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채> 이수정 배우
씨네소파
- 지적장애가 있는 '고은'은 말, 표정이 잘 없어 감정 상태를 알기 힘들다.
"아빠랑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을 오래 해 누울 수 있는 곳은 집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생각 없어 보이지만 장면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특성을 장면마다 나눴다. 가끔은 의사가 뚜렷해 보이기도 하고, 애가 타 보이기도 했으며, 어른같이 행동하려는 모습도 있다. 행동의 연결성을 두면 오히려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냥 고은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빠랑 있을 때는 어리광 피우는 딸처럼, 사랑(도경의 딸)이랑 있을 때는 엄마처럼, 도경이랑 있을 때는 남편이라는 존재보다 현재를 함께 하는 동지라는 생각이 들도록 분절했다."
- 한국 영화에서 지적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많지 않다. 캐릭터 준비 과정이 쉽지 않았겠다.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때 3차 오디션 만에 끝에 지적 장애 임산부를 연기한 적 있다. 그때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분석했던 게 도움 됐다. 지적 장애를 가진 분들의 특성, 버릇을 저것으로 소화해 보려고 했다. 고은의 뇌를 그려 보면서 '세상에 없는 고은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누구보다도 잘 해내고 싶었다. 다행히 리허설을 많이 했기 때문에 막히는 부분은 무조건 감독님부터 찾았다. 모르는 건 물어봐야 했다. 오죽하면 현장에서 '근데요.. 감독님'으로 통했을까. (웃음)"
- 초반 고은이 옷 가게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사달라고 조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아빠는 그냥 가자고 하는데 고은은 버틴다. 깎아 달라는 뉘앙스인데 주인에게 은근히 강요하는 듯 보인다. 문호(임후성)가 고은을 키우며도 종종 장애를 앞세워 경제적 이득을 얻었을 거란 게 언뜻 느껴진다.
"고은이 정확하게 인지는 못했겠지만 그것도 놀이의 일종으로 받아들인 거다. 둘이 그동안 비슷한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는 설정이다. 고은이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고 아빠는 딸을 잃어버렸다가 찾은 듯 연기하는 거다. 옷 가게에서 마지못해 사주는 상황도 사실 계산된 연기다. 소꿉놀이, 경찰놀이 같은 '놀이'의 일환으로 받아들여도 된다."
- 영화는 많은 서사가 생략되어 있어 보고 나면 궁금증이 생긴다. 관객이 괄호와 괄호 사이의 빈칸을 채워가야 하는 능동적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여운이 이어지고 토론의 장이 생기도록 하자는 게 우리 영화의 목표였다. 영화제 GV 때 '우리 영화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따스한 온도의 영화다'라고 무대 인사 때 했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힘들게 찍었는데 편집된 부분 중 기억나는 장면이 있나.
"용기 있게 등 노출도 강행했는데 그 장면이 떠오른다. 도경이 고은의 등을 밀어준 뒤 처연하게 다시 자기 몸을 닦는 장면이다. 고은은 오늘 하루를 이어가는 사람인 거다. 누가 밀어주는 걸 그만하더라도 지금 순간에 집중하는 삶을 사는 존재다. 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게 결국 미래를 사는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친구다. 고은이의 미래가 있을 거라고 상상도 했고 행복하라고 메모도 남겨봤다. 장애 등급이 심하지 않아서 언젠가는 독립도 가능하지 않을까. 어디에서든 고은은 잘 살고 있을 거다. (웃음)"
- 지방의 포도밭에 일하러 갈 때 문호가 고은을 도경에게 스스럼없이 맡긴다. 집을 마련하기 위한 일이었겠지만 종국에는 딸의 남편을 찾아준 의미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호는 결혼식장에서 딸의 손을 잡고 걸어오다가 신랑에게 넘겨주는 것 같았다. 미래를 마련해서 살아갈 수 있게 '내어주고', '건네주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처음부터 가족을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게 아니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도경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딸이 있는 두 남성은 인생도 닮았다. 도경은 따뜻한 사람이다. 딸 사랑이와 위장결혼으로 맺어진 고은을 여전히 책임진다. 시간이 더 지나면 고은은 도경의 아내는 아니더라도 친구, 누나, 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보다 어찌 보면 위로가 되는 가족의 탄생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 <브로커>가 떠오르기도 한다.
"맞다. 여러 오디션에서 독백 연기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영화로 보기도 했었는데 신기히다. 감독님의 영화도 너무 좋아하고, 기회가 된다면 꼭 참여하고 싶다. 영화 속에서 고은이와 사랑이가 처음 브로커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사탕 먹는 장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엄마, 자매, 친구 같은 장면도 영화의 주제를 말해주는 것 같다. 남이지만 둘은 닮아 보이기도 한다. 서로 의지하고 스며들어 간 존재가 되어가는 신이다."
"친언니의 도움으로 배우의 꿈 이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