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영원한 일용엄니' 김수미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5월부터 건강 문제로 활동을 중단했던 김수미 배우는 지난 25일 고혈당 쇼크로 인해 사망했다. 그녀의 생일(10월 24일)이 고작 하루 지난 날이었다. 김수미 배우의 사망 소식에 동료 연기자들을 비롯한 연예계는 물론이고 정치권의 추모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지난 29일 MBC ON 채널에서는 고 김수미 배우 추모 특집으로 <다큐플렉스 전원일기>편을 방송했다. 다만 29일에 방송된 김수미 배우 추모 다큐는 MBC ON 채널에서 자체 제작한 다큐가 아닌 지난 2021년에 MBC에서 창사 60주년 기념으로 제작했던 <다큐플렉스 전원일기>편 중 김수미 배우의 분량을 편집해서 보여준 것이었다. 새로 제작한 방송은 아니지만 김수미 배우를 추억하기엔 충분히 의미 있었다.

김수미 배우의 대표작이 <전원일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김수미 배우는 결코 <전원일기>의 일용엄니 하나로만 평생을 보낸 배우는 아니다. 언제나 새로운 작품을 마다하지 않았던 김수미 배우의 도전 정신은 망설임과 포기가 빠른 세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1970년 MBC 3기 공채탤런트로 데뷔해 반세기 넘게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수미 배우의 커리어를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일용엄니] 김수미 배우의 영원한 대표 캐릭터

 1980년부터 방영된 MBC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일용 엄니'역을 맡아 연기하는 김수미씨(왼쪽)와 김회장 부인역의 김혜자씨.
1980년부터 방영된 MBC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일용 엄니'역을 맡아 연기하는 김수미씨(왼쪽)와 김회장 부인역의 김혜자씨.MBC 제공

김수미 배우는 데뷔 초 1950~60년대 전성기를 보낸 고 나탈리 우드를 닮은 이국적이고 개성 있는 외모로 주목 받았지만 데뷔 후 10년 간 확실한 대표작을 만나지 못하고 조연을 전전했다. 그러던 1980년 김수미 배우는 MBC에서 방송된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일용엄니' 역을 맡아 무려 22년 동안 장기 출연했다. <전원일기>가 시작될 당시 김수미 배우의 나이는 갓 서른을 넘긴 직후였다.

아들 일용이를 연기한 박은수 배우가 김수미 배우보다 두 기수 선배에 나이도 더 많았으니 당시 김수미 배우가 얼마나 파격적인 캐릭터를 맡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김수미 배우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노인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시장에서 할머니들을 관찰하며 캐릭터 연구에 들어갔다. "일용이 너 이 눔 시키"로 대표되는 일용엄니 특유의 말투는 김수미 배우의 엄청난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김수미 배우가 일용엄니 캐릭터에 곧바로 적응한 것은 아니다. 김수미 배우는 초반 <전원일기> 출연에 회의를 느끼고 제주도로 잠적해 3개월 간 이야기에서 제외됐다. 당시 "(복귀하지 않으면) 일용이네를 없앤다"는 제작 국장의 엄포에도 꿈쩍하지 않았던 김수미 배우는 "너 때문에 박은수, 김혜정 두 배우 집안 생계를 끊을래?"라는 선배 김혜자 배우의 충고에 정신을 차리고 촬영장에 복귀했다고 한다.

김수미 배우는 1986년 <전원일기>와 주말 드라마 <남자의 계절>을 통해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김수미 배우는 대상 수상 후 "일용아 느그 엄니 한 풀었다. 대상 먹었다"고 외치며 객석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각 방송국에서 수 많은 드라마가 제작됐고 그만큼 많은 캐릭터가 등장했지만 김수미 배우가 연기했던 일용엄니 만큼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는 찾기 힘들다.

[욕쟁이 할머니] 욕을 가장 '맛있게' 했던 배우

 <사랑이 무서워>에서 관객들에게 가장 오래 기억된 배우는 특별 출연한 김수비 배우였다.
<사랑이 무서워>에서 관객들에게 가장 오래 기억된 배우는 특별 출연한 김수비 배우였다.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영원할 거 같았던 '국민 드라마' <전원일기>는 2002년 12월 1088부를 끝으로 종영했고 김수미 배우는 여느 중견 배우들처럼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활동을 이어갔다. 2003년 영화 <오!해피데이>와 2005년 <마파도> 등을 통해 욕쟁이 할머니로서의 가능성(?)을 보인 김수미 배우는 2005년 시트콤 <안녕,프란체스카> 시즌3에서 욕쟁이 뱀파이어 이사벨 역을 맡으며 과감한 연기 변신을 단행했다.

사실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1,2는 2005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예능 작품상을 수상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던 시트콤이었다. 하지만 시즌3로 넘어가면서 연출가와 작가는 물론이고 프란체스카(심혜진 분)와 소피아(박슬기 분)를 제외한 대부분의 배우가 교체되면서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사벨을 연기한 김수미 배우의 '하드캐리' 덕분에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다.

김수미 배우는 2011년에 개봉한 임창정, 김규리 주연의 영화 <사랑이 무서워>에서도 임창정의 어머니 역으로 특별 출연했다. <사랑이 무서워>는 전국 40만 관객에 머물며 흥행에 실패했지만 김수미 배우가 속옷 홈쇼핑을 보던 아들에게 했던 대사 "하여간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와"는 인터넷 밈으로 크게 유행하면서 오늘날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간장게장] 스타 셰프들도 인정한 반찬의 달인

 2018년에 방송을 시작한 <수미네 반찬>은 2~5%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꾸준히 사랑 받았다.
2018년에 방송을 시작한 <수미네 반찬>은 2~5%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꾸준히 사랑 받았다.<수미네 반찬> 홈페이지

<전원일기>에 출연하던 시절부터 촬영장에 직접 요리한 반찬을 싸와 동료 연기자들에게 대접할 정도로 손맛이 좋고 정이 많았던 김수미 배우는 2005년 자신의 이름을 건 '김수미 간장게장'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1년 케이블 채널 QTV에서 <수미옥>이라는 요리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수미 배우는 2018년 <수미옥>의 후속이라 할 수 있는 요리를 주제로 한 예능 프로그램 <수미네 반찬>에 출연했다.

<수미네 반찬>은 메인 요리사인 김수미 배우가 자신의 요리 노하우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주로 한식 반찬을 만들었다. 재미 있는 사실은 '욕쟁이 할머니' 이미지가 강한 김수미 배우가 <수미네 반찬>에서는 푸근한 동네 할머니 같은 매력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김수미 배우는 여경래, 최현석 등 제자로 출연한 스타 셰프들과 남매처럼 대화를 나눴고 게스트로 나온 후배들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했다.

지난 2021년에 방송된 <다큐플렉스-전원일기>에서 다시 연기에 전념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던 김수미 배우는 작년 영화 <가문의 영광:리턴즈>에 출연하며 연기 열정을 불태웠다. 하지만 많은 작품을 통해 대중들을 울리고 웃겼던 김수미 배우의 연기는 이제 다시 볼 수 없다. 평소 아들처럼 여기던 신현준, 정준호와 함께 출연한 영화 <귀신경찰>을 유작으로 남긴 김수미 배우는 그렇게 하늘나라로 훌쩍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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