우리 곁에서 서로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사람, 다양한 직업과 상황에 놓인 여러 사람들을 이해하고 아껴주고 편들어주면 좋겠어요. 잠이 오지 않을 땐 나지막이 수다 떠는 느낌의 제 영상도 슬쩍 틀어놓으면서요.(웃음)"  
 
 눈은 웃지 않고 목으로만 웃으며 회식을 버텨내는 n년차 직장인의 삶을 표현한 강유미

눈은 웃지 않고 목으로만 웃으며 회식을 버텨내는 n년차 직장인의 삶을 표현한 강유미 ⓒ 강유미의 좋아서하는 채널 유튜브 갈무리

강유미 유튜브 K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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