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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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은 사제들>(2015)과 <사바하>(2019), 그리고 <파묘>로 명실공히 한국 오컬트 영화의 새 흐름을 만들고 있는 장재현 감독이 처음으로 천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 2월 22일 개봉한 <파묘>가 950만 명을 돌파했고, 사실상 3월 중 해당 수치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21일 서울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재현 감독은 "평생 이 시간이 또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고 있다"고 소회부터 전했다. 흥행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에 대한 부담도 털어놨다. "<파묘> 이후 제가 할 작품이 전작과 비교될 가능성이 크기에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진다"고 말했다.
"반일주의 결코 아냐, 친일에 대해선 경계"
이름난 풍수사와 장의사, 그리고 무당의 합심으로 한 무덤에 얽힌 오랜 저주를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 <파묘>에 왜 관객들이 크게 화답했을까. 분명한 것은 이전 그의 영화들이나 비슷한 소재의 대중영화에 비해 직선적이고 주제 의식 또한 선명하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항일 내지는 친일에 대한 감독 나름의 생각이 반영되며, 장르에 국한하지 않은 대중성이 담보됐다는 평도 있다.
"뭔가 메시지나 관객층을 대상으로 재밌게 만든다기보단 일단 제가 스스로 재밌는 걸 중심으로 작업한다. 물론 처음에 계획한 것들은 있다. 하지만 막상 촬영을 시작하면 그것들이 희미해진다. 장면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되거든. 그러다 완성된 영화를 보면 처음 기획 때가 생각난다. <파묘>는 꽤 오락적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안전한 길을 택하지 않고, 뭔가 새로운 걸 해보겠다는 생각도 했다.
배우들도 그렇고 영화에 항일이 담겼다고들 하시는데 장르적 재미가 더 중요했다. 95% 정도는 장르적 재미로 채우려고 했다. 파묘라는 소재 자체에 집중하려 했고, 무당 말고 또 뭐가 있나 살피니 결국 한이더라. 사실 쇠말뚝 묘사는 정말 고심했다. 우리 어렸을 때 교과서에도 나왔던 것 같은데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잖나. 우리 정기를 끊기 위한 일본의 쇠말뚝이 있었는지 말이다. 결국 직접적으로 나오면 안되겠다 판단하고 대체할 대상을 찾은 게 정령 사상이었다. 그만큼 쇠말뚝 묘사는 조심스러웠던 내용이다."
영화 후반부부터 강조된 한 집안의 친일 행적과 그에 얽힌 일본 귀신 묘사를 두고 장재현 감독은 반일 혹은 항일로 해석이 쏠리는 걸 경계하고 있었다. "저 또한 일본 영화나 문화에서 배운 것들이 많다"며 그는 "반일이라는 프레임이 있어서 그런데, 거기에 집중하기 보다는 피 묻은 우리나라 역사와 땅에 집중하려 한 것"이라 말했다.
한 국가를 배척하자는 건 아니겠지만 외려 우리 안에 깃든 패배주의나 친일 행적에선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이 질문에 장재현 감독은 "친일을 직접 비판한다기 보다는 우리의 역사를 들여다보려 했다"며 말을 이었다.
"이 땅의 상처, 앙금을 들여다보고 과거로 계속 가다 보면 해방 이후 딱 걸린다. (주요 인사들의 친일 행적들 때문에) 뭔가 우리나라의 고립과 정체가 시작된 게 아닌가 싶더라.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갑자기 침략한 그들에게 피해를 입고, 어떤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
이승만의 행적을 미화한 다큐 <건국전쟁>의 감독이 <파묘>를 두고 "좌파들이 몰려가서 보고 있다"고 말한 것에 장재현 감독은 "영화를 받아들이는 건 가지각색이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 감독은 "우리 영화에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다. 제가 그런 영화를 의도한 게 아니라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