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 스틸 이미지
(주)NEW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놀랍게도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다. 와세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외주작업으로 경력을 쌓아 영화계로 진출한 경우다. 1987년 대학 졸업 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했으니 올해 햇수로 따지면 37년 경력이다. 장편 극영화 감독으로 국내에선 인식되지만 다큐멘터리, TV 드라마, 뮤직비디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해 왔다. 그런 감독의 장구한 경력에서 <괴물>은 몇 번의 분기점 중 가장 최신 사례에 속할 테다.
1st Impact: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 1991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대학 졸업 후 첫 극영화에 도전하기 전까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연 1편 수준으로 방송 다큐멘터리 작업을 수행했었다. 주로 시사적인 쟁점을 소재로 한 해당 다큐멘터리 작업은 방송 포맷에 맞춰져 50분 전후 분량으로 제작되었다. (1시간 편성에 광고 등이 붙으면 나올 법한 규격이다.) 이 중 국내 영화제 등에서 소개된 건 5편으로 첫 연출로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린 1991년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 <또 하나의 교육>, 1992년 <오염은 어디로 갔는가?>, 1994년 <그가 없는 8월이>, 1996년 <기억을 잃어버린 때> 등이다.
국내 미 공개된 나머지를 포함해 해당 시기 방송 다큐멘터리들은 복지와 교육, 빈곤, 의료, 부락민과 자이니치(재일교포)에 이르는 당대 일본 사회의 소외된 사각지대를 관통하고 있었다. 마침 거품 경제가 무너지고 장기 침체로 접어들던 시절에 갓 영상작업에 입문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전후 번영을 누리던 일본사회가 추락하면서 노출된 구조적 문제와 역사 쟁점 등에 대해 폭 넓은 시야를 갖추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대표작이라 할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는 방송용 외주작업이라는 조건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흔히 '가족영화'로만 치부되곤 하는 감독 작품세계의 본령을 일찌감치 확립한 기념비적 작업이다. 불황에 접어든 당시 일본 정부는 복지수급 기준을 엄격히 강화했고 그 과정에서 노동능력을 상실한 채 복지수당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었던 전쟁고아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해당 사건을 취재하던 감독은 마침 전후 일본의 대표적 산업재해 사건인 미나마타 병 관련 보상과 법적 대응 책임자로 악역을 도맡았던 양심적 복지 관료의 자살을 접하고 두 개의 죽음을 통해 일본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직시한다. 다큐멘터리의 문제의식은 감독의 이후 영화들이 놓지 않는 사회적 고민 원형을 구성한다.
2nd Impact: <환상의 빛>, 1995
다큐멘터리 작업에서 벗어나 감독은 장편 극영화에 도전한다. <환상의 빛>은 그 기념비적인 첫 번째 결실이다. 작가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 단편소설집을 각색한 기본 내용이지만 자신의 첫 다큐멘터리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작업이기도 하다. 고위 공무원의 아내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던 감독은 영감을 얻어 원작소설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이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서신과 연결시킨다. 그렇게 죽음과 상실의 기억을 간직한 채 이어가는 삶에 착목한 데뷔작은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거장의 출발을 알린다. <환상의 빛>에서 선보인 감독의 독창적 세계는 이후 <원더풀 라이프> <디스턴스> 등의 초반 극영화들로 이어진다.
3rd Impact: <아무도 모른다>, 2004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현존 감독 중 '가족영화'의 거장으로 흔히 불리곤 하지만 따져보면 그의 영화들 속 가족 중 소위 '정상가족'이라 할 모델은 전무하다. 붕괴 혹은 해체된 가족의 잔해 속에서 대안적 공동체를 모색하거나 이질적인 존재들이 서로를 보듬어가며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형성해가는 과정이 감독의 '가족영화'를 구축하는 맥락이라 하겠다. 현재까지도 감독의 작업 중 첫 손에 꼽히는 <아무도 모른다>는 그런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속 가족 문제의 상징과도 같은 작업일 테다.
크리스마스에 4남매를 집에 남기고 사라진 어머니 대신 동생들을 돌보는 12살 첫째를 주인공으로 방치된 아이들이 겪게 되는 상황을 재연한 <아무도 모른다>는 장남 역 야기라 유야의 역대 최연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기록과 함께 판타지 풍 요소가 일정부분 덧붙여졌던 초창기 스타일에서 전환점을 이룬다.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어린 남매들은 서로를 의지하지만 겨울이 가고 봄이 와도 방치는 계속 이어지고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스토리는 비극적 결말과 함께 '형언'하기 어려운 소년의 눈빛을 각인시켰다. 이후 감독의 작품세계는 숱한 변주를 선보이지만 그만의 독자적인 가족 테마 안에 머문다.
4th Impact: <어느 가족>, 2018
<아무도 모른다>의 성공 이후 감독은 꾸준히 작업을 이어간다. <아무도 모른다>와 <어느 가족> 사이엔 14년이란 간격이 존재한다. 중간에 정거장을 설정하고자 한다면 2008년 <걸어도 걸어도>와 2013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이정표로 삼기에 충분한 작업들이 될 테다. 감독의 명성은 세계적인 클래스에 도달했고, 만만찮은 서늘함을 내포한 작업 vs. 치유기능을 뿜어내는 작업 패턴이 반복되면서 축적되어갔다. 그런 가운데 어느 정도 감독의 작품세계가 안정되고 그로 인해 적당한 변주가 연속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영화는 좋지만 <아무도 모른다>의 충격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것일까 싶던 이들에게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물 흐르듯 유려하게 흘러가던 감독의 중후반기 작업들에서 일정하게 단절되는 느낌, 정제된 묘사를 벗어나 거칠고 격렬하게 치닫는 2017년 <세 번째 살인>은 가족영화란 틀에 갇히길 거부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도전을 확인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그 다음해에 선보인 <어느 가족>은 감독에게 칸 황금종려상을 안기면서 <아무도 모른다>에서 이어져온 감독의 작품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귀결을 선보였다. 일본어 원제로는 '좀도둑 가족'인 본 작품은 죽은 노인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복지수당을 타먹는 가족의 일화에서 출발해 감독의 '가족영화'를 집대성하는 장대한 구성과 반전의 매력을 총망라한 결실이다.
5th Impact: <괴물>, 2023
<아무도 모른다>와 비견되는 <어느 가족> 완성 후 감독은 해외에서 작업을 시도한다. 일본 내 제작투자환경의 난맥상과 함께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확장된 명성에 힘입어 다양한 도전에 나선다. 2019년 프랑스 배경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2022년 한국에서 촬영한 <브로커> 두 편을 연속으로 일본 바깥에서 작업한다. 그전까지 일본 내에서만 작업하던 데에서 색다른 모색을 이어온 셈이다.
하지만 방송국 외주작업 시절부터 갈고 닦아온 일본 사회의 치부와 이면을 향한 현미경 같던 시선이 해외 작업에선 다소 뭉툭해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새 또다시 뭇 사람들은 감독이 무뎌졌다고, 혹은 창의력이 고갈된 것이라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평작 취급을 받더라도 거장의 작업은 기본 이상의 수준을 유지하긴 했지만, 워낙 그동안 보여 온 게 대단했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어느덧 치고 올라오기 시작한 하마구치 류스케 같은 신성들에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구축했던 동시대 일본영화를 상징하는 거장 자리가 위협받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관습적인 이야기와는 까마득히 동떨어진 신작이 완성되었다.
많은 이들이 <괴물>의 기본 줄거리 정보를 접하자마자 근래 홍역을 앓고 있는 한국사회 교육현장을 대입했을 법하다. 하지만 <괴물>에서 전반부에 긴장과 의혹을 밀어붙이는 중심축인 학교현장의 미스터리한 상황과, 학부모-교사-학생들 간의 숨 막히는 갈등은 구체적인 제도개선을 의도하기보다는 점점 닮아가는 한국과 일본 사회 내 해체일로인 공동체와 정상가족의 일그러진 초상을 가감 없이 그려내고 있었다. 제목의 '괴물'은 정상과 비정상 경계라는 게 얼마나 편견에 기초한 것인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것처럼 무관심과 방관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압축하고 있다.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 속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은 하나씩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그렇게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평범한 진실과 함께 악인은 존재하지 않지만 오해와 불신이 초래하는 막다른 벼랑을 영화는 절실하게 그려낸다. (그럼에도 화면은 눈부시고 찬란함 자체이기에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를 절로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 속 출구 없는 늪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모색이 가능할지 의문을 관객의 상상력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 따돌림과 무관심의 혼합, 보신주의와 방관, 다양성의 부정 같은 수많은 오해와 외면들이 정교한 모자이크처럼 하나둘 조합되어 막판의 형언할 수 없는 충격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줄거리를 굳이 요약/인용하기보다 극장에서 한 명이라도 더 직접 확인하기를 권하고자 한다.
그저 눈으로 확인해야 할 뿐, 필견(必見)의 영화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