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마존 활명수>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문제는 진부함에 있다. <쿨러닝>, <국가대표>처럼 오합지졸 팀이 힘을 합해 성공으로 이끌어 나가는 이야기다. 익숙한 바탕에 양궁과 아마존 전사가 어울리지 않아 삐걱거린다. 즉 케미가 부족하다. 류승룡과 진선규의 콤비 설정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류승룡과 진선규의 캐릭터가 행하는 언어·행동의 과한 설정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데 있다. <부시맨>에서 다뤄진 낯선 문화 속에 안착한 존재의 기이한 행동이 그대로 재현된다. 청계천에서 낚시를 하거나, 아파트 베란다에서 불을 피워 고기를 굽는 행동은 이 사회에서는 불법이 된다. 아마존이라면 자연스러웠을 행동이지만, 타국의 도시로 옮겨와 억지스러운 상황을 연출한다. 고국에서는 일상의 행동이 타국에서는 웃음거리로 전락한 꼴인 셈이다.
또한 너무 많은 것을 준비했다. 코미디만 있는 게 아니라 한국과 아마존 원주민의 문화충돌, 양궁 스포츠의 이해, 가족과 공동체가 떠오르는 휴머니즘이 후반부에 포진해 있다. 코미디-스포츠-감동 코드로 이어지며 종국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까지 한다. 자본주의 앞에 짓밟힌 소수민족의 자긍심, 각박해진 현대 사회를 꼬집는 순수성의 회기, 정당한 스포츠의 대결의 묘미 등이다.
마지막으로 스포츠 영화로서의 긴장감과 응원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3인방의 사연이 절실하게 와닿지 않는 까닭이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지 않아 한 몸처럼 움직여 밋밋하다. 누구의 캐릭터에도 이입하고 싶으나 그것마저 쉽지 않다. 뻔한 구조가 계속되니 누가 이길지 예상대로 흘러간다.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 양궁을 배운 아마존 언더독의 반란은 시대와 국가만 바뀌었을 뿐 199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적인 구조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문화우월주의·계몽주의로 흘러 자칫 오인될 수 있다. 세 아들의 아빠인 가장이 구조조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피치 못할 사정이란 전제가 있지만,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웃음 유발의 도구로만 쓰인 게 아닐지 우려된다.
자칫하다가는 문화의 우등과 열등을 나누는 기준을 제시하게 되기도 한다. 타 문화의 차이가 틀림이 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 <아마존 활명수>는 상업영화이면서 대놓고 B급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장르적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진봉의 과장스러운 표정과 행동, 빵식의 말투와 외모가 어느 정도 상쇄된다.
아마존 원주민 3인방은 오디션으로 캐스팅됐다. 실제 시카 역의 이고르 페드로소는 아마존 원주민의 후예로서 문신 문양 고증에 힘썼다. 이동시간만 40시간이었다는 아마존 로케이션으로 지구 반대편의 현장성을 중시했다. 한쪽에서는 가뭄이 한쪽에서는 홍수가 나고 있는 아마존의 몸살을 직접 보고 담았다.
다만, 좋은 의도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 아는 맛과 새로운 맛의 적절하지 못한 배합에 안타까운 탄식이 나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