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이미지.
영화사 진진
지난달 개봉한 영화 <나의 올드 오크(The Old Oak)>. 주인공이 일하는 펍(Pub) 이름으로, 직역하면 참나무 고목이라는 뜻이다. 마을 한가운데에 터줏대감처럼 우뚝한, 우리로 치면 당산나무 같은 존재다. 주민들의 쉼터이자 사교의 장이고, 마을의 하나뿐인 공공 공간이며 식당이다. 고목이 쓰러지면 마을도 사라질 것이다.
교사라서일까. 그곳이 내겐 자꾸만 학교의 모습과 포개졌다. 주인공 TJ(데이브 터너 분)와 야라(에블라 마리 분)는 교사 같았고, 그곳에 드나드는 주민들은 학생처럼 느껴졌다. '을'이 '을'을 혐오하고 반목하는 그곳을 끝내 화해와 포용의 공간으로 바꿔낸 두 주인공의 헌신적 모습은 내게 죽비였다.
장면마다 쏟아지는 주옥같은 대사를 기억하고 메모하느라 혼쭐이 났다. 워낙 전형적인 문구여서 계몽적이고 상투적인 느낌도 없진 않다. 대사는 달랐으나 전하려는 메시지는 일관됐다. 용기를 내어 서로 연대하고, 연대의 힘으로 끊임없이 저항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그 외엔 방법이 없다는 것.
엔딩 장면의 짙은 여운에 용기와 연대, 저항이라는 세 단어를 종일 곱씹게 된다. 그때마다 왠지 모를 힘이 솟구쳤다. 악전고투 속에 천군만마의 우군을 만난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해도 안 된다며 고개를 떨구기보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신발 끈을 동여맸다. '대천명(待天命)'하기 전에 '진인사(盡人事)'해야 한다는 사실을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다.
영화 속 TJ의 삶을 본보기 삼게 된다. 아버지의 사고사와 아내와의 이혼, 게다가 생명의 은인이자 분신과도 같았던 반려견 마라의 갑작스러운 죽음까지, 숱한 상처를 견뎌내며 그가 기꺼이 난민들의 기댈 언덕이 돼주는 모습은 자못 뭉클하다. 국가와 종교, 문화와 관습 등 그 어떤 굴레도 휴머니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잉글랜드 북부의 폐광된 소도시가 배경이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문제의식은 전 세계를 범주로 한다. 국가를 막론하고 지금 이 세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가치가 약자와의 연대에 기반한 휴머니즘이라는 사실을 명토 박고 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미안해요, 리키> 등 켄 로치 감독의 수많은 전작에서도 드러난 일관된 메시지다.
붕괴하는 공교육에 무력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