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 스몰 랜드> 스틸 이미지
미디어캐슬
그렇게 국내에는 생소하기 그지없지만 일본 내에선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인 쿠르드 난민 문제이지만 <마이 스몰 랜드>의 의미와 가치는 절대로 작지 않다. 다큐멘터리가 소재와 배경에 관심을 가진 관객을 찾는 방식이라면 로맨스/멜로물의 외피를 지닌 이 드라마는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던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보편성 측면에서 강점이 뚜렷한 작업이다. 복잡한 국제정세에 넌더리를 내며 질색하다가도 기본적으로 청춘 성장영화 구조를 갖춘 영화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시민의 상식선에서 색안경 없이 해당 사안을 관조할 수 있게 해준다.
영화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국제정치적 고려 없이 가족애와 시민의 연대로 해당 사안을 바라보도록 돕는다. 화면 속 쿠르드 난민 가족은 피부색과 외모는 다를지언정 속내는 일본의 평범한 이웃들과 다를 바 없다. 난민신청 불승인 선고를 받고 낙담한 가족은 기운을 낼 겸 라멘 집을 찾는다. '최후의 만찬'처럼 아이들에게 각자 토핑은 3종까지 허락한다는 아빠의 선심, 그리고 면치기 때 후루룩 소리를 내는 게 맛있나 조용히 먹는 게 맛있나 논쟁을 벌이는 풍경은 중동 난민에게 우리가 가진 편견을 멀리 날려 보낸다. 아이들은 또래 일본 아이들과 함께 아이돌 노래에 맞춰 거리에서 댄스 연습에 몰두하고 건물 철거 일용직으로 일하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요기하는 건 국적과는 하등 상관없다.
여기에다 영화는 샤라와 소타, 두 청춘 남녀의 풋풋한 감정을 황순원의 <소나기>를 연상케 하는 수채화 같이 아름답고 잔잔한 풍경 속에서 그려낸다. 둘은 끝까지 러브라인과 우정 사이 어딘가에 머물긴 하지만 각자의 꿈을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힘을 얻는다. 거기에 가족애라는 동서양 막론하고 공감 가능한 코드가 위력을 발휘한다. 소타 역시 돈 벌기 힘든 미술에 재능이 있어 엄마의 근심걱정 대상이다. 사랴와 함께 설거지를 하던 소타의 엄마는 '부모는 자식이 행복하길 바라니까'라며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입장을 내비친다. 이를 통해 사랴 또한 갈등이 팽배했던 아빠와의 감정을 돌아보게 된다.
영화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쿠르드인이라는, 고정관념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존재의 개성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에도 노력한다. 서두에서 강조된 것처럼 영화 속에선 다언어가 활용된다. 그냥 쿠르드인들끼리는 쿠르드 어를, 일본인과 대화할 때는 일본어를 구사하는 단순한 구분을 넘어서, 등장인물 각자가 각각의 언어를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통하는지 따라 캐릭터의 감정과 상황 맥락이 오르내리는 식으로 활용되기에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쿠르드 공동체에 구속되길 부담스러워하던 사랴가 식사시간에 늦어 꾸중하는 아빠와 언쟁하는 순간이 상징적이다. 아빠는 쿠르드어로 딸에게 화를 낸다. 하지만 딸은 굳이 일본어로 아빠의 말 듣기 싫고 강요하지 말라며 외친다. 자신을 이역만리 떨어진 일본에 데려와 살게 했으면 그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것 아니냐는, 자유롭게 풀어놔주길 요구하는 태도다. 그럼에도 쉽게 옷을 갈아입듯 떼어낼 수 없는 쿠르드 문화와 전통의 무게도 깨알같이 튀어나오곤 한다. 사토가 엉겁결에 사랴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체험하는 쿠르드 전통요리나 식사예절, 그리고 쿠르드 이웃들이 아빠 없는 사랴 가족에게 챙겨주는 중동 특유의 미트볼 '쾨프테' 같은 장치들이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이목을 잡아끈다.
영화 속 사례와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영화는 현실의 냉혹함을 부정하고 판타지로 치닫지 않는다. 잔인한 세상을 굳이 극단적으로 보여주려 하지는 않지만 대책 없는 낙관도 경계한다. 아빠의 결심과 사랴의 각오, 그리고 의지할 곳 드문 땅에서 이들 가족 앞에 예정된 미래는 장밋빛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그럼에도 잠시나마 주인공과 식구들에게 차가운 현실을 잊게 만드는 데에는 몇 안 되는 시민들의 연민과 함께 지방 소도시의 여유로운 풍광, 그리고 (소타를 촉매로 활성화되는) 미술의 힘이 결코 작지 않게 작용한다. 그런 섬세한 구성과 함께 상투적 악역은 존재하지 않는 설정이 은근한 매력을 발휘한다. 이 영화 속에선 누구도 혐한 부류처럼 타인에 대해 원초적으로 악의를 가진 이가 없다. 그 덕분에 관객은 오히려 그릇되고 냉엄한 제도 탓에 두려움과 경계심, 차별이 양산되는 시스템 문제를 질문하고 돌아보게 된다.
민감한 난민 쟁점을 다룬 영화이기에 기본정보만 보고 쌍심지를 켜며 0점 별점을 매기거나 악성 댓글을 달려는 이들이 제법 있을 법하다. 이미 외부에서 이식된 편견을 고정하고 눈과 귀를 가린다면 답이 없지만, <마이 스몰 랜드>를 직접 목격하고 스스로의 판단을 교정해보라고 영화의 제작진은 친절히, 때로는 간절하게 호소하려는 태도를 유지한다. 부드럽고 섬세한 표현력과 함께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톤&매너를 고수하지만 결코 대충 쟁점에 관해 미지근하게 다룰 뜻은 전혀 없는 '부드러운 직선' 같은 영화다. 감독의 이름이 낯설지만 제작자와 제작회사를 확인하면 의문은 대부분 눈 녹듯 사라질 법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설립한 영화사 '분보쿠' 멤버인 감독은 오랜 기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스태프로 일하면서 준비한 첫 장편을 쿠르드 난민 소재로 세상에 선보인 것이다.
영화는 일본의 속 좁은 난민정책 폐단을 한 가족의 수난사 드라마라는 절제되고 정돈된 형태로 관객에게 권한다. 하지만 시야를 바로 옆 나라 한국으로 옮긴다면 <마이 스몰 랜드> 속에서 주인공과 식구들이 처한 고초가 동일한 처지의 국내 난민 신청자들이나 하등 다를 바 없다. 1세계 선진국 반열에 호명되는 나라들 중 난민신청 인정비율 박하기로는 쌍벽을 이루는 일본과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그래도 미운털 박힌 옆 나라 정책의 파탄 사례를 보던 우리나라 관객들이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돌아보기 시작하면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런 민망함 속에 천천히 펼쳐지는 측은지심을 느낀다면 영화를 만든 이들의 진의는 별 누수 없이 온전하게 전해진 거라 봐도 무방할 테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제목을 직역하면 '나의 작은 나라'란 뜻에 가깝다. 과연 난민 가족이 상상하는 '작은 나라'가 작품 속에서 어떤 이미지로 드러날지 궁금함을 풀기 위해 극장을 찾아볼 법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후회 없는 선택으로 보상받을 게다. 반드시 참고 기다린 만큼 아름답고 뭉클한 결과를 확인하게 될 테니 말이다.
<작품정보> |
마이 스몰 랜드 My Small Land
2022|일본, 프랑스|드라마/가족
2024.02.01. 개봉|115분|12세 관람가
감독/각본 가와와다 엠마
주연 아라시 리나(사랴 역), 오쿠다이라 다이켄(소타 역)
출연 후지이 타카시, 이케와키 치즈루, 히라이즈미 세이, 칸 하나에.
요시다 우롱타, 이타바시 슌야, 타무라 켄타로,이케다 료,
신타니 유즈미, 오구라 이치로
제작 고레에다 히로카즈
수입/배급 미디어캐슬
2022 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초청
2022 28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초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