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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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록호 국장은 세계보건기구 과학부에서 20년째 근무하며 세계인의 건강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인물이다. 김 국장은 "WHO는 세계의 보건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처럼 전 세계적으로 대처가 필요한 일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과학부는 WHO에서 만들어내는 문서들이 과학적 증거에 기반했는지 검증하는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WHO만의 근무 환경에 대해 설명했다.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공무원 봉급 수준이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같은 월급을 주면 불공평하니까. 저같이 스위스에서 근무하는 경우는 기본급의 80%를 더 준다"고 밝히며 "또 다른 장점은 국제기구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에도 소속이 안 되어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노후 연금은 은행에 저금할 거 없이 돈 버는 거 다 써도 된다"고 밝혀 부러움을 자아냈다. 다만 단점으로는 해외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20년간 동창회 한 번 못 갈 만큼 한국 문화와 단절되어 살아야 했던 고충을 밝혔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했던 김 국장은 가난한 집안사정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던 아픔을 겪었다. 김 국장은 "돈이 없어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당함을 느끼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의사가 되면 나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노동자들의 의사'로 명성을 얻었다. 김 국장은 가난한 노동자들을 치료하는 것은 물론,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고 법적인 권리를 찾는 데도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1991년 한국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로 꼽히는 '원진레이온 사건'의 진실을 처음으로 밝히고 피해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인정받는 데 앞장선 것도 바로 김록호 국장이었다. 김 국장은 지금도 당시 노동자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한편으로 원진레이온 사건은 또다른 측면에서 김 국장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당시 대학교수들로 구성된 회사 측 의사들에 맞서 노동자 측 재야의사로 활동했던 김 국장은, 사회적인 위상과 인식 면에서 암묵적인 격차를 느껴야 했다. 김 국장은 30대의 늦은 나이에 박사학위를 따기 위하여 미국 최고명문 하버드 보건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이후 김 국장은 원전레이온 사건의 공를 인정받아 슈바이처상을 수상했고, 박사 학위를 따낸 후 45세의 나이에 WHO에 입사하게 된다.
한편의 영화같은 인생 스토리를 돌아보며 김 국장은 "매일매일이 어두울 때가 많았다. 절망하는 어린 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너의 존엄함, 정직함을 믿고 이 세상에서 주는 기회를 찾아서 포기하지 말고 버텨라. 그러면 언젠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리고, 너의 존재가 빛을 발할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고백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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