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외자들> 스틸 이미지
엠엔엠인터내셔널(주)
파리 교외 부유한 이모 집에 얹혀 지내는 젊은 여성 '오딜'은 취업을 위해 수강하던 영어 수업에서 또래 청년 '프란츠'와 알게 된다. 오딜은 프란츠의 친구 '아르튀르'를 소개받는다. 진중한 성격의 프란츠와 달리, '나쁜 남자' 매력을 풀풀 풍기는 아르튀르에게 오딜은 자석에 끌리듯 반한다. 셋은 함께 프란츠의 자동차를 타고 특별한 목적 없이 돌아다닌다.
오딜은 별 뜻 없이 이모 집에 함께 사는 남자가 거액의 현금을 방에 감춰뒀음을 알린다. 이 사실을 안 프란츠와 아르튀르는 오딜을 회유해 돈을 훔치려 한다. 지나가는 화젯거리로 꺼냈던 오딜은 겁이 나지만, 두 청년은 이미 계획에 착수한 상태다. 이러다 큰일 날 것 같아 불안한 오딜은 거사를 앞두고 흔들리는 갈대처럼 이랬다가 저랬다가 끌려다닌다.
하오딜의 어설픈 준비 탓에, 이모는 자물쇠를 바꾸고 조심한다. 첫 번째 거사는 방심한 덕분에 실수 연발로 중단된다. 다시 거사 날짜를 정하고 이번엔 제대로 해치울 꿈에 부풀어 있지만, 호언장담과 달리 프란츠와 아르튀르 역시 제대로 해내는 게 없다. 계획이 어그러진 가운데 예상 못 한 사태가 속속 이어진다. 과연 이 불나방 같은 청춘들의 거사는 성공할 수 있을까?
<국외자들>은 고다르의 장구한 작품 연대기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익숙한 '누벨바그' 시절의 작품군에 속한다. 1960년대 초반의 프랑스 대중문화와 청년세대의 의식을 이해하지 않고는 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테다.
프랑스, 특히 영화의 배경이 되는 파리는 중세 이후로 '유럽의 수도'라 불릴 정도로 번성하던 곳이다. 이는 문화예술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자부심 높던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독일에 패배하고 점령되는 굴욕에 휩싸였다. 정복자 독일군도 패색이 짙어지자 히틀러의 광적인 명령인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를 거부할 만큼 파리와 프랑스 문화에 대한 경외심을 품긴 하지만 위안이 되기엔 모자랐을 테다.
전쟁으로 파괴된 유럽대륙에 승리자로서 새롭게 초강대국으로 등극한 미국이 입성한다. 한쪽에선 소련과 냉전이 첨예화되고, 다른 한편으론 '마셜 플랜'이란 대규모 원조로 유럽 전체가 미국의 호의에 의지해 부흥하던 시절이다. 당연히 세계대전 때부터 미군과 미국의 풍요는 동경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콧대 높던 프랑스도 미국 대중문화에 흠뻑 빠졌고, 미국 것이라면 뭐든 다 좋은 것이라는 예찬은 비단 동북아시아 가난한 분단국의 전유물이 아니던 셈이다.
전쟁의 참화로 프랑스 영화계가 침체하던 시절, 대서양을 건너 수입된 할리우드 영화는 프랑스 청년세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영화 속에서 오딜과 프란츠, 아르튀르가 첫 만남을 갖던 영어학원은 그런 시대 상황과 때어놓을 수 없다. 프랑스어에 대한 자긍심이 투철하지만, 먹고 살려면 영어를 배워두면 좋다는 풍조가 광범위함을 보여주는 장치다. 주인공들 역시 프랑스 자국 문화 못지않게 영미 대중문화 요소를 화제로 구사한다. 그만큼 미국이 서방세계를 주도하던 시절의 영향력이 곳곳에 짙다.
그런 문화적 경향은 <국외자들> 골격 자체에 결정적인 힘을 행사한다. 기본 전개와 핵심 사건만 추출해 본다면, 이 영화는 전형적인 '범죄 장르물'이다. 그것도 '하이스트 영화' 혹은 '케이퍼 무비'라 불리는 공식에 아주 충실하다.
<오션스 일레븐>이나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과 <도둑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들이 큰 건 벌리기 위해 다방면 능력자로 팀을 구성하고, 만만하지 않은 장애물을 돌파하는 과정이다.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 혹은 이합집산 배신이 감초처럼 가미되는 경향의 영화다. 고다르와 동료들의 미국 대중영화를 향한 경도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누벨바그 세대 감독, 그중에도 고다르는 유독 당시 상업영화에 불과하다고 치부된 장르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과거와 당대의 할리우드 거장들을 재해석하고 복권하는 데 힘썼다. 고다르는 청년 시절 즐겨보던 미국 범죄영화의 기본공식을 가져와 내용물을 바꿔치기하는 '전복'을 감행한다. 그래서 영화의 기본 얼개와 내용만 보고 작품을 단정하던 이들에게 망치로 한 대 맞는 것 같은 충격을 선물한다.
무의미하게 보이는 장면들에 감춰진 시대의 징후와 함의