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주)메리크리스마스
<우·천·사>는 근래 한국 독립영화 주요 소재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집합체다.
① RETRO, 즉 복고 감성이 충만한 배경: 1999년 밀레니엄 시절
② 성소수자 주인공에게 찾아온 금단의 사랑: 퀴어 로맨스
③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와 폭력적 관행: 체육계 비리와 성추행
익숙한 요소들이 골고루 조합되기에 어찌 보면 전형적인 한국 독립영화의 형상을 갖췄지만, 좀 꼬아서 표현하면 먹힐 만한 요소들을 안전하게 취합한 결과물로 느낄 여지도 있다. 그렇다면 민감하면서도 호기심을 유발하는 개별 요소가 얼마나 잘 조합을 이룰지가 영화를 평가하는 관건이 될 테다.
영화는 복고풍 요소로 지금과 아주 다르진 않지만, 세월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는 20세기 말을 택했다. '012'로 시작하는 전화번호, 당대 유행 인기가요, 순정만화 걸작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일부는 분위기를 부각하는 데 역할을 마치지만, 몇은 영화 속 인물들 행위와 미래에 결정적 요소로 작동한다. 하고많은 히트곡 중 자우림 '애인발견'이나 고호경 '처음이었어요'는 그저 복고 추억이 아니라 인물들 심리를 고스란히 옮기는 중책을 맡는다. 지금은 피식 웃고 마는 '휴거'의 분위기나 노스트라다무스 지구 종말론은 생생하게 관객 뇌리에 귀환한다.
여기에 퀴어 로맨스가 영화의 척추를 형성한다. 스포일러라 할 것도 없이, <우·천·사>는 주영과 예지의 멜로를 전면에 부각한다. 지금도 곱지 않은 사회 일각 편견에 노출되는 사랑이 전 세대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짐작이 가능한 경우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건 주인공들의 연애가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주변 반응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앰네스티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앰네스티의 장점이자 단점은 개별 지부가 자국 문제에 대해선 개입을 자제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활동 안정성을 담보하지만, 남의 동네 사정에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본국 인권 침해에 침묵하는 것이 위선이라 비판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영과 예지가 사랑을 키워가는 결정적 계기가 된 가정입주 교육은 복지교정직에 종사하는 주영의 엄마가 제안한 일이다. 하지만 남의 자식 교화에는 헌신적이던 엄마는 막상 자신의 자식과 남의 자식이 사랑에 빠지자 어떻게든 떼어 놓으려 돌아선다. 자녀와 대화를 통해 소통하던 엄마는 그 순간부터 딸과 단절된다. 독실한 개신교인인 주영 엄마의 태도에 종교적 개연성과 함께 앰네스티 기본 방침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셈이다.
각본가가 실제로 체험한 태권도계 악습이 영화 내내 주인공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중압으로 작동한다. 각본의 생생함 덕분에 근래에도 잊을만하면 터지는 엘리트 체육 폐단이 극명하게 각인된다. 10대 주인공의 부모들이 행하는 위선과 결탁 역시 체육계 모순과 고스란히 연결된다. 실제 현실과 재현 수위가 뛰어난 부분이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에서 거의 모든 '어른'이 어른 역할을 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들조차 자기 자식을 제대로 감싸지 않는다. 그들 역시 당대 사회 시스템의 부정적 단면에 편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사도, 경찰도, 부모도, 아르바이트 가게 책임자도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어른'은 없다. 하지만 이런 특징이 거대한 시스템의 모순을 세밀하게 폭로하기보다는 세대 간 충돌로 치환되는 느낌이 아쉽다. 시스템의 하부 일원으로 주영에게 가혹한 폭력을 행사하던 태권도부 전체 각성은 개연성보다 10대 VS 어른 대결 구도 위주로만 그려지는 편이다.
현 시점 한국 독립영화의 명암을 관찰하는 흥미로운 텍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